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껏 '친일파'... 그는 참 대책없는 가장입니다

[서평] 정운현의 <친일파는 살아있다>... 지겹지만 필요한 이야기

등록 2011.10.07 15:42수정 2011.10.2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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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10월 29일 오후 8시 25분]

한 작품이 이룬 쾌거


 <친일파는 살아있다> 표지
<친일파는 살아있다> 표지책보세
전 언론인 정운현씨의 <친일파는 살아있다>라는 신간을 펼치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지난 날에는 영화가 개봉되면 먼저 서울 유명극장에서 상영되다가 관객이 시들할 무렵에야 지방 중소도시에서 상영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서울 지방 중소도시가 거의 동시개봉으로 영화 문화만큼은 시공을 초월케 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발끈 달구었던 영화 <도가니>를 지난달 하순 개봉 다음 날인 원주의 한 극장에서 보면서 경악과 함께, 내가 사람이라는 게, 내가 평생 교육계에 몸담았던 사실이 못내 부끄러웠다.

곧 영화 <도가니>에 대한 분노는 볕 좋은 봄날 산불처럼 번져 실제 도가니 사건이 일어난 인화학교의 폐교가 추진되는가 하면, 도가니 방지법이 국회에 제출되고, 광주경찰서는 도가니 사건을 재수사한다는 보도가 연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도배하다시피 덮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 사회에서 한 작가의 소설이, 한 영화감독의 작품이 큰일을 해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을 보면서도 여전히 내 마음이 무겁고 우울한 것은 이 '도가니' 열풍도 시간이 흐르면 곧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식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점과 학교 사회의 비리가 비단 그 학교만이 아닐 거라는 점,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건은 자기와는 전혀 관계없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지겹게 들어온 '친일파' 문제


'친일파는 살아있다'. 언제 적부터 들어온 말인가. 해방 후 67년째다. 지겹게 들어온 말이고, 지겹게 들어왔어도 늘 그때뿐으로 유야무야 넘어간, 단골 화두였다. 몇 해 전 친일문제를 연구해온 한 인사(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에게 "왜 아직도 친일파 척결문제냐?"고 시침을 떼고 물어보았다.

나는 오히려 그들(비판세력들)에게 "왜 해방 60돌이 되도록 친일파를 옹호하려고 하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친일파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현재의 문제입니다. 민주화의 바탕이 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언론, 문화 등 우리 국가와 민족의 모든 개혁이 친일파 청산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화통일 문제까지도 친일파 청산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다시 그들에게 "친일파 청산을 하지 않고도 이 모든 문제를 다 개혁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 친일파 청산은 결코 과거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 현재의 문제입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도덕이 무너지고 정의감이 사라진 것은, 또 교육계와 검찰, 언론이 제 구실을 못한 것은, 해방 후 첫 단추인 친일파 문제를 제대로 해결치 않은 데서 그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999년 항일유적답사 길에 베이징에서 한 독립 운동가를 만났다.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는 기타 범죄는 범죄가 아닌 세상이다. 나라 팔아먹은 놈도, 왜놈 앞잡이 하던 놈도, 대를 물려가며 높은 벼슬하며 떵떵거리고 사는 세상에 배고파서 도둑질한 사람이 무슨 죄가 되겠느냐? 그런 나라는 부패하기 마련이고 도의와 양심은 땅에 떨어져 버린다.

그때 그분(이명준 선생)은 93세의 고령임에도 서릿발 같은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내 무딘 양심을 두들겼다. 평생 해외에 사시면서도 우리 사회의 부도덕을 단 한 마디로 진단하는 말씀이었다.

대책 없는 사람

정운현, 나는 그를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라는 책을 통해서 알았다. 그 책 속에서 나는 내가 다녔던 학교, 내가 몸담았던 학교의 전 교주도 친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내가 즐겨 읽던 시의 지은이도, 기미독립선언서를 쓴 분도,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도 친일에 발 담갔다는 사실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 글을 줄곧 써온 정운현을 2000년 여름, 내가 한 독립투사에 감명 받아 북만주를 헤매고 돌아온 뒤 한 대학연구실에 만났다. 그날 이후 그와 나는 기자와 작가로, 편집국장과 시민기자로, 심지어 학부모와 교사로, 요즘에는 같은 저술인(사실은 피차 백수로)으로 인연의 끈을 이어왔다.

그가 가정으로나 사회로도 한창 일해야 하는 49세 나이로 황당하게 직장에서 쫓겨난 이후 이따금 서울 가는 길에 만났다. 그의 집 가까운 독립문 공원 나무의자에서 음료수를, 인사동 주점에서 소주잔을 나누며,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곤 하다가 입에 발린 내 위로의 말조차도 오히려 그의 아픔을 가중시킬 것 같아 올봄부터는 연락도 삼가한 채 적조하게 지냈다. 그런 가운데 어제 그의 인생에 족쇄가 된 친일파 문제를 또 다룬 신간 <친일파는 살아있다>는 책을 보내왔다.

연전에 그를 만났을 때 "이제는 전문 저술가로 밥벌이를 해야겠다"는 말을 들고서는 나는 반가운 마음에 다산도 유배시절에 수백 권의 책을 저술했다는 얘기를 들려주며 애틋하고 뜨거운 사랑 얘기나 이런저런 흥미진진한 세상 뒷골목 이야기책을 펴내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를 충심으로 기원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정체성을 속일 수 없었던 듯, 또 기득권층에 가시가 되고, 일반 독자들이 별로 눈길을 주지 않을 책을 펴낸데 대해 다소 역정도 났다. 하지만, 우선 나부터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사 친지에게 보낸 뒤 지난 연분을 생각하여 그의 책 홍보에 소매를 걷었다. 정말 정운현, 그는 대책 없는 가장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 날 바른 역사를 쓰다가 궁형을 당한 현대판 '사마천'이요, 우리 사회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과 같은 의인이다.

우리 사회가 그래도 이나마 유지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안일보다 나라와 겨레의 양심이나 정의감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의인들이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곳에 더러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성서에서 말한 "의인 열 사람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했다"는 이야기 속의 열 사람 가운데 한 사람 역할을 정운현 그가 지금 하고 있다.

친일파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제 나의 글 마무리로 '친일파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를 말하고자 한다. 나는 오늘 아침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는데, 문득 2009년 10월 안중근 유적답사 길에 하얼빈에 갔을 때 일이 떠올랐다. 그때  하얼빈 동포 사학자 김우종 선생은 이제는 동북열사기념관이 된 옛 하얼빈경찰서 지하에 재현 놓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고문 및 신문 장면을 안내해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은 일제 폐망 후 전범(戰犯)과 한간(漢奸, 일제 협력자)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재판에 회부하여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고, 그들이 개전의 정으로 참회 눈물을 흘린 자는 모두 감형 등으로 용서하거나 석방했습니다. 가장 오랜 수형자가 25년 감옥에서 징역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황제 푸의까지도 처벌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벌써 그렇게 처리했어야 했다. 해방 후 즉시 우리나라도 반민특위를 제대로 운영하여 민족반역의 무리를 처벌했다면 오늘까지 친일문제가 우리 사회의 갈등요인으로 남아 있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하얼빈의 동북열사기념관(옛 하얼빈경찰서)
하얼빈의 동북열사기념관(옛 하얼빈경찰서)박도

이제 곧 해방 70년을 맞이한 오늘 사실 물리적 친일파 척결은 이미 그 시기를 놓쳤다. 대부분 친일 당사자들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물리적 제재보다 더 무서운 바른 역사의 기록을 남겨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친일파 척결이 우리 앞에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 마음 속에 있는 외세 숭상 의식을 뿌리 뽑고, 우리 언저리에 남아 있는 일제 찌꺼기를 없애고, 최소한 우리나라 선출직 지도자만큼은 친일 세력의 고리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뽑아야 그나마 흔들리는 나라의 바탕을 다질 수 있고 잦아진 우리 사회의 정의감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친일파 무리나 후손들도 자신 조상들의 친일 행위를 뼈저리게 반성 자숙케 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그들 가운데 깊이 참회하는 자에게 조상의 잘못에 면죄부를 주는 일련의 사회운동이 필료한 때다. 이러한 시민 사회운동이 우리 사회에 누적된 도덕 부재, 양심 불감증 등을 근본 치유하는 처방전이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명제를 충족시키는 거룩한 사업이리라.

대한민국에서 펜은 칼보다 강한가? 이 명제에 오늘을 사는 잘난 사람 가운데는 콧방귀를 뀌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두고 보시라. 그 언젠가는 역사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사실을 증명할 것이다. 칼의 개혁은 일시적이지만 펜의 개혁은 영구적이라는 사실도.

우리나라 사회 구석구석에 치유 불능의 도덕과 양심 부재의 현상은 백성들 사이 자발적 의식 개혁과 같은 시민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남과 아울러 우리 모두가 코페르니쿠스식 발상으로 생각과 삶의 태도를 확 바꿔야 나라도 살고 우리 모두도 산다. 정운현의 <친일파는 살아있다>에는 우리 사회 도덕 양심 불감증의 원인과 그 처방전을 함께 볼 수 있다.

 전 언론인 정운현
전 언론인 정운현책보세
1959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산과 들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대구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대학까지 마쳤다. 1984년 <중앙일보> 입사를 계기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 후 <서울신문> <오마이뉴스> 등 언론사에서 20여 년간 근무하였다.

1980년대 말 친일파 연구가 임종국 선생에 매료된 이후 친일 관련 자료 수집과 글쓰기에 전념하였으며, 그간 <친일파> <창씨개명> <서울시내 일제유산답사기> <증언 반민특위>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실록 군인 박정희> <반민특위 재판기록> <강우규 의사 일대기> 등을 짓거나 풀어서 펴냈다.

친일 문제를 연구한 것이 인연이 돼 2005년 6월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3년가량 사무처장을 지냈으며, 이후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를 잠시 지내기도 했다. 요즘은 집에서 주로 인문학 분야의 책읽기와 글쓰기로 하루를 보내고 있으며 블로그,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서울 독립문네거리 인근에 살고 있다.

블로그 : 보림재(http://blog.ohmynews.com/jeongwh59/)

친일파는 살아있다 - 자유.민주의 탈을 쓴 대한민국 보수의 친일 역정

정운현 지음,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2011


#친일파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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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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