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당시 미디어법 처리강행을 저지하기 위해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정세균 민주당 대표 지지방문차 국회를 방문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이 국회 경위들에 가로막혀 대치하고 있다.
남소연
최 전 위원장은 지난 8월 노조 전임자 활동을 마치고 7년 만에 SBS 시사다큐팀 프로듀서로 복귀했다. 지난 12월 1일 TV조선, jTBC, 채널A, MBN 등 종편 4사가 나란히 개국한 뒤엔 방송 현업자 관점에서 이들을 꾸준히 모니터해 왔다고 한다. 과연 '최상재 PD' 눈에 비친 종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마디로 평가 대상이 안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질이 낮고 품위가 없다. 틀자마자 '형광등 100개 아우라'(TV조선 박근혜 편)가 나오는 걸 보고 허탈했다. 저 정도 수준 방송을 막으려고 그 추운 겨울날 투쟁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한편으로 우리가 그만큼 치열하게 투쟁해서 종편이 저 수준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웃음) 종편은 24시간 방송인데 지금은 하루 5~6시간 편성할 여력밖에 없다. 무리하게 3~4배 방송하다 보니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종편은 경계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오히려 전규찬 교수(언론연대 대표) 말대로 앞으로 종편은 그 틈을 메우려고 성과 폭력, 정치를 소재로 자극적으로 갈 거다. 0.5% 시청률을 탈피하려 미국 폭스TV 같은 정치 편향적인 방송, 선정적인 옐로 매거진 이상의 프로그램으로 마지막에 승부할 수밖에 없다."- SBS도 개국 초기에 비슷한 평가를 받지 않았나."SBS도 불륜 막장 드라마, 일본 오락 프로그램 베끼기란 비판을 받았다. 그래도 그때는 SBS 하나뿐이었고 시장 상황도 괜찮아서 금방 KBS, MBC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또 노조나 PD협회, 기자협회 같은 내부 감시 장치도 작동하고 있었다. 종편은 당장 노조를 결성할 여력도 없고 100배 더 심한 생존 경쟁에 몰려 물불 가릴 수 없는 처지다. 자기 역량에 맞는 채널이 될 때까지 오랜 기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지상파 경쟁은 전략적 실수...<동아>까지 문 닫을 수도" - 다매체시대에 드라마나 예능 등 일부 프로그램에서 성공하면 영향력이 있지 않겠나."독과점 시장에 안착하려면 기존 사업자보다 3배 이상 힘이 있어야 한다. 지상파보다 3배의 인력과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종편은 1/3도 안 된다. 지상파 방송을 경쟁상대로 한 게 전략적 실수다. 정치적 외압과 광고 수주로 어떻게든 메워보려던 것인데 이 정부는 수명이 다했고 다음 정권은 '조중동'에 우호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지상파와 케이블 사이에서 틈새를 노려야 하는데 '조중동매'가 자기 실력 이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한국 언론시장의 불행이다. 직접 실패를 확인하는 상황까지 갈 수밖에 없다. 결국 자기 덫에 걸리는 꼴이다."
최 전 위원장은 결국 종편이 기존 케이블방송 수준에 걸맞게 스스로 축소하거나 소멸될 거라고 전망했다. 특히 동아 종편(채널A)의 경우 모회사인 <동아일보>의 운명까지 흔들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MBN은 시청률이 보도전문채널일 때보다 반 토막이 났다. 결국 경제뉴스 중심 특화 채널로 갈 거다. TV조선은 드라마와 예능이 황금알 낳는 거위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보수적인 뉴스 채널, 시사 보도 채널로 가야 생존할 수 있다. jTBC는 지상파에 여전히 눈독을 들이고 있어 OBS(경인방송)를 포함한 종합미디어그룹을 노릴 것이다. 하지만 지상파를 소유하려면 상당한 정치적 변화가 필요해 구상대로 되기는 쉽지 않다. 채널A는 이리로도 저리로도 가기 힘든 애매한 상황이다. 결국 소멸되고 모기업인 <동아일보>가 문 닫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 <동아>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 <동아> 출신 MB 실세들을 앞세워 종편에 가장 큰 드라이브를 걸지만 가장 큰 손실을 볼 거다. 결국 자업자득이다." - '신문을 하면 천천히 망하고 방송을 하면 빨리 망한다'는 <조선일보> 사장 말이 결국 <동아>를 두고 한 말처럼 들린다. 종편으로선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부를 걸지 않겠나."종편이 애초 지난해 6월 지방선거 전에 최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보수 세력과 결탁해 언론을 장악할 계획이었는데 결국 무산됐다. 결국 내년 총선과 대선에 최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거다. 보수 집권 연장이 안 되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올인'하는 순간 종편 거부자들에게 더 정당성을 주게 된다.
지금까지 보여준 방송은 보수 편향이라거나 채널 자체를 지울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KBS, MBC가 보도하지 않는 선관위 디도스 공격 건을 종편이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인'하면 부정적 인식을 줘 자기 무덤을 파게 되고 소멸과 위축은 더 빨라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언론 전반에 대한 불신과 상처도 오래갈 거다. 지상파방송이 중심을 지켜야 할 텐데 언론 속성상 특종과 속보 경쟁에 묻혀서 휩쓸려가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같은 언론 노동자로서 안타까움일까? 최 전 위원장은 시청자들의 요구에 맞춰 종편 스스로 살 길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시청자가 지상파에 원하는 건 뭘까? 지상파는 무료로 제공되는 콘텐츠 가운데 꽤 높은 수준이다. 정치 중립성과 수준 높은 교양 프로그램이 아쉬운 정도인데 종편이 권력을 감시하겠나? 예능이나 드라마를 흉내 내도 더 뛰어난 걸 만들 실력은 안 된다. 정치적 입장과 과거 조중동 행적을 떠나서 시청자 요구에 맞는 부분이 없다. 결국 자기 특성에 맞는 채널을 찾아가는 게 맞다.언론 노동자 처지에서 조중동은 무조건 사라지라고 못한다. 보수적 관점도 인정해야 하고 필요하다 생각한다. 다만 팩트(사실관계)에 근거해서 보도하고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때 얘기다. 보통 보수-중도-진보가 3-4-3 구도인데 조중동은 80%도 모자라 언론 시장을 전부 장악하려 하니 나머지 70%를 저항 세력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정치권도 30% 이상 여론을 보장 못하는 언론에 의존해 80~90% 국민 대상으로 정책 만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