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스러운 금융자본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에 분노하면서 시작된 미 뉴욕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조직력을 갖춘 노조와 시민단체 등의 가세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5일(현지 시간) 오후 로어 맨해튼 폴리스퀘어에 모인 1만5000여 명의 시위대.
최경준
대중반란·대중혁명의 제2 국면을 만들어내고 있는 '1%에 맞선 99%의 투쟁, 점거하라' 운동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이 운동의 제1의 특징은 오늘날 세계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21세기의 새로운 프롤레타리아층이라 할 만한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특히 프레카리아트에 속한 젊은이층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고,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의 피해를 입고 있는 사회 각계각층의 '워킹푸어들'이 이 운동에 대거 합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레카리아트와 워킹푸어들은 노동유연화와 사회양극화를 강제하는 신유주의적 자본축적과정 자체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둘째, 프레카리아트가 주축을 이루고 워킹푸어들이 합류하고 있는 이 '점거운동'은 그간 자신이 처한 구조적 압박을 개인의 힘으로는 더 이상 타개해 나갈 수 없음을 인지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개시한 운동이며, 광장에서의 만남과 토론을 통해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우면서 모두가 사회적으로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존재임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자, 또 이에 기반을 두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들이 공감하는 투쟁의 과제를 함께 찾고, 함께 투쟁을 조직하는 새로운 형태의 운동이다.
그러므로 이 운동에서는 시위 자체보다 시위에 앞서 행해지는 광장에서의 만남과 참여자들의 직접민주주의적 토론이 일차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이 운동은 원자적 개인들을 사회적 개인으로, 수동적 존재를 능동적 존재로, 절망의 늪에 빠진 나약한 존재들을 구조적 악에 대항하는 수많은 가이 포커스(Guy Fawkes)들'로 전환시키는 운동이고, 공감이 만들어내는 공동의 힘으로 구조적 힘에 맞서는 운동이다. 프레카리아트와 워킹푸어들의 자기주체화 과정이 이 운동의 진정한 핵심이다.
셋째, 오늘날 제도정당들은 대부분 어디서나 밑으로부터의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에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사회당이 집권하고 있는 그리스의 사례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다시피 좌파정당들조차 대부분 위기부담을 대중에게 전가시키는 자본의 반동적 시도의 공모자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정세 속에서 현 시기의 점거운동은 정당이나 노조에 의해 위로부터 동원된 대중이 아니라, 그런 시도들에 분노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대중이 주축을 이루는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운동에서는 대중의 자발적이자 직접민주주의적인, 비제도적 실천이 주된 동력을 제공해주고 있고, 제도권 정당이나 노조와 같은 기존의 조직으로써는 조직화되기 어려운 대중의 참여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운동은 대의제 민주주의와 제도정치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 운동은 제도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추후 자신도 일정하게 제도적 운동으로 전화시켜 나갔겠지만, 주되게는 제도화의 용기(容器)에 담기에는 그 용기가 너무나 작은 대중의 절실한 염원들을 실현시키기 위한 비제도적 투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기본적으로 광장민주주의, 점거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대중 자신의 직접적인 자기정치조직이라 할 수 있는 지역 총회와 지역 평의회와 같은 자기조직화의 길로 나아가면서 제도정치에 압박을 가하는 운동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넷째, 이처럼 점거운동은 정치로부터 소외되었던 대중 자신이 정치의 주체로 나서는 대중의 직접민주주의적인 정치적 실천이다. 그런데 이런 정치적 실천의 진정한 힘은 그것이 평화적 운동인가 아닌가, 합법운동인가 아닌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평화적 운동으로 전개하되 언제든지 법을 넘어설 수 있는 위력적인 참다운 대중정치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운동을 합법운동의 틀 안에 가두려는 시도들이 생겨날 수 있고, 역으로 올해 영국런던 빈민가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대중폭동이 점거운동을 대체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합법운동의 덫에 걸린 운동은 체제에 타격을 주기에는 너무 순치된 운동이고, 폭동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절망의 몸부림 그 자체일 따름이다. 이와는 달리 대중의 수평적인 만남과 직접민주주의적인 토론을 통해 대중의 감성적 공감과 이성적 판단들이 상승작용 하는 이 점거운동의 주된 운동형태는 법을 넘어서는 평화적 대중운동이지 않을 수 없다. 지배층이 이런 운동을 폭력적으로 탄압한다면, 이는 대중의 분노를 더욱 폭발시키고, 지배층이 자신들의 지배를 스스로 단축시키는 결과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점거운동, 어디로?'1%에 맞선 99%의 투쟁, 점거하라' 운동, 이 운동은 기본적으로 자본의 과잉축적위기의 자본주의적 타개책으로 성립되었지만 이제 그 수명을 다하는 있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지배체제에 대한 대중의 반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운동은 밀물이 밀려왔다가 빠지고 다시 밀려오는 방식으로 밀려오는 것과 같이 일시적으로 잠잠해 질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보면 지역적으로 더욱 확산되고 저변과 외연을 지속적으로 넓혀나가는 운동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월가 점거운동은 끝날 수는 있어도 점거운동 자체는 지구적으로 확산될 것이고, 한 곳이 끝나면 다른 곳에서 이어받고, 이어 받는 곳의 운동이 다시 정지된 곳의 운동을 재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다가 다시 하나로 합류하는 운동으로 전개될 것임이 틀림없다. 인류의 압도적 다수가 처한 오늘날의 현실이 이 운동을 일시적인 운동으로 끝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점거운동 자체가 이 현실에 대한 대중의 자기각성과정을 대규모적으로 진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대중들이 제출하는 요구들은 다기다양하다. 그러나 그 요구들에 담긴 기본적인 염원은 (자본주의의 극복의 요구로 전화할 잠재력을 지닌)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지배체체로부터의 해방이다. 물론 이 운동이 지도자 없는 대중의 직접민주주의적 운동이므로 현실변혁적인 적합한 대중적 구호 아래 일사분란하게 전개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형태의 운동은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대중은 스스로 운동과정에서 자신의 요구들을 보다 보편적인 요구들로 만들어 나가고, 이런 보편적인 요구들을 실현시킬 새로운 정치적 형태들을 끊임없이 창출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구조적 맥락과 운동의 주체 측면과 관련시켜 본다면, 대중의 요구들은 크게 보면 자본주의 극복의 지향성이 담긴 신자유주의반대로 수렴되고, 정치적으로는 대중의 의한 정치의 직접적인 전유와 직접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운동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좌파정당의 역할은 무엇보다 이 과정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촉진시키는 데에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지배층이 이 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양보책들을 강구할 가능성이 없지 않고, 자본주의의 위기를 구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운동의 급진화를 막기 위한 각종 개혁프로그램들을 적극적으로 제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과잉축적위기가 만들어내는 대중의 삶의 위기가 깊어 질대로 깊어진 상황 속에서 보다 급진적인 변혁을 위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 개혁책이 아니라. 이반하는 대중들을 체제에 '재통합'하기 위해 제시되는 모든 개혁책들은 미봉책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지배층의 주된 대응방식 역시 양보책보다는 반동적 배제책의 강구가 되지 않을 수 없고, 이는 다시 점거운동의 급진화를 한층 더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현재의 점거운동은 광장점거운동에서 더 나아가 공장점거운동, 직장점거운동, 최종적으로는 권력점거운동 등으로 무한히 발전해 나갈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우리가 사는 시대는 대중이 자본의 공세에 수동적으로 밀리기만 하는 상태를 끝장내고, 자본운동이 만들어내는 노동의 위기 등을 점거운동이라는 새로운 운동형태로 돌파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대중의 직접적인 정치적 진출이 눈부시게 이뤄지는 시대가 개막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의 직접적인 정치적 진출, 이는 대중의 수동화에 기초해 있는 대의정치와 제도정치가 자본운동이 대중의 삶의 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사태를 막지 못하고 있는 데에 대한 대중 자신의 심판이다. 또한 점거운동은 우리에게 역사를 진정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은 궁극적으로 대중 자신에게 있음을 가르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세균 기자는 서울대 정치학 교수입니다. 이 글은 <참세상>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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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대중', 폭력으로 건드리면...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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