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 표지
아고라
엄마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책 중간에 있는 만화를 보면서 이 책을 읽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삶을 들여다 보게 되리라 생각했다.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 속에 있는 만화에서 청소노동자의 어린 딸이 묻는다.
"청소 일 그만 하면 안 돼?"
이 말, 나도 엄마에게 했다. 엄마가 힘든 일을 하시는 게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그래서 아무 대책도 없이 "이제 청소 일 그만 해. 그거 안 해도 먹고 살잖아" 하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일을 다니셨다.
이 책을 보며 내가 청소노동자였던 엄마의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다. 솔직히 피하고 싶은 일이다. 여태까지는 엄마가 전해준 이야기로 청소노동자인 엄마의 모습을 상상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거기다가 청소노동자의 삶이 담긴 책을 읽는다면 내 마음이 얼마나 더 불편할까 걱정이 되었다.
엄마는 내가 고3 때인 1988년부터 결혼해서 첫아이를 낳은 1997년까지 2년간의 휴식기간을 빼고 8년 동안 청소 일을 하셨다. 엄마 나이 쉰일곱에서 여순여섯까지.
"사람들이 화장실에 그렇게 침을 뱉는다. 뭐 하나 만들어서 특허 신청하러 왔는데, 특허가 그렇게 쉽게 나냐? 사람들이 특허청 때문에 난 화를 화장실에서 분풀이하고 가는 거야!" "특허가 나기 어려운가봐?" "그럼. 매일 지방에서 새벽차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아주 새까매. 자주 보는 사람도 있어. 드럽고 치사하다며 침 뱉고 가는 사람들 마음도 이해가 돼." 변기와 타일, 세면대에 붙은 침을 수세미로 박박박 매일 닦으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분명 침을 뱉고 간 사람들에 대한 분노도 있었을 텐데…. 엄마는 되려 그들을 이해하고 안쓰러워했다.
그 건물에서 가장 더러운 일을 하고 돈은 가장 적게 받으면서도, 엄마는 가족사진이 놓여 있는 책상의 주인을, 상사에게 깨지는 부하직원을, 매일 가장 일찍 출근하는 신입사원을 안타까워했다. 꼭 그들이 자식이나 남편인 양 쳐다보았다. 그런 엄마가 들려주는 수다를 나는 매일 들었다.
청소노동자만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그래서 난 청소노동자만 보면 엄마 생각이 나서 친근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친근하게 느낀다고 해도 그분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을 쓴 글쓴이는 대학생 때 그 일을 했다. 그리고 그들의 투쟁에 함께한 경험을 이렇게 글로 남겼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홍익대 청소노동자의 투쟁에 글쓴이도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으로 함께했다. 홍익대와 같이 여러 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고려대학교의 학생 모임 '불철주야(불완전노동 철폐를 주도할 거야)'에서 활동했다. 이 학생들은 2002년부터 고려대 청소노동자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처음엔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에 들어가는 것조차 광장히 떨리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처음 찾아갔을 땐 어색하게 꾸벅꾸벅 커피만 얻어마셨다. 두 번째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만난 청소노동자는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출근해서 건물의 3층과 4층 전체를 혼자 청소해야 하고, 또 점심은 이렇게 쭈그려 앉아서 먹어야 한다고 했다. (줄임) "퇴근하고 집에 가도 쉬기 힘들어. 남편한테 밥 줘야 돼. 청소해야 돼. 빨래까지. 그러다가 금방 저녁 아홉 시 되면 자야 돼. 새벽 네 시에 일어나야 되니까는." (줄임) "어떡하겠어. 세상이 원래 이렇게 생겨 먹은 걸." - 본문 55쪽 이런 학생들의 용기 있는 행동 덕에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노동조건이 개선되었다. 그리고 이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엄마가 일했던 15년 전보다 더 나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도 책에 나온 분들처럼 이른 새벽에 첫차를 타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오후 3시 30분이면 퇴근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청소노동자들은 더 늦은 시간에 퇴근을 한다.
15년 전보다 못한 조건... 하지만 우울하기만 할까이 책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청소노동자의 모습을 너무 평면적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내가 엄마를 통해서 보았던 청소노동자의 모습은 역동적이었다. 물론 예전의 노동조건이 오히려 더 좋았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노년에 청소노동자로 일을 나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당히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분들은 이력서를 쓰고 입사를 했다. 이력서를 한 번이라도 써보았다면 알 것이다. 학력과 경력 난에 쓸 것이 없으면 없을수록 이력서를 쓰는 데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엄마는 나에게 "다른 아줌마들은 얼마나 멋쟁이들인지 몰라. 작업복 벗고 퇴근하면 사무실 직원들이 못 알아봐"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들 중에는 활달하고 또 놀기도 잘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글과 만화 속 청소노동자들의 모습은 너무 어둡고 답답했다. 물론 그분들이 처한 현실은 답답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분들은 여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소장 흉도 보며 살아갈 것이다. 청소노동자들이 출근 버스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습으로 만화를 그린 것은 조금 과장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 대다수 젊은이들은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에 들어간다. 대학생들 스스로 자신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대학교 내의 청소노동자들과의 연대를 한다는 것은 정말 놀랍고 용기 있는 일이다. 그 용기 있는 몸짓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앞으로도 이런 책들이 사회 곳곳에서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