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새진보통합연대 상임대표
남소연
- 혁신이 없다면 통합 역시 소용이 없다는 얘기인가.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얘기를 많이 한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할 것 없이 안 교수가 자신의 당에 와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안철수 모시기' 하지 말고 '안철수 따라하기'에 나서라고 말하고 싶다. 안 교수가 자신의 주식지분 절반을 기부할 때 기존 정당은 보유 권력·권력 절반 내놔야 할 것 아닌가. 안 교수 따라하면 국민들은 정치인들 달리 보고 좋아해준다. 스스로 뼈와 살을 깎아내는 정치개혁을 할 때 통합의 명분도 있는 것이다.
진보정당은 세를 키워 민주당에게 양보를 받아내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물고기 몇 마리 얻는 것보다 좋은 그물을 얻는 게 진보세력의 집권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거제도를 안 바꾸고 진보정당이 집권한 나라는 영국 밖에 없다. '혁신과 통합'은 이미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에 대해 도입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동의하면 선거연합정당 가능하다"- 손 대표를 최근 만났나. "최근 두 번 연달아 만났다. 손 대표가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났던 무렵이다. (민주통합에) 함께 하자는 제안이었다. 나는 이미 <나는 꼼수다>에서 밝혔듯,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도입 약속을 요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하기 힘든 일이지만 내년 총·대선이 있는 만큼 선거제도를 개혁할 절호의 찬스다. 원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면 국민투표를 거쳐 도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손 대표는 이 문제에 뚜렷한 답을 하지 않았다."
- 노 대표의 생각에 민노당이나 국민참여당, 통합연대가 동의하는 편인가."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도 얘기해봤다. 유 대표는 개인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다만, 이것이 실현되려면 민노당의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이 문제 갖고 우리끼리 찢어져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아직 이정희 대표와는 얘기하지 않았다. 민노당의 다른 인사와는 관련해 얘기를 해봤지만 소극적인 편이다. 민주당을 못 믿는 것 아니겠나. 아직 민주당이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도입을 약속한 것도 아니니깐. 그쪽이 입장을 밝힌다면 이쪽에서도 검토가 가능할 것이다."
- 손 대표가 왜 이 문제에 대해 명확히 답변 못했다고 짐작하나."글쎄. 사실 통합 의지가 강하다면 '무슨 수'를 고민하게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돼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지 않나. '무슨 수' 중에 이런 것이 있단 점을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라 본다. 다만, 민주당이 통합을 '명분쌓기용'으로 보고 부분 통합으로 갈 가능성도 있지 않나 우려한다. 반면, '혁신과 통합'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혁신과 통합'의 방안을 보면 평시에는 하기 힘든 여러 가지 방안이 있다. 실현 여부를 떠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통합해야 한다고 절박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사실 진보정치에 평생을 매진한 내가 대통합 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비정상적이지 않나.(웃음)"
- 혁신과 통합이 주장하는 '무슨 수'가 통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그 정도의 변화가 진행된다면 한국 정치의 삼김(三金 : 김영삼·김대중·김종필)시대가 진정으로 막을 내린다고 본다. 삼김도 없는 지금 역시 우리 정치는 후(後)삼김시대에 머물러 있다. 삼김이 만든 정당이 원내 제1·2·3 정당 아닌가. 원내교섭단체도 이들이 다 갖고 있다. 국민들은 이제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데, 이념·지역주의를 다 떠나서 정책·생활 중심으로 정치하라고 요구하는데 정당 구조가 그렇지 않다. 국민의 변화 요구에 매번 공천 물갈이만 될 뿐 낡은 틀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래서 한나라당·민주당의 공천탈락율이 40%에 달한다. 실망만 낳는 정치일 뿐이다.
진보세력도 내놓아야 한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뭔가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거연합당을 하게 되면 진보정당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도 희생을 좀 감내하자. 개인적으로 지금 상황이 답답해서 (선거연합당 이후) 만일 국회의원 나가지 말라 하면 안 나가겠다고 얘기한 적 있다.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도입은 오랫동안 바랐던 세상의 변혁, 진보세력의 집권을 가능하게 할 제도이기 때문에 평생 나가지 말라고 해도 받아들일 자신 있다. 아주 극단적으로 내년 총선 단일화 때 진보세력은 이를 약속받고 대대적으로 양보해도 된다. 단 한 번 뿐이다. 좋은 그물을 얻게 되면 당장 물고기 몇 마리 못 잡는다 해도 괜찮다. 다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민주당이 먼저 입장을 정할 필요가 있다."
"진보신당 탈당, 통합 위한 옳은 결정"- 윤여준 전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한나라당은 선거할 때마다 40%의 인물을 교체하는데 대한민국 그 누구도 한나라당이 변했다고 생각치 않는다'고 개탄한 바 있다. 진보정치도 현재 낡았다고 평가받긴 마찬가지인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원인은 100% 내부에 있다. 우선 민심을 거울로 삼아야 하는데 자신을 거울에 비추고 만족해한다. 당 내부에서 정책을 놓고 논쟁할 때도 서로의 교과서를 가지고 싸우고 있었다. 이것이 과연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2004년 무상급식·무상교육·부유세 신설 등을 제기하고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진보정당도 이를 선거용으로만 쓴 것이다. 제기한 지 1년이 지난 뒤에야 운동본부를 꾸렸고 명패 다는 이벤트를 한 번 한 뒤에는 활동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저작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
두 번째,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고 했지만 정작 그들은 우릴 자신의 당으로 보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우릴 자신들의 대표 정당이라고 봤다면 지지율이 그렇게 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인정받고 지지받아야 할 이에게 지지를 못 받는 건 전적으로 자신의 문제다. 현장에 더 가까이 가서 활동하지 못했다. 각자의 신념과 철학을 반영하는 데만 급급했다."
- 그렇다면 민노당-참여당-새진보통합연대의 진보통합은 그런 한계를 없앨 수 있겠나."세 주체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자극제가 되리라 생각한다. 진보정치세력의 관성을 깰 수 있는 최소조건은 마련됐다. 새로움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지만 노력과 방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 진보신당 홍세화 당대표 후보나 진보학자 손호철 교수 등은 통합연대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당선되기 위한 술수라는 시각이다. 어떻게 생각하나."이 통합이 개인의 당선 확률을 높여주진 않는다. 특히 울산 북구의 조승수 의원은 재선이 더 어려워졌다.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한다. 고양시 덕양갑에 둥지를 튼 심상정 전 대표는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가 관건이다. 그 이후엔 한나라당 후보와 싸워야 한다. 노원병의 나도 심 전 대표와 마찬가지 상황이다. 우리가 원해서 이런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픔이 크다. 민노당 분당·진보신당 탈당 때나 모두 우리의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그 선택을 하지 않는 게 나았을까? 탈당하지 않고 진보신당에 남아서 통합은 당분간 포기하는 게 맞나. 그렇게 보지 않는다. 물론 개인적으로 상처가 생기고 모양새도 안 좋아진다. 그러나 옳음을 택한 대가로 여러 아픔을 겪는다고 본다. 이 아픔을 피하기 위해 잘못된 노선에 몸을 계속 실었어야 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수와 의견이 달랐고 그를 존중했다. 우리의 뜻이 다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탈당하는 게 맞았다."
- 통합진보정당 건설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국민참여당의 합류 여부였다. 통합연대는 민노당 9.25 당대회 직전 참여당과의 통합 부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금 상황에서 입장이 바뀐 것 아닌가. "공식적인 입장은 먼저 진보정당끼리 통합하고 이후 참여당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9월을 전후하며 우리를 제외하고 이에 동의하는 세력이 아무도 없게 됐다. 그렇게 하면 진보통합을 실현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가까운 차선책을 택했다. 통합연대 내부에서도 참여당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통합 후 논의하지 못한다면 일단 같이 하면서 검증해가는 게 차선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긴 호흡 갖고 진보대연합 구성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