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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김장 담아야 하는데 비가 자꾸 와서 큰일이다. 배추를 뽑을라고 하는데 고마 비가 자꾸 온다. 우짜고."
"어쩔 수 없잖아요."
"내일 올 수 있나."
"시간이 안 됩니다."
"그럼 네 동생하고 뽑을게."
어머니는 한 달 전부터 김장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성격 자체가 뒤로 미루는 것을 참지 못하는 분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지난주 내내 비가 하루 건너 뛰고 내리는 바람에 배추 뽑을 시간도 없으니 아침마다 전화를 하셨습니다. 내려가 함께 배추를 뽑아야 하는데 시간이 나지 않아 동생과 어머니가 그 많은 배추를 다 뽑았습니다.
"배추는 다 뽑았는데 소금물에 저려야 하는데 우짜노."
"시간 내 가겠습니다."
"저 많은 배추 우짤지 모르겠다. 누나하고, 니 동생꺼는 안 뽑았다."
"시간 내 가겠습니다."
"금요일 쯤 할낀데."
"시간 내 간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래 알았다."
하지만 제수씨가 전화를 해 동생과 함께 하겠다며 내려오지 말라는 바람에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직장일도 바쁜 제수씨 배추 절임까지 하니 정말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미안했습니다. 수고했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제수씨 수고했습니다"고 해야겠습니다.
배추 뽑는 일, 절임하는 일까지 어머니와 동생네가 다 해놓고 아내와 저는 가서 김치만 담그면 됩니다. 일요일 오후 예배를 다 마치고 부리나케 갔습니다. 그런데 제수씨가 이미 김장을 반 이상 담갔습니다. 정말 미안했습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아주 편안하게 담갔습니다. 딸 아이가 자기도 한 번 담가보겠다고 나섰습니다.
"엄마 나도 담그고 싶어요."
"네가 담겠다고.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빨리 담고 푹 쉬어야겠다."
"옷에 양념 묻히면 안 된다. 그런데 옷을 왜 그렇게 입고 왔니. 김치국물은 잘 씻기지 않는다."
"그냥 두세요. 잘만 담는데. 옷에 좀 묻어면 어때요."
"참 딸이라고."
"예쁜 딸이 김장 담겠다는데 좋지 꾸중할 필요가 있나요. 나중에 씻으면 돼요."
"아빠 나 잘 담그지."
"당연하지 우리 예쁜 딸."
김장 담글때 제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김치를 옹기에 담는 일입니다. 김치 냉장고가 아무리 좋다고 하지만 옹기만 못합니다. 해마다 옹기에 담는 일은 제 차지입니다. 벌써 10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옹기가 좋은 이유는 숨구멍이 있습니다.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면서 아주 잘 익혀줍니다. 옹기에 담은 김치는 입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