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귀찮아엄마는 동생을 보라 하고
정가람
문제는 첫째 까꿍이가 아직 말을 못하는 터라 우리 부부가 녀석의 충격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출산 당시 엄마 가슴을 붙잡고 그토록 울어대던 녀석의 모습을 떠올리면 분명 큰 충격을 받은 듯한데, 고작 30분 정도 지나서 동생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은 뒤 거실로 나가 제 할 일 하는 모습을 보면 그 충격을 이겨낸 듯보였다.
어쨌든 아내가 가정출산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는 엄마가 갑자기 둘째를 들고 나타나는 것보다는 동생을 낳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낫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우리의 바람대로 까꿍이는 충격을 덜 받았을까? 아니면 혹자들의 우려대로 그 충격이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아 잠재의식 속에 저장됐을까? 만약 동생의 탄생 장면이 하나의 트라우마였다면 그것은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많은 이들의 우려에도,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대 다행히 첫째는 둘째의 탄생으로 인한 충격을 그럭저럭 극복한 듯하다. 녀석의 입장에서 보면 듣도 보도 못한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전부였던 엄마의 품을 빼앗은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그 상황을 꽤 너그러이 인정하는 것 같다. 동생이 엄마 젖을 빨아도, 엄마가 동생 때문에 자신을 안아주지 못해도 까꿍이는 특별히 퇴행한다거나, 동생에게 해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녀석이 아예 질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정도가 걱정만큼 심하지 않다는 이야기일 뿐. 까꿍이는 평소에 건드리지도 않던 공갈 젖꼭지나 우유병을 동생에게서 낚아채 빨고 다녔고, 사람들이 모두 동생만 본다 싶으면 그 관심을 빼앗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아이를 안은 이들에게 살갑게 다가가 자신도 안아달라고 찡찡대고, 그것도 안 되면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등 나름의 최선을 다 하는 우리 첫째.
까꿍아,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