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해체장생포 고래 해체 장면 사진(1950년대)
김갑수
고래가 발견된다. 포경선이 달려가고 곧장 작살포를 발사한다. 고래 몸에 박힌 작살의 촉은 별 모양으로 펼쳐진다. 동시에 황산을 채운 작은 유리병이 깨지면서 2차 폭발이 일어난다. 고래의 몸체에서 선혈이 솟구친다. 마지막에는 폐에서 피가 터지고 고래가 뿜어내는 거친 숨결이 붉은 물줄기로 솟아오른다. 인간은 이것에 '붉은 장미'라는 로맨틱한 호칭을 부여한다. 동시에 인간은 고래가 곧 죽으리라는 것을 안다. 선혈이 바다를 적셔 일대의 수면이 벌겋게 물든다. 포경선이 다가가 죽은 고래의 몸에 공기를 주입하여 물에 띄우고 배에 옮겨 싣는다.
고래가 해체된다. 껍질을 벗겨내고 살덩어리를 잘라서 갑판에 쌓아 둔다. 거품이 빠지면 살 조각들을 다시 한 차례 얇게 잘라낸다. 인간은 이것을 '바이블'이라는 성스러운 이름으로 부른다. 어쨌든 바이블처럼 얇아야 비계의 용해가 빠르다. 용해소의 솥에 들어간 살 조각들에서 지방이 녹으면서 나온 기름을 냉각통에 쏟아 부은 후 식으면 선창에 적재한다. 향유고래의 경우 다른 과정이 하나 더 추가된다. 뼈대에서 비계 덩어리를 모두 떼어낸 뒤 커다란 식칼로 고래의 창자를 헤집는 일이다. 향유고래의 창자 속에는 값비싼 용연향의 원료인 장결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바스크 인에 이어 17세기부터 20세기의 1차세계대전을 거쳐 2차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뉴잉글랜드의 미국인, 마지막으로 노르웨이 러시아 일본 등이 세계 역대 포경 강국의 목록이다. 이 목록이 무엇과 닮아 있는가? 잔혹한 포경의 역사는 잔혹한 제국주의의 역사와 비례한다.
18, 19세기 이루어진 고래 학살은 지금 통계에는 잡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 어간 해마다 5만 마리의 고래가 도살되었다는 것은 신빙성 있는 통계다. 심지어 서구열강의 남극선단은 한 철에 3만 7000마리의 고래를 사살한 일도 있었다.
고래의 숫자는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에는 30만 마리의 대왕고래가 있었지만 20세기 말에 이르러 2000마리로 줄어든다. 1949년에 4만 마리였던 혹등고래 역시 지금 2000마리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혹등고래에 대한 포경 금지 조치는 1967년에, 대왕고래에는 1967년에야 내려진다. 1940년에 4만 마리였던 참고래는 최근의 시점으로 8000마리 정도 남아 있고, 100만 마리를 육박했던 향유고래도 40만 마리밖에는 남지 않았지만, 이 두 고래에 대한 사냥은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고래의 종류가 몇 종이나 되는지는 학설에 따라 구구하지만 약 80종 이상이라고 보면 무리가 없다. 고래는 크게 보아 70여 종의 이빨고래와 13종의 수염고래로 분류된다. 요컨대 이빨과 수염의 유무에 따라 고래는 두 개의 아목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이빨고래의 대표 종으로는 향유고래와 범고래를 꼽는다. 그들은 원추형의 이빨로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다. 이빨이 박힌 턱으로는 미끄러지는 먹이나 살아서 꿈틀거리는 먹이를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 미국 뉴베드퍼드 박물관에는 아래턱의 길이만 7미터가 되는 고래가 소장되어 있다. 이빨고래는 먹이를 물기도 하고 찢기고 하며 끊기도 한다. 콧구멍은 하나라서 한 줄기 물을 뿜는다. 향유고래는 초대형 낙지나 대왕오징어 등을, 범고래는 물개나 바다표범 등을 사냥한다. 향유고래의 잠수 시간은 길어서 최장 한 시간가량 물속에 있기도 하며 해저 3000m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수염고래의 수염 안에는 먹이를 여과시켜 주는 섬모(纖毛)가 있다. 수염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이빨 대신 위턱의 피부가 변화한 것이다. 수염고래는 육상의 포유류처럼 콧구멍이 두 개 있어 두 줄기로 물을 뿜는다. 보통 2∼3마리씩 무리를 이루며, 플랑크톤 성(性) 갑각류와 떼 지어 이동하는 작은 물고기를 즐겨 먹는다. 잠수 시간은 짧아 깊이 잠수하였을 경우에도 10~20분이 지나면 수면에 떠오른다. 수염고래 중에는 수명이 100년이나 되는 긴수염고래가 있다.
사라진 한국계 고래, 귀신고래는 어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