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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문 기사에 '농민군 모집'이란 기사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나는 금방 한 장로님하고 '동학의 현대적 의미'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다가 막 귀가했다. 신문의 이 기사는 동학농민군 모집에 관한 글이었다. 연락처는 '녹두장군 전봉준'으로 되어 있었고, 친절하게 '010'으로 시작하는 휴대폰 번호까지 기재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시기적으로 한 세기가 더 지난 19세기 말의 사건을 오늘의 상황에 빗대어 기사화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부터 옛날신문을 만드는 수행평가 숙제라면서 실제 차지하는 성적 비중에 비해 턱없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신문 만들기에 공을 들이는 것 같았다. 처음 보았을 때 왜 신문이름을 <古日新聞>(고일신문)으로 정했냐고 물어보니까 번역하면 '옛날신문'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대답했다. 듣도 보도 못한 단어여서 그런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중학생인 딸애는 상관없다며 나름대로 풀이를 했다.'古'(고)가 '옛 고'자이고 '日'(일)이 날일 자이니까 조합하면 '옛날'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어림잡아 정한 신문 제목이 되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사전을 뒤져보니 정말 그런 단어가 있었다. '고일'(古日) 밑에 두 가지 뜻이 나란히 병기되어 있었다. ①'지난 날', ②'옛날'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왕 신문을 만드는 것이라면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좋을 듯해 내심 안도되었다.
벌써 지난 세기 말이 될 것 같은데, 사계절출판사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신문 형식을 빌려 발간한 <역사신문>이라는 것이 있었다. 원시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를 범위로 그 안에 발생한 각종 역사적 사건을 신문 기사화 한 것이다. 그 출판사는 이 <역사신문>이 독자의 호응을 얻자 해방 이후 시기를 <근현대사신문>이란 이름으로 출간한 바 있다. 이른바 <역사신문> 시리즈의 후속편인 셈이다.
아이들 수능 논술 준비용으로 많이 읽힌 이 <역사신문>을 보고 암시를 받아 <고일신문>을 수행평가 숙제로 택한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일단 요즘 아이들이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역사를 중3인 우리 윤경이가 좋아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또 한자(漢字)에 대해서는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일 정도로 거리감을 두는 아이가 신문 제목을 <古日新聞>으로 정한 것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군가가 가르침을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신문의 한자 이름을 더 예스럽게 꾸미는 의미에서 세로쓰기 한자 문장의 예를 본 떠 '聞新日古'로 배치하고 있었다. 정말 옛날 신문을 만들려면 모든 것이 옛 것을 따를 때 더 의미가 있게 된다. 윤경이는 그런 점을 신문 제작(?)에 충분히 반영하고 있었다. 기특했다. 아이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들이밀며 국영수만 잘 하면 나머지는 덩달아 잘 하게 된다고 강조해도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였다.
윤경이는 영수보다 국어와 국사를 포함한 사회 과목에 더 강하다. 평소 신문을 보고 뉴스를 즐겨 듣는 등 그의 관심 영역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그런 윤경이이니만큼 이 <역사신문>에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정성을 쏟는 것이 그로서는 자연스러웠을지 모른다. 서재에 놓여 있는 신문을 한참 뒤인 오늘에야 훑어보게 되었다. 이런 기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거문도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은 특별히 해설을 곁들인 기사였다. '일본 상인과의 충격 인터뷰'에는 한성(漢城)의 상권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일본 상인들의 상술에 대해 인터뷰식으로 작성한 기사였다.
'조병갑,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에서는 농민들을 착취해서 동학농민운동의 단초를 제공한 고부군수 조병갑이 시대의 가해자인가 아니면 피해자인가의 질문 앞에 그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가정(假定)의 글이었다. 그 외에 '방곡령 사건', '을미사변', '아관파천', '독립협회', '을사조약'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사건들을 육하원칙(六何原則)에 입각해 잘 정리해 주고 있었다.
글로벌화 시대에 민족과 국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민족애와 국가관을 올바로 갖는 것은 시대를 초월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잘 정립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역사를 아는 것은 우리를 아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역사 기록에 정신을 덧붙이면 역사관(歷史觀)이 될 터인데, 일제시대 경제 발전이 우리나라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 등 일본 관학(官學)의 아류에서 벗어나는 길도 우리 역사를 바로 알 때 가능하다.
아직 어린 아이이지만 옛날 신문을 만들면서 우리의 역사를 알아가려고 하는 막내 딸 윤경이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비록 수행평가 숙제로 만든 신문이지만 옛 것을 정리함으로써 새 것을 올바로 보려는 아이의 마음이 읽혀져 흐뭇했다. 과거 우리 역사를 교훈 삼아 윤경이의 삶이 정직과 진실 그리고 사랑 위에 피어나기를 바란다. 이런 것을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라는 것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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