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주야장천 불철주야 카드게임을 한 결과 얻은 결과물은 오른손에 박힌 굳은살이었다.
김학용
한참 당구에 빠진 사람은 자려고 누워도 천장이 당구대로 보이고, 바둑에 몰입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라는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서 있거나 누워있거나 온통 눈앞에 포커 판의 형상이 아른거렸다. 자려고 누워도 아른아른, 밥 먹을 때도 아른아른, 세면대에 담긴 물을 봐도 아른아른, 자꾸 눈에서 아른거리고 창가로 고개를 돌리면 딜러가 날 쳐다보고 있는 듯했다.
아, 내가 어쩌다 폐인이 되었나 싶어 물끄러미 천장만 쳐다봤다. 한두 번은 그럴 수도 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았다. 하지만 깨달았을 때는 이미 중독을 넘은 중환자 수준이었다. 역시 후회도 잠깐, 다시 천장에서는 어느새 패가 돌아간다.
회사의 매출마감이 코앞인데도 게임에 몰두하느라 월말을 넘긴 적이 부지기수였다. 이렇게 2년을 지내다보니 수면부족, 건강악화는 물론 인간관계도 서서히 단절되기 시작했다. '벽을 보고 쳐도 잃는 게 도박'이라고, 아무리 해도 이길 수는 없었다.
2년간의 폐인생활을 정리하자니 이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습관적으로 PC에 앉으면 로그인은 계속됐고 플레이는 이어졌다. 이윽고 가족들의 시선이 점점 차가워졌다. 쫓기는 기분이었다. 평생 이렇게 폐인처럼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교회 전도사님께 고백, 노숙자와도 대화해보니...고심 끝에 떨리는 마음을 무릅쓰고 수십 번이나 전화상담센터 전화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한마디도 못해보고 전화를 끊었다. 대신 인터넷으로 상담을 하는 도박중독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저 도박 끊고 싶은데 어떻게 하죠'라는 물음에 상담사의 답장 메일은 '도박은 재미가 아니라 질환, 혼자 힘으로는 절대 못 끊어… 끝은 패가망신, 꼭 명심하라'는 천편일률적인 답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교회의 전도사님에게도 고백했다.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는 아니겠지만 누구에겐가 솔직히 말을 했다는 사실에 힘이 생겼다. 역시, 전화 한번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니 이젠 끊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더 이상 소문이 나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따랐다. 일부러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불리는 정신요양원 입구에도 가보고, 대합실 노숙자 아저씨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봤다. 그랬더니 거울 속에서 피폐해진 내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쌓아둔 사이버머니를 불특정 다수에게 다 뿌리고, 5~6개에 이르는 아이디도 정지시켰다. 인터넷도박을 끊기 위해 인터넷이 접속되지 않는 공간에 격리될 필요가 있었지만, 업무의 특성상 그러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인터넷 중독이 전화위복이 됐다.
포토샵이나 디자인분야에 일가견이 있던 나는 이때부터 교회홈페이지 웹마스터를 자청했고 홍보업무를 도맡았다. 또, 회원이 1천여 명에 이르는 선천성 환우회 인터넷카페의 운영을 시작했다. 업무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예 하루 종일 교회홈페이지와 카페만 드나들며 관리에 열중했다.
명심하시라. '내가 지금 합법적인 게임을 하는 것이지,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헤어날 수 없다. 도박이라 생각지 않기 때문에 치료가 힘들고, 컴퓨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어 더 유혹을 뿌리치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10여 년 전의 폐인시절,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붙들고 창문 너머로 아침이 밝아 오는 걸 지켜보던 꿈만큼이나 무서운 악몽이 또 있을까? 도끼로 손모가지를 자르면 발목으로도 계속 한다는 도박. 호환·마마, 마약보다 더 무섭다는 인터넷도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못할 것은 없다.
결국 내가 폐인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을까? 해방된 게 아니라 여전히 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재미삼아(?) 접속하는데, 이 유혹의 싸움은 어쩌면 평생 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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