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향촌동 곳곳에는 길고양이들로 넘쳐난다.
조을영
손가락 굵기로 썰어주는 생소고기를 참기름 장에 찍어먹는 뭉티기, 뙤약볕이건 한겨울이건 골목마다 열심히 끓여대는 돼지국밥, 삶은 배추를 된장에 무쳐 밥과 함께 양재기에 비벼먹는 옛날 비빔밥.
이런저런 음식들이 많지만 뭐니 해도 노인들에게 인기 많은 메뉴는 실낱국수다. 칠순이 넘은 할매가 끓여내는 이 특별한 국수는 숭덩숭덩 도마 위에서 썰어지는 호박을 뜨끈한 김이 펄펄 오르는 솥으로 쏟아 넣어서 멸치 육수와 함께 구수한 냄새가 퍼지도록 끓여낸 것이다. 노인 식성에 맞춰 소화하기 쉽게 면발을 실낱처럼 가늘게 만든 것이다.
"너것들도 금방 늙는다. 경제력이 인생 전부가 아닌기라, 고까짓 거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대이. 얼마나 값지게 사는가를 잘 생각해보거래이. 젊을 때 착하게 살아야 하는 기라. 그기 제일 값진 기고 복 받는 길인기라. 남 눈에 눈물 나게 하지 말 거래이. 불지옥에 떨어진대이."노인은 앞에 앉은 손자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느라 국수가 식는 줄도 모른다. 잠시 거쳐 가는 인생. 늙으면 마음이 한결같아 진달까? 욕망도 치기도 이제는 물같이 흘러가버려서 한밤 자고 나면 이곳과 다른 곳에 누웠을 수도 있는 법. 적어도 젊을 때부터 이같이 평온한 마음이었으면 다가올 죽음이 더 값지지 않았을까 하며 노인은 국수물을 들이킨다. 2011년 12월 중순의 대구 향촌동에는 이런 풍경들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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