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숲과 늪'의 한장면좌측이 배우 최민희. 가운데는 송재호
영화 '숲과 늪'
옛날 신문에선 이 영화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더군요. '금전만능 풍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인기작가 황석영의 신문 연재소설인 '섬섬옥수'를 홍파 감독이 각색하고, 이장호, 하길종, 이원세 등이 주축이 된 영화동인'영상시대'에서 신인을 발굴해서 만든 영화라고요. 이제 고교생 논술 텍스트로 사용되는 소설'섬섬옥수'를 '병태와 영자', '별들의 고향2'로 유명한 하길종 감독이 박근형, 하재영, 최민희를 주연으로 1975년에 만든 영화가 바로 이 영화 '숲과 늪'입니다. 그 시대 보기 드문 모던하고 영상미가 가득한 작품이란 것이 가장 큰 매력이죠.
3인의 남성과 1인의 여성이 물질과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펼치는 것이 줄거리인 이 영화는 지방유지의 딸이며 여대 졸업반인 한 여대생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쫒고 있습니다. 그녀는 미국유학을 다녀온 건축사와 약혼을 한 사이이며,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문대 얼뜨기 남학생 하나가 그녀를 쫒아 다녀서 골치가 아픈 중입니다. 농촌봉사 활동에서 단추하나 달아 준 이 여자에게 푹 빠져버린 얼뜨기. 알고 보니 야간 실업고 출신이란 핸디캡을 딛고 명문대에 들어온 막가파 노력인 이었네요. 이제 아름다운 여성을 얻음으로써 그간의 고난에 종점을 찍으며 자신의 삶을 재확인 받으려는 그는 기숙사건 어디건 그녀를 향해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지저분하기 짝이 없고 무식해빠진 수리공 하나가 얼결에 이 일에 말려들면서 반전을 가져옵니다.
영화 전반에는 부잣집 규슈들이 꽃꽂이와 요리, 요가를 배우러 다니는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선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듯이 각 수업의 강사들은 헌신하는 여성을 강조합니다. 소고기 육전을 만들려고 싱싱한 핏물이 흐르는 고기를 도마 위에 척척 잘라놓고 밀가루도 준비하는 등, 대학 졸업반 부잣집 규수들은 사회가 만들어 온 규칙들을 아무 불평 없이 하나씩 배워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