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3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부대를 깜짝 방문했다.
연합뉴스
오바마 행정부가 올해 말까지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 병력을 모두 철수시키고,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미군 병력 1만 명도 철수시키기로 하면서 그동안 전쟁에 동원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를 수행하던 미군 병사들이 미국으로 귀국하고 있다.
학업 도중 전쟁터에 나갔던 학생 병사들이 귀국하자마자 자신이 다니던 대학교에 복학하면서 미국 내 대학교에 참전용사들의 숫자 또한 증가 추세를 보일 전망이다. 그런데 치열한 전투에 참여했던 참전용사 대학생들은 대부분 심각한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어, 학업은 물론 일상생활을 하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텍사스 주립대도 전쟁에 참전했던 학생들이 학교에 다시 돌아오고 있다. 그런데 이들 대문에 학내 문제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학생 한 명이 전쟁 참전의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돼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참전용사 학생들은 전쟁의 끔찍한 경험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우울증, 초조함, 죄의식, 공포감 등의 증세를 포함해 심각한 불안과 지워지지 않는 전쟁의 기억, 불면증 등에 시달리고 있다.
참전용사 출신 자살 시도율, 일반 대학생보다 6배 높아미국 유타 대학교(University of Utah)에 있는 미국 재향군인 연구 센터(National Center for Veterans' Studies)에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참전용사 대학생들이 자살을 시도한 비율이 일반 대학생들에 비해 약 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참전용사 학생들이 자살을 생각해 봤거나 자살을 실제 준비했다고 응답한 비율도 일반 대학생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미군 병사 중 현재 미국 대학에 재학 중인 남학생 415명과 여학생 110명 등 총 525명을 대상으로 벌인 이번 설문조사에서 조사 대상의 약 절반 가량인 46%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응답자의 20%는 '자살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다'고 응답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지난해 미국 대학 건강협회에서 미국 내 일반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일반 대학생들의 비율이 약 6%였던 것에 비교해 봤을 때, 참전용사 대학생들이 겪고 있는 전쟁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 수 있다.
특히 이번 설문에 참가한 참전용사 대학생들의 7.7%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해 참전용사 학생들이 자살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일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자살을 실제로 시도했다고 응답한 학생들의 빈도가 1.3%에 머무른 것에 비해 약 6배 이상 높은 수치로, 참전 용사 대학생들의 전쟁 참전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는 이처럼 학업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미국 대학 내 참전용사 학생들이 대부분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이다. 젊은 시절에 겪은 고통 때문에 앞으로 50~60여 년 이상 심리적인 고통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는 것이다.
미 정부와 대학, 부랴부랴 대책 마련 중더 심각한 문제는 상황이 심각함에도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일반 참전용사들을 위한 심리치료에 대한 지원만 해왔을 뿐 대학 내 참전용사 학생들을 위한 치료와 지원 프로그램을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대학에 재학 중인 참전용사 학생들 가운데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부쩍 늘어나자 미국 정부와 대학들이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들은 참전용사 학생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고, 학업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학교 내에 특별 프로그램을 설치, 운영하는 등 대책 마련에 애쓰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한 텍사스 대학교는 학교 내의 '카운슬링 및 정신 건강 센터'에 참전용사 학생들만을 위한 전문 심리치료사를 배치하는 한편, 미국 재향군인 관리국과 함께 캠퍼스 내에 참전용사 학생들을 위한 전문 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텍사스 주립대학교도 교수들에게 특별 이메일을 보내 참전용사 학생들의 지도에 좀 더 세심한 관심을 둘 것을 요청하고, 참전학생 지도에 문제가 발생하면 학교 내 카운슬링 센터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고하는 등 참전용사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쟁후유증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힘든 참전용사 대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전쟁의 끔찍한 기억을 지우고,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 일이다. 미국 정부와 대학들이 인내심을 갖고 그들을 따뜻하게 포용할 때 비로소 그들의 아픈 마음도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최진봉 기자는 텍사스 주립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기사는 한국교육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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