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이 연예계 '잠정 은퇴 선언'을 한 뒤에도 탈세 논란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다만 사건 직후 강호동을 비난하는 여론이 비등하던 것과는 달리 최근에는 강호동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제법 높다.
유명 연예인이라고 불법·탈법을 눈 감아줄 수 없다. 잘못에 합당한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고소득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저지른 행위 이상으로 책임을 추궁해서도 곤란하다.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선 사실관계를 정확히 살피고 몇 가지 쟁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1. 강호동 탈세 문제 쟁점은 무엇인가
강호동의 탈세 의혹이 제기된 건 이달 초다. 일부 언론에서 "강호동이 세무조사를 받았으며 수억원(혹은 수십억원)을 추징받았다"는 취지의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강호동의 소속사는 5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런 사실을 시인하고 "추징된 세금을 성실히 납부할 것"이라며 사과했다. 급기야 9일 강호동은 기자회견을 통해 잠정은퇴를 선언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한 탈세 사건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강호동 쪽에서는 억울하지만 말을 아끼고 있는 눈치다.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에게 사과를 하면서도 "이유와 과정이 어찌됐든"이란 수식을 달았다. 다음 부분을 유심히 살펴 보자.
"변호사와 세무사는 필요경비를 인정해 달라는 점 등 몇몇 항목에 대해 국세청에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신고 내역 중 세금이 과소 납부됐다고 결론이 내려져 결과적으로 추징금을 부과받게 됐습니다."
여기에 일부 언론 보도까지 더해보면 사건의 쟁점은 소득금액 중에서 '필요경비'를 얼마까지 인정하느냐는 문제로 집중된다. 즉, 강호동이 필요경비로 신고한 금액을 국세청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강호동이 소득금액을 고의로 누락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탈세를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연예인의 종합소득세는 총수입 중에서 필요경비를 제외한 소득금액에 대해서만 부과된다. 따라서 연예인은 필요경비를 많이 넣으려 하고, 반대로 세금을 걷는 세무당국은 필요경비를 최소한으로 인정해주려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2. 다른 연예인들의 유사한 사례는
아직까지 국세청은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았고, 강호동 쪽도 입을 다물고 있다. 따라서 내막을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다. 대신 유사한 판례를 통해 유추해보는 편이 현실적인 방법이다.
연예인이 국세청(세무서)을 상대로 세금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된 사례는 2002년 1건, 2010년 2건 등 총 3건이다.
먼저 2002년 사건이다. 유명 여배우 A씨는 1999년도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면서 약 17억 원의 수입 중에서 의상비, 매니저비 등 약 8억 원을 필요경비로 공제하고 소득금액을 약 9억 원으로 잡아 세금 3억여 원을 신고, 납부하였다. 그런데 ㄱ세무서는 필요경비 중에서 2억 원 가량을 인정하지 않고, A씨에게 세금 1억 원을 추가로 부과하였다.
A씨는 행정소송을 통해 1심에서 일부승소 판결로 세금을 일부 돌려받을 길이 열렸다. 그런데 항소심인 서울고법에서 다시 뒤집어지고 말았다. 매니저 2명 중 1명이 A씨의 어머니였던 게 문제였다. 법원은 매니저비 중 일부가 조세의 부담을 부당하게 감소시킨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사건은 원고 전부 패소로 결론났다. 하지만 이 사건은 필요경비에 대해서 법원도 재판부에 따라 견해가 갈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다음은 2010년 행정법원 사건으로 연예인 부부인 B씨, C씨가 제기한 소송이다. B씨와 C씨는 소속사와 34개월 독점 전속계약을 맺으면서 각각 2억 원, 2억6000만 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이 전속계약금의 성격을 놓고 세무당국과 공방이 벌어졌다.
이들은 전속계약금은 기타소득에 해당된다고 보고 필요경비 80%를 적용하여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였다. 반면, ㄴ세무서는 사업소득으로 보고 각각 6700만 원, 8800만 원 정도의 세금을 부과하였다. 그러자 이들 부부는 전속계약금은 일시적 소득이고, 2006년 12월 개정 전 소득세법에서는 기타소득으로 분류되어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소송을 냈다.
법원은 "전속계약 기간, 계약금의 규모, 계약 내용 등에 비추어보면 독립적인 사업활동으로 볼 수 있다"며 사업소득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사업소득인지, 기타소득인지는 거래의 명칭이 아니라 실질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는 판단이었지만 B씨, C씨로서는 충분히 다퉈볼만한 여지가 있었던 사건이다.
마지막으로 2010년 수원지법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류스타인 D씨가 제기한 소송이었다. D씨는 2005년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면서 총수입 238억 원 중에서 필요경비 74억 원을 공제하여 68억 원의 세금을 납부하였다.
이에 대해 중부지방국세청은 필요경비중에서 신용카드액 2억 원과 스타일리스트 비용 2000만 원만 인정하고 다시 세금 23억 원(가산세 7억 원 포함)을 부과했다. D씨는 이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수원지법은 지난 6월 세무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납세의무자가 추계소득금액계산서에 의하여 종합소득세를 신고한다고 하여 신고대로 납세의무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라며 "과세관청으로서는 신고내용에 탈루 또는 오류가 있다면 과세표준과 세액을 경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법원은 필요경비에 대한 입증책임을 납세의무자에게 돌렸다. 즉 자신이 지출한 필요경비의 내역을 밝히지 못하면 과세관청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취지이다.
이 사건들은 공통적으로 필요경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쟁점이 되었다. 강호동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강호동은 소송을 통하지 않고 세무당국의 과세 처분을 수용했고, 또한 잠정은퇴라는 방식으로 도의적 책임을 졌다는 점이다.
3. 강호동, 형사처벌 가능성은?
7일 한 사업가가 강호동을 탈세혐의로 고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형사처벌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호동이 법정에 설 가능성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현재로서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법으로 따져보자. 탈세를 처벌하는 법으로 조세범 처벌법이 있다.
조세범 처벌법 제3조(조세 포탈 등)
①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써 조세를 포탈하거나 조세의 환급·공제를 받은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포탈세액, 환급·공제받은 세액의 2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한다. (단서조항 생략)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사기나 그밖의 부정한 행위'이다. 판례는 "조세포탈을 가능하게 하는 행위로서 사회통념상 부정이라고 인정되는 행위, 즉 조세의 부과징수를 불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위계 기타 부정한 적극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게다가 2010년 개정된 조세범처벌법은 해석의 논란을 없애기 위해 '사기나 그밖의 부정한 행위'를 ▲이중장부 작성 등 장부의 거짓 기장 ▲거짓 증빙 또는 거짓 문서의 작성 및 수취 ▲장부와 기록의 파기 ▲재산의 은닉·소득·수익·행위·거래의 조작 또는 은폐 등으로 못 박았다.
따라서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이 사실이라면, 필요경비의 인정문제로 세금을 추징당한 강호동에게 조세범 처벌법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또한 이 법에서는 세무당국의 고발이 소송조건이 되고 있다. 설사 강호동의 범죄가 인정되더라도 세무당국이 검찰에 고발하지 않는 한, 특정 개인의 고발만으로는 기소될 수 없다.
제21조(고발) 이 법에 따른 범칙행위에 대해서는 국세청장, 지방국세청장 또는 세무서장의 고발이 없으면 검사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4. 공개금지 과세정보, 누가 어떻게 유출했나
한국납세자연맹이라는 단체가 9일 인기 연예인의 세무조사 정보를 언론에 누설한 세무공무원과 국세청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따라 외부에 누설해서는 안 되는 과세정보가 어떻게 유출됐는지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국세기본법(제81조의13 비밀유지)에 따르면 "세무공무원은 과세정보를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 공무원이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부당한 목적으로 사용하면 개인정보보호법(제23조)에 따라 처벌된다.
국세청은 강호동, 김아중 등 연예인들의 과세정보 유출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과세정보를 알 수 있는 쪽은 세무공무원과 당사자들 뿐이다. 더구나 행정소송이나 검찰수사가 진행되지도 않은 상황이라면 의심의 눈길은 국세청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항간에서 이번 탈세 사건을 두고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아무런 목적이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국세청은 스스로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세금부과가 적법한지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야 하지만 국세청은 세무조사 초기에 조세포탈범으로 몰아 명예살인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꼬집었다.
고의적 탈세범인가, 여론의 희생양인가
고액 소득자들의 탈세 행위를 두둔할 뜻은 없다. 솔직히 수억원대의 세금 탈루 소식은 탈세든 과소납부든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대다수 직장인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기도 전에 언론을 통해 탈세범으로 찍혀 뭇매를 맞아야 한다면 당사자로선 억울할 만도 하다.
고의적 탈세범인가, 여론의 희생양인가. 적어도 내가 보기엔 강호동은 후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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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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