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댈러스의 대형 한인마켓인 H마트 입구에서 한미FTA 반대 1인시위 하는 황순기 목사
이영훈
텍사스. 미국 중남부에 위치한 이 주는 대통령을 역임한 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는 물론 아들 부시(George W. Bush)의 지역 기반이자 정치적 고향이다. 정치적으로는 '보수', 정서적으로는 '카우보이', 종교적으로는 '바이블 벨트'라는 키워드로 곧잘 해석되는 '외로운 별'(Lone Star State)의 고향이다.
이 텍사스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댈러스에 처음 한인 1인시위가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 6월이었다. 촛불시위의 주인공이었던 신기해씨는 '역사에 부끄럽지 않으려 한다'란 각오로 '쇠고기 재협상'과 '촛불만세!'라는 글귀를 들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지난 18일, 이번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반대 1인시위가 있었다.
주인공은 댈러스에서 작은자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황순기 목사. 현직 목사와 한미FTA 반대 문구는 굉장히 낯선 풍경이다. 보수의 본산으로 알려져 있는 댈러스에서는 더욱 드문 일이다. '한미FTA 닥치고 파기'라는 황 목사의 손팻말은 한인들이 많이 모이는 H마트와 코마트 1호점 앞에 들려 있었다.
- 한미FTA 반대시위를 하게 된 이유는?"두 가지 이유가 있다. 양국 간의 무역협정을 맺는 일이지만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미FTA의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 조항 등도 심각하다. 서방 선진국이라는 국가들이 보호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으면서 이제는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다른 국가들에 문을 열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두 국가 간의 체급이 다르기 때문에 평등하지 않다. 최근 월가의 시위를 보면 '우리는 99%'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시민인 내가 사회와 국가의 주인이라는 말로 들리더라.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이 그 말을 쓰는 것은 나머지 1%가 주인행세를 하는 것으로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미국 중산층이 붕괴되고 이것이 고착화된 것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신앙적인 것이다. 야고보서 2장에 보면 부자가 가난한 자들을 억압해 법정에 끌고 간다는 구절이 나온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을 성경은 미리 경고하고 있다. 지금은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고 있는 사회다. 처음엔 내가 직접 손팻말을 들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2∼3주 전에 교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내년 1월경에 우리도 의사표시를 해서 한국에서 한미FTA 반대에 애쓰는 사람들에게 인증샷을 올려 미국교포도 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다 시간을 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번 주로 잡았다."
- 목회자의 시위참여에 대해 교인들 반응은?"내 설교가 좀 강하게 비판적인 경향이 있는데 우리 교인들은 내 설교를 경험하고 온 사람들이라 이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성경과 사회를 보는 시각이 비슷해 적극 찬동하고 공감하는 분위기다."
- 앞으로도 시위는 계속되나?"한인들의 영업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시에 허락을 받고 진행할 예정이다. 매주는 못하더라도 몇 번 정도는 더 이 문제를 더 환기시키고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주위 시민들의 반응은?"의외로 긍정적이라 놀랐다. 손팻말을 들자마자 어느 부부가 수고한다고 웃어주기도 하고 '이런 일을 함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가는 분들도 있다. 어떤 나이 드신 분이 왜 반대하는지 묻기에 설명해 드렸더니 자기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보수적인 곳이라 반발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다."
"함께 숨 쉬고 사는 세상 만드는 것이 목사가 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