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탄광에서 노동을 하다 양팔이 절단된 청년노동자 류펑씨.
김성광
경희대 근처 조용한 커피가게에서 그를 만났다. 얼마 전 중국을 다녀와 촬영한 사진들을 중국인 유학생 유검남(22)씨와 함께 편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탄광에서 일하다가 두 팔을 잃은 청년노동자 류펑(27)씨가 변변치 않은 생활수당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갖고 있는 '스펙'이라고는 일반인도 쉽게 딸 수 있는 사진기능사와 컴퓨터그래픽운용기능사 단 두 개뿐. 하지만 그의 두 눈동자에는 힘든 세상을 직접 체득한 뒤에야 느낄 수 있는 감성의 잔상들이 뚜렷이 비춰졌다.
김성광씨는 멕시코 마약 루트, 군사독재 국가인 미얀마, 결핵 환자들로 가득한 캄보디아 병원, 그리고 최근에는 원전 피해지역인 일본 토호쿠 등 한국의 기성언론들이 들어가기 위험한 지역을 드나들며, 소외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사진을 찍어왔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신문지면에도 종종 실린다. 앞서 언급한 수지 여사 관련 사진 외에도 스페인 최대 주간지 <엘세메날(XL Semanal)>에는 한국 학생의 일상을 담은 르포르타지, 대한결핵협회에서 발행하는 <보건세계>에는 캄보디아 결핵 실태 관련 사진들이 실렸다.
특히 캄보디아 결핵 실태 관련 사진은 <중앙일보>와 캐논코리아가 공동 주최한 '제8회 대학생 기획·탐사 보도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다음은 프리랜서 사진기자 김성광씨와 나눈 일문일답.
프리랜서는 영혼이 자유로운 직업- 우선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의 꿈을 키우게 된 계기부터 말해달라."정말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 1학년 때 학보사 '펜 기자'였는데 모교의 한의학 박람회를 취재하다가 만져본 공용 사진기가 무척 탐났다. 교회에서 받은 장학금 60만 원을 몽땅 털어 기본형 사진기를 마련했고, 처음에는 어설프게 밤하늘이나 노을 등 풍경을 주로 찍어댔다. 그러다가 2010년 초 캐나다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보내던 중 아이티 대지진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 전 세계 언론사에 사진을 공급하는 '게티 이미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사진들을 보면서 깨달음이 있었다. '아! 바로 저거다. 내가 찍어야 될 장면이 풍경이나 자연이 아닌 현장에 직접 찾아가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그런 저널리스트가 돼야겠다.' 그 후 미국 미주리 대학에서 포트폴리오 리뷰를 받기도 했다. 또 멕시코에서 작년에만 2400여 명이 마약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우디 후아레즈라는 악명 높은 분쟁지역에 들어가 그곳 주민들의 애환을 사진에 담았다. 첫 포트폴리오 작품이었다."
- 촬영 기법은 어디서 배웠는가?"아마추어이기에 더욱 전문적인 스승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의 이메일 주소를 샅샅이 찾아내 100통 이상 메일을 보냈다. 사진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여성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세계적인 사진대회에서 수 차례 입상한 정은진 기자한테서 의미심장한 답신이 왔다. 성광씨가 이 일을 하고자 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고."
- 그래서 어떻게 대답했나?"사진 저널리스트로서 공과 사,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싶은데 전자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진가가 되고 싶어서, 후자는 타인의 고통을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이후 블룸버그사에서 취재보조를 하며 그녀로부터 전수받은 노하우와 경험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통신사가 찍는 사진은 어떤 것인가에서부터 차근차근 가르침을 받았다. 자기는 '날로 부려먹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며 일을 받게 되면 100달러씩 받으며 배웠다. '앙코르(Ancor) 포토워크숍'에서는 올리비에 전 에이피(AP) 포토에디터를 소개해주었는데 그분의 지도를 받아 찍게 된 것이 바로 이번 <중앙일보> 탐사보도 사진전의 대상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