▲푸른하늘 나는 은날개 빛 새처럼
장다혜
하루종일 비가 소담스럽게 내리는 가운데 보라색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눈길을 끈다. 향기가 코 끝에 묻어서 가는 곳마다 꽃의 향기가 배어나온다. 나는 이렇게 사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 쯤은 안다. 페쇄적이고 몽상적인 생활. 실제로 경험과 실천이 없는 젊음은 젊음이 아닌 것이다. 육십 먹은 노파보다 못하다면 못하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포기한 자신부터 시작하는 일이냐? 사뭇 오그라들기만 할 뿐. 점점 작게 오그라든다. 개미가 나를 잡아 먹으려 들 정도로 나는 작다. 작은 게 싫다. 크고 싶다.'
나는 '크고 싶다'고 일기에 적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커야 할 지는 모르는 상태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눅이라는 '이상한 나라'에서 빠져나와야 했던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회사를 퇴근한 언니 품에 한 가득 책이 안겨 있었습니다.
"언니 무슨 책을 그렇게 많이 사들고 와?""나 늦었지만 야간대학이라도 들어갈려고. 학현이 너도 다시 공부하면 안되겠니?그렇잖아도 오빠는 '등록금은 염려말고 너는 다시 대학에 들어가기 바란다. 오빠랑 언니는 야간대학에 다녀도 되지만 너는 일반대학에서 너의 꿈을 맘껏 펼치기를 오빠는 기대하고 있다'고 편지를 보내 온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심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없었습니다. 마음도 무료하고 시간도 안가고 해서 하루는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쓰던 물건을 정리하다가 상장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가분단에서 수분단으로 올라갔을 때 받은 '우수상장'이었습니다. 오로지 나를 몸종처럼 부리던 미순이에게서 벗어나려고 방학동안 교과서를 줄줄 외웠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지금 가분단 학생이야. 노력하면 수분단으로 올라갈 수 있어'하고 마음에서 억지로 희망의 메시지를 나 스스로에게 보냈습니다.
나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등의 책을 사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지다가 다시 실망하고 또 다시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를 반복했습니다. 이제 내 껍질을 벗고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맞을 준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신체는 말을 듣지 않았지만 마음은 내가 다스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 다시 하자. 가분단에서 다시 수분단으로 올라 가자.' 며 나는 재수를 할 결심을 했고 오래 전에 처박아 두었던 고등학교 때 교과서를 새롭게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정말 몇 년 동안 벌레보듯 무서워하던 교과서입니다. 고등학교 교과서는 나를 '주눅'이라는 세계 속에 가두어 두었던 괴물이었습니다. 나는 그 괴물을 한번 이겨 볼 참이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지도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엄마에게 "나 요양차 일년동안 시골에 가 있다고 말해줘"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습니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가분단에서 수분단으로 올라가기 위해 5학년 때처럼 공부라는 잠수정을 탔습니다.
나의 십대는 자기 학대를 하며 지낸 유리파편처럼 내게는 날카롭고 위태로운 시기였습니다. 주원이가 언젠가 보냈던 편지에서처럼 이제 세상과 맞부딪힐 준비가 된 것입니다.
나는 이제 어려서부터 십대때까지 겪었던 나의 가난과 정신적 학대를 딛고 일어서야 했습니다. 이렇게 나의 청소년기는 끝나갔으며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해 나는 푸른하늘을 나는 은날개 빛 새를 새롭게 꿈꾸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그동안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방송작가 장다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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