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생기고 받은 돈, 쓰지는 못한다고?

[초보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⑬] 집에서 출산하기, 뒤통수 맞았어요

등록 2011.11.27 13:44수정 2011.11.2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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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면데면한 남매 아직까지는
데면데면한 남매아직까지는정가람

둘째의 가정출산 이후 우리는 많은 이들에게서 축하를 받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려 섞인 말들도 많이 들어야 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당연히 '집에서 낳아도 괜찮겠느냐'는 걱정이 주를 이뤘겠지만 이미 아이를 낳았던 터라,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첫째에 대한 걱정들이었다. '아무리 집에서 낳았다고는 하지만 첫째가 충격을 받지 않았겠느냐'는 질문들이 바로 그것이다.

첫째에 관한 걱정... 염려 마세요

아 귀찮아 엄마는 동생을 보라 하고
아 귀찮아엄마는 동생을 보라 하고정가람

문제는 첫째 까꿍이가 아직 말을 못하는 터라 우리 부부가 녀석의 충격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출산 당시 엄마 가슴을 붙잡고 그토록 울어대던 녀석의 모습을 떠올리면 분명 큰 충격을 받은 듯한데, 고작 30분 정도 지나서 동생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은 뒤 거실로 나가 제 할 일 하는 모습을 보면 그 충격을 이겨낸 듯보였다.

어쨌든 아내가 가정출산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는 엄마가 갑자기 둘째를 들고 나타나는 것보다는 동생을 낳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낫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우리의 바람대로 까꿍이는 충격을 덜 받았을까? 아니면 혹자들의 우려대로 그 충격이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아 잠재의식 속에 저장됐을까? 만약 동생의 탄생 장면이 하나의 트라우마였다면 그것은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많은 이들의 우려에도,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대 다행히 첫째는 둘째의 탄생으로 인한 충격을 그럭저럭 극복한 듯하다. 녀석의 입장에서 보면 듣도 보도 못한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전부였던 엄마의 품을 빼앗은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그 상황을 꽤 너그러이 인정하는 것 같다. 동생이 엄마 젖을 빨아도, 엄마가 동생 때문에 자신을 안아주지 못해도 까꿍이는 특별히 퇴행한다거나, 동생에게 해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녀석이 아예 질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정도가 걱정만큼 심하지 않다는 이야기일 뿐. 까꿍이는 평소에 건드리지도 않던 공갈 젖꼭지나 우유병을 동생에게서 낚아채 빨고 다녔고, 사람들이 모두 동생만 본다 싶으면 그 관심을 빼앗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아이를 안은 이들에게 살갑게 다가가 자신도 안아달라고 찡찡대고, 그것도 안 되면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등 나름의 최선을 다 하는 우리 첫째.

까꿍아,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단다


이거 원래 내 건데 동생이 사라진 틈을 타 슬립커버를 차지한 첫째
이거 원래 내 건데동생이 사라진 틈을 타 슬립커버를 차지한 첫째정가람

젖병 원샷 아기 꺼는 무조건 좋아
젖병 원샷아기 꺼는 무조건 좋아정가람

퇴행? 동생이 건들면 무조건 뺏고 보는 까꿍이
퇴행?동생이 건들면 무조건 뺏고 보는 까꿍이정가람

특히 동생이 나타나기 전 엄마와 가장 진한 애정을 나누었던 잠자리는, 그 애착이 컸던 만큼 녀석이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가장 확실하게 푸는 자리가 됐다. 녀석은 잠옷을 갈아입고 아빠와 굿나잇 키스를 한 뒤 엄마 손을 잡고 들어간 안방에서 "엄마, 찌찌"를 무한 반복하며 막무가내로 동생을 밀쳤다. 덕분에 겨우 재운 둘째는 계속해서 일어났고, 아내는 다시 그 둘을 재우느라 죽을 힘을 다해야만 했다(물론 아내는 그 스트레스의 일부분을 남편에 대한 바가지로 푸는 듯하다).

동생에게 부모의 관심을 일정부분 뺏겨 속상해하는 첫째를 보고 있자니, 가끔 어머니께서 이야기하시던 세 살짜리 내 모습이 그려졌다. 당시 난 두 살 터울로 여동생이 태어났음에도 제법 의연한 편이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동생을 등에 업었더니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동생이 태어난 이후 비록 제대로 말은 못 했지만 엄마 가슴은 동생 거, 엄마 등은 내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견디고 있었는데 그것이 깨졌던 것이다. 아마 이는 모든 첫째가 겪는 과정일 것이다. 까꿍아,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준단다.


돈이 없어서 집에서 낳았나?

누나의 소심한 복수 으흐흐
누나의 소심한 복수으흐흐정가람

집에서 둘째를 낳은 후, 첫째에 대한 걱정 다음으로 많이 들은 말은 의외로 가정출산의 비용 문제였다. 심지어 어떤 이는 내게 진지하게 다음과 같이 묻기도 했다.

"가정출산? 왜 병원 안 가고? 돈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가정출산을 했냐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가정출산은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 것보다 비쌌다(물론 자연분만을 전제로 할 경우인데 제왕절개를 하면 비용상 가정출산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다). 조산원의 가정출산은 보통 출장비 별도로 100~150만 원 정도 책정돼 있었는데, 아직까지 대중화하지 않은 만큼 산파와 기관에 따라서 드는 비용이 다르다.

생각해 보건대, 가정 출산은 결코 적은 비용이 들지 않았다. 물론 조산사가 시간·장소에 관계없이 산모의 집까지 찾아오고, 혹여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부담해야 하기에 그럴 테지만…. 첫째를 조산원에서 낳을 때 들었던 비용이 40만 원이었음을 상기해볼 때, 가정출산의 비용은 비교적 비싼 편이었다. 요컨대 돈이 없어서 가정출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집에서 아이를 낳겠다는 의지가 있어야만 가정출산을 할 수 있다.  

계속되는 누나의 복수 까불지 마란 말야
계속되는 누나의 복수까불지 마란 말야정가람

값비싼 가정출산. 문제는 당국이 이와 관련해 일정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육아 관련 혜택으로서 의료기관 외 출산 시 25만 원의 출산비를 지원해준다'며 생색을 내고 있지만, 정작 의료기관 외 출산비용이 일정치 않아 혜택의 실효성은 반감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이마저도 제대로 홍보를 하지 않아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출산한 산모 중 혜택을 받은 이가 3년(2006~2008년) 동안 0.03%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니 과연 정부가 과연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육아지원에 있어서 정부의 안일함은 조산원에 대한 정부의 애매한 입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선 보건복지부에서 정의한 의료기간외 출산시 출산비 지원을 보자.

"의료기관 외 출산시 출산비 지급방법 : 병·의원이나 조산원이 아닌 곳에서 출산을 한 경우에 우리공단 지사에 신청하시면 25만 원 출산비 지급."

위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산원은 병·의원과 함께 의료기관으로 분류돼 25만 원 출산비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지급받는 돈이 있어도 제대로 쓸 수 없네요

고운맘 카드의 혜택 아직도 불안정한 혜택
고운맘 카드의 혜택아직도 불안정한 혜택보건복지부 홈페이지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것은 모든 산모들에게 지원되는 고운맘 카드의 경우, 하필 조산원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고운맘 카드는 사용이 가능한 병·의원이 정해져 있다'고만 공지해 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 부부와 같이 조산원을 이용하며, 될 수 있으면 산부인과에서 많은 검사를 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매우 불합리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산부인과를 아주 가끔 다니며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으면 고운맘 카드에 들어 있는 돈을 모두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병원에서 권하는 검사를 모두 하다 보면 고운맘 카드 역시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내처럼 출산 경험이 있는 산모들은 산부인과에서 권하는 몇몇 검사들을 거부하기도 한다. 쓸모없기 때문이란다. 가령, 산부인과에서는 기형아 검사를 하라고 권유하지만 그렇다고 낙태는 할 수 없다. 게다가 기형아 판별이 나더라도 100%는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도대체 왜 기형아 검사를 하라는 것일까? 불법이지만 낙태를 하라는 건가?

정부는 하루바삐 고운맘 카드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육아·출산에 사용되는 비용이 지정된 의료기관에서만 사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곧 태어날 아이의 옷을 사는 것도, 엄마 뱃속 아기의 건강을 위해 산모가 잘 먹는 것도 육아·출산에 관계된 비용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태어난 우리 둘째는 잘 자라고 있다. 누나 까꿍이의 '어처구니없는' 관심과 애정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둘째를 집에서 낳은 것에 관련해 아쉬운 것은 단 하나. 이 집이 자가가 아니라 전세라는 사실이다. 집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복이 온다고 하던데,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게 아쉽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둘째와 이곳을 찾아와 "이 집이 네가 태어난 곳"이라고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가정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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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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