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한국토종 '귀신고래'는 어디로 갔을까

[르포-고래 이야기④] 대곡리 반구대에서 울산만 장생포까지

등록 2011.10.20 19:01수정 2011.10.2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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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포 5,60년대 이 포구에는 포경선이 무시로 오갔다.
장생포5,60년대 이 포구에는 포경선이 무시로 오갔다.김갑수

장생포에는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고래연구소가 한 구역에 자리 잡고 있다. 고래박물관은 포경선 진양호의 선체를 살려 지은 것이다. 여기에는 포경역사관과 귀신고래관 등이 있다. 고래생태체험관에 들어가면 작은 돌고래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관람할 수 있다.

30년 전쯤의 장생포 포구에서는 밤안개를 뚫고 들어오는 포경선의 뚜우~뚜 고동 소리를 매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1950년대만 해도 매일 고래가 잡혔고, 많을 때에는 하루 5~6마리가 포획되기도 했다. 포경선이 들어오고 나면 고래 해체장이 북적거렸고 포구 일대에는 고래 삶는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의 거리에는 고래고기집이 즐비하다. 포경이 전면 금지되었지만 혼획된 고래나 자연사한 고래는 해양경찰의 확인 후 해체할 수가 있다. 이 지역에서 인간은 최소 6000년 전부터는 고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포경이었다. 인간이 자신과 근연성이 큰 고래를 노골적으로 적대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 서양의 일인데, 이것은 의외로 심각한 의미를 갖는다.

잔학의 극치, 고래 포획과 해체 과정

고래 해체 장생포 고래 해체 장면 사진(1950년대)
고래 해체장생포 고래 해체 장면 사진(1950년대)김갑수

고래가 발견된다. 포경선이 달려가고 곧장 작살포를 발사한다. 고래 몸에 박힌 작살의 촉은 별 모양으로 펼쳐진다. 동시에 황산을 채운 작은 유리병이 깨지면서 2차 폭발이 일어난다. 고래의 몸체에서 선혈이 솟구친다. 마지막에는 폐에서 피가 터지고 고래가 뿜어내는 거친 숨결이 붉은 물줄기로 솟아오른다. 인간은 이것에 '붉은 장미'라는 로맨틱한 호칭을 부여한다. 동시에 인간은 고래가 곧 죽으리라는 것을 안다. 선혈이 바다를 적셔 일대의 수면이 벌겋게 물든다. 포경선이 다가가 죽은 고래의 몸에 공기를 주입하여 물에 띄우고 배에 옮겨 싣는다.

고래가 해체된다. 껍질을 벗겨내고 살덩어리를 잘라서 갑판에 쌓아 둔다. 거품이 빠지면 살 조각들을 다시 한 차례 얇게 잘라낸다. 인간은 이것을 '바이블'이라는 성스러운 이름으로 부른다. 어쨌든 바이블처럼 얇아야 비계의 용해가 빠르다. 용해소의 솥에 들어간 살 조각들에서 지방이 녹으면서 나온 기름을 냉각통에 쏟아 부은 후 식으면 선창에 적재한다. 향유고래의 경우 다른 과정이 하나 더 추가된다. 뼈대에서 비계 덩어리를 모두 떼어낸 뒤 커다란 식칼로 고래의 창자를 헤집는 일이다. 향유고래의 창자 속에는 값비싼 용연향의 원료인 장결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바스크 인에 이어 17세기부터 20세기의 1차세계대전을 거쳐 2차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뉴잉글랜드의 미국인, 마지막으로 노르웨이 러시아 일본 등이 세계 역대 포경 강국의 목록이다. 이 목록이 무엇과 닮아 있는가? 잔혹한 포경의 역사는 잔혹한 제국주의의 역사와 비례한다.


18, 19세기 이루어진 고래 학살은 지금 통계에는 잡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 어간 해마다 5만 마리의 고래가 도살되었다는 것은 신빙성 있는 통계다. 심지어 서구열강의 남극선단은 한 철에 3만 7000마리의 고래를 사살한 일도 있었다.

고래의 숫자는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에는 30만 마리의 대왕고래가 있었지만 20세기 말에 이르러 2000마리로 줄어든다. 1949년에 4만 마리였던 혹등고래 역시 지금 2000마리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혹등고래에 대한 포경 금지 조치는 1967년에, 대왕고래에는 1967년에야 내려진다. 1940년에 4만 마리였던 참고래는 최근의 시점으로 8000마리 정도 남아 있고, 100만 마리를 육박했던 향유고래도 40만 마리밖에는 남지 않았지만, 이 두 고래에 대한 사냥은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고래의 종류가 몇 종이나 되는지는 학설에 따라 구구하지만 약 80종 이상이라고 보면 무리가 없다. 고래는 크게 보아 70여 종의 이빨고래와 13종의 수염고래로 분류된다. 요컨대 이빨과 수염의 유무에 따라 고래는 두 개의 아목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이빨고래의 대표 종으로는 향유고래와 범고래를 꼽는다. 그들은 원추형의 이빨로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다. 이빨이 박힌 턱으로는 미끄러지는 먹이나 살아서 꿈틀거리는 먹이를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 미국 뉴베드퍼드 박물관에는 아래턱의 길이만 7미터가 되는 고래가 소장되어 있다. 이빨고래는 먹이를 물기도 하고 찢기고 하며 끊기도 한다. 콧구멍은 하나라서 한 줄기 물을 뿜는다. 향유고래는 초대형 낙지나 대왕오징어 등을, 범고래는 물개나 바다표범 등을 사냥한다. 향유고래의 잠수 시간은 길어서 최장 한 시간가량 물속에 있기도 하며 해저 3000m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수염고래의 수염 안에는 먹이를 여과시켜 주는 섬모(纖毛)가 있다. 수염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이빨 대신 위턱의 피부가 변화한 것이다. 수염고래는 육상의 포유류처럼 콧구멍이 두 개 있어 두 줄기로 물을 뿜는다. 보통 2∼3마리씩 무리를 이루며, 플랑크톤 성(性) 갑각류와 떼 지어 이동하는 작은 물고기를 즐겨 먹는다. 잠수 시간은 짧아 깊이 잠수하였을 경우에도 10~20분이 지나면 수면에 떠오른다. 수염고래 중에는 수명이 100년이나 되는 긴수염고래가 있다.

사라진 한국계 고래, 귀신고래는 어디로?

귀신고래 영상물 한국토종 귀신고래 영상물, 한국 영해에서 사라졌다.
귀신고래 영상물한국토종 귀신고래 영상물, 한국 영해에서 사라졌다.김갑수

장생포는 수염고래 중 가장 유명한 귀신고래와 인연이 각별한 곳이다. 지구상에 귀신고래는 두 계군이 있다. 태평양 동쪽의 캘리포니아 계 귀신고래와 서쪽의 한국계 귀신고래이다. 해안선 가까이에 소리 없이 출몰한다고 해서 '귀신고래'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한국계 귀신고래는 한국 남해에서 번식하고 여름이면 북쪽 오호츠크 해를 회유한다.

생물은 통상 번식 장소를 이름으로 붙인다. '한국계 귀신고래'라고 하는 것은 번식 장소가 물론 한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인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Roy Chapman Andrews)는 1910년부터 일본 포경선을 타고 고래 연구를 하던 중, 한국 바다에 산다는 귀신고래 소문을 듣고는 조사를 위해 포경기지가 있는 장생포로 온다. 그 해 겨울 그는 포경선에 잡혀 온 생소한 고래를 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귀신고래였다.

이후 그는 1년 넘게 고래 연구에 몰두한 후 1914년 미국으로 돌아가 귀신고래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다. 앤드루스는 이 논문에서 귀신고래는 지구상에 태평양 동쪽과 서쪽에 두 계군이 있음을 처음 밝히면서 특히 태평양 서쪽의 귀신고래를 '한국계 고래'라고 명명했다. 이후 학계에서는 한국의 동해를 회유하는 귀신고래를 자연스럽게 한국계 귀신고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한국계 귀신고래는 몸 전체가 회색이며 복부 색은 조금 더 엷다. 두꺼운 황백색 수염에 길이는 15~16m 몸무게는 45톤 정도이다. 캘리포니아 계 귀신고래는 지금 생존 개체수가 2만 5000마리 이상이지만 한국계 귀신고래는 일제의 무분별한 포획이 원인이 되어 한국 바다에서 1960년 이전에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귀신고래는 1977년 장생포 옆 방어진에서 최종 목격된 이후 아직까지 한국 바다에 자취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96년~2000년 사할린에서 이루어진 미·러 합동조사반에 의해 한국계 귀신고래가 150여 마리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인의 포경에 쫓겨 한국에서 떠난 귀신고래는 최근 일본 동남해안에 간혹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사실은 NHK 방송 카메라에도 포착되었다. 일본학자 중에는 한국계 귀신고래를 이제 '아시아 계 귀신고래'라고 명칭을 바꿔 부르는 이가 있으며 중국 일부 학자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2003년부터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서 매년 12월~1월 귀신고래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아직 성과가 없다. 2004년부터는 한국 바다에서 귀신고래를 제보하거나 사진 또는 동영상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500만 원~1000만 원의 현상금을 내건 데에는 한국계 귀신고래의 존재에 대한 열망이 반영되어 있다. 물론 이 현상금은 아직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생물의 이름 붙이기에 대단한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에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우리 과학자들이 지금부터라도 한국귀신고래라는 이름으로 논문을 발표하고 활발한 연구 활동을 벌인다면 한국귀신고래의 이름은 분명 지켜진다고 봐야겠지요."-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손호선 연구원의 말
#귀신고래 #장생포 #고래포획 #고래해체 #향유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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