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만히 두세요. 아이들을 위해서 뭘 자꾸만 하려고 하는데, 그러지 마세요."
지난 토요일 아동문학가 편해문씨를 만났다. 북스타트 주체로 영월도서관에 열린 <아이사랑 부모 되기>에 특강을 하러 오신 그는 <고래가 그랬어> 편집위원을 지내신 분이다. <고래가 그랬어>는 육아 휴직을 하기 전까지 학급문고로 아이들에게 사 주었던 잡지다. 또래의 시선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만화나 토론 글을 통해 아이들의 권리, 학교나 가정에서 겪는 갈등이나 아픔을 풀어낸 인문잡지로 순서를 기다리면서 보던 아이들의 지대한 관심을 기억한다.
그는 강의 내내 부모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아이들 잘 놀고 있는 데, 왜 자기네(부모)들이 경기장에 뛰쳐 들어가요? 놀려면 시간이 무지무지 있어야 하는데, 뭘 가지고 놀만 하면 그만 정리하자고 하니, 놀질 못하죠."
소꿉놀이에 쓸 소품들을 늘어놓기만 해도 한 나절이 걸리는데, 어른들은 너무 성급하고 여유를 안 준다. 놀이대신 자꾸 다른 걸 넣어준다. 좋은 책 읽히는 것도 멋진 곳 구경 시키는 것도 다 쓸 데 없는 짓이라 말한다. 놀 시간 다 빼앗고 돈은 이상한 학습서에 갖다주는 바보같은 짓은 이제 그만.
그럼,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그의 대답은 무척 원론적이다.
"딱 3가지만 해주면 부모의 역할은 다 하는 겁니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게 하는 거."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던 부모님들은 피식 힘없는 웃음을 지었다.
"첫째, 잘 자야 합니다. 아이들은 잘 때 쑥쑥 큽니다. 비타민, 단백질, 지방... 뭐 빠진 거 없나, 이런 거 고민하지 마시고 8~10시간 내리 푹 재우세요."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아니, 얘들이 자야 말이지. 늦은 밤에도 눈이 말똥말똥한 데요."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일찍 자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낮에 실컷 놀게 해야 합니다. 뛰어 놀고 마음껏 소리 지르고 해야죠. 동물하고 비슷하죠? 영.유아, 초등 저학년 시기는 아직 인간이 아닙니다." 이 시기에 에너지를 한없이 써야 그 다음 시기에 탈이 없는데 의자에 앉혀 놓고 머리에 뭘 넣어 주려고만 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은 나중에 '과잉행동장애(ADHD)'라는 이름으로 유아시기에 못 쓴 에너지를 쓰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또 약(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돈 벌려고 내 놓은)을 주어 행동을 얌전하게 만들고 가슴 속에 묵직한 돌을 얹는다고 했다.
"둘째, 잘 먹어야 합니다. 아이들 몸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먹는 게 곧 '나'입니다."
젖가슴이 발달한 남자 아이의 예를 들면서, 우유 이야기를 길게 하신다.
"엄마들 수유 해 보셨죠? 사람도 수유하고 나면 파김치가 돼요. 암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년 지나면 거의 젖이 안 나오는데, 억지로 맞추죠. 첫째, 임신상태로 계속 만들고, 둘째, 늘 여성스럽게, 그러기 위해서 여성호르몬을 넣어요. 이걸 아이들은 분유를 시작으로 10년 이상 우유를 먹어요. 남자는 젖이 나오고 고환이 작아지고 여자는 초경이 빨라져 가임기가 짧아집니다.:
"달걀드 그래요.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세요. 그 안에 기쁨이 있을까요."
그러면 무엇을 먹일까? 독성이 강하지 않은 음식 즉, 채소나 과일, 된장, 청국장, 들깨 위주로 밥상을 차려야 한다. 무엇을 먹는가도 중요하지만 누구랑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와 엄마, 하루 종일 잘 놀아서 뿌듯한 아이가 함께 있어야 밥상의 의미는 완성된다.
"어른이 되어 이렇게 버티는 힘은 어린 시절의 좋았던 기억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을 갖게 해 주세요."
기본을 강조하고 기본에 충실한 것이 육아에서도 적용되는 철칙임을 새삼 깨닫는다. 뭔가 어렵고 세련되고 복잡해야 할 것만 같았던 육아 원칙이 이렇게 상식선에서 해결되니 신기하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좀 놀게 해 주라고 하니 딸 민애(5)를 더 놀려야겠다.
하지만 아이들을 자유롭게 잘 키우고자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현실 문제를 파악하지 않고 대안을 내놓지 못한 점이 아쉽다. 모든 문제를 부모들의 극성스러움으로 종결하는데, 다 뒤집어 쓰기엔 억울하기 때문이다. 정치를 제대로 해서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사회를 이루어야 하지 않겠냐는 최환씨(같이 강의 들었다) 말에 100% 동감하며 영월도서관을 뒤로 하는 발길이 왠지 무겁다.
2011.12.04 11:51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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