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에 투표가 마감된 후, 월요 시위대는 하나둘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으로 모여 결과를 기다렸다.
한귀용
월요 시위대 모임 장소에 저녁 8시쯤 찾아갔다. 그곳에 모인 시민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누가 시키지도 않고 강요한 것도 아닌 시위와 집회에 2년여 동안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의 실망감이 느껴졌다. 정중히 인터뷰를 요청했다. 북받치는 감정 때문에 도저히 못하겠다고 몇몇 사람이 사양했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준 뒤르 귄터는 지난 2년간, 매주 빠짐없이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결과를 받아들이는지 물었다. "개인적으로 무척 슬프다. 도덕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법적으로는 인정한다. 주민 다수가 슈투트가르트 21 건설을 원한다고 대답한 것이지, 그 건설을 관통하고 있는 가치와 이데올로기가 옳다고 답변한 것은 아니다."
다수결이 민주주의 원칙이고 그런 면에서 결과에 승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뒤르 귄터는 이렇게 답했다. "물론 결과를 인정한다.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주민투표를 보며, 다수결이 민주주의 원칙이 되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다른 월요 시위 참가자는 헌법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 주민투표에서처럼 질문이 꼬여 유권자를 헷갈리게 만든 이유가 지방정부와 연방정부의 대등하지 않은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즉 지방정부는 연방정부에서 시행하는 프로젝트 자체를 폐기하거나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 시위 참가자는 이런 헌법적 조건에서는 그 지방에 건설되는 중앙정부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지방정부가 건설 재정 부담을 포기할 것인지 아닌지를 주민들에게 묻는 변형된 방법뿐이라고 주장했다. 헌법이라는 틀이 주민투표가 민주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틀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시민은 "다수의 결정은 언제나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졌다. 이 시민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허탈해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결정한 것도 다수의 아테네 시민들이었다. 히틀러도 독일인 다수의 결정으로 총통이 되었다.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배운 것은 직접민주주의가 올바르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여건과 전제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그것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2년간 시위를 해서 얻어낸 주민투표가 이런 식의 절반의 승리로 끝날 수 있다." 다수의 결정은 언제나 옳은 것인가슈투트가르트 21 건설 프로젝트에 찬반 의견 중 어느 쪽이 옳았는가는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일방적 행정 처리 방식에 대한 월요 시위대의 문제제기, 그리고 국민의 세금이 신자유주의적 이념이 관철되는 건설 프로젝트보다는 시민 생활과 밀접한 교육·의료 분야에 쓰여야 한다는 비판은 독일 정치인들이 풀어야 할 과제다.
또한 '다수의 결정은 언제나 옳은 것인가' 하는 한 독일 시민의 질문은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모든 국가의 시민이 한번쯤은 생각해볼 문제다. 다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각국에서 합법적 야만의 행태들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 국회에서도 얼마 전 여당이 다수를 앞세워 한미FTA를 통과시키지 않았는가(이 글을 쓰는 동안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FTA 비준안에 서명했다는 기사가 떴다.)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강조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민주주의가 올바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주는 전제조건들에 대한 고민과 모색, 다수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정보 공개와 소통 등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다수결은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다. 지난 역사에도 그렇게 악용된 사례가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은 민주주의이지 다수결 원칙이 아니다.
월요 시위 참가자들은 비틀즈의 노래 '이매진(Imagine)'을 부르며 허탈감을 서로 위로했다. 다른 한쪽에선 슈투트가르트 21 건설 프로젝트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퀸의 '우리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을 부르며 자축했다. 두 노랫소리가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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