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아래에 위치한 척화비. 대원군이 절두산에 세운 실제 척화비는 남아있지 않다. 대신 플라스틱 모형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종원
대원군과 조정이 이 비석을 통해 지키고자 했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1만 명이 죽어간 절두산에 덩그러니 박혀있는 척화비를 보며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이 조선의 백성이 아님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죽어가는 권력을 살리는데 살고자 하는 이들을 제물로 삼은 종묘사직의 허구성은 길이길이 역사에 남아 조롱을 받을 것이다.
김훈 "흑산은 종교서적이 아니다" 성당에 진입해 박물관이 위치한 2층 난간에서 한강을 내려다봤다. 좀 더 앞에서 보고 싶었지만 절벽의 가장 앞쪽으로 향하는 공간은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박물관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성지의 중심인 이곳은 신부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접근이 가능하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절벽 가장 앞쪽까지 가는 것은 포기하고 성당 옆 2층 난간에서 간접적으로나마 풍경을 담기로 했다. 만여 명의 신도들이 순교의 순간에 섰을 때, 그들은 이 자리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생애 대한 집착, 죽음에 대한 공포, 고통을 덜고 싶다는 생각, 가족의 희생에 대한 슬픔과 분노 등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거룩한 밀알, 그 자체가 되고자 천주교를 믿었던 민초들은 아마 없었으리라. 그렇다면 그들은 조정의 탄압이 있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왜 천주교를 믿고자 했던 것일까? 김훈의 소설 <흑산>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주여, 매 맞아 죽은 우리 아비의 육신을 우리 아들이 거두옵니다. 주여,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당신의 주검을 거두신 모친의 마음이 어떠했으리까. 하오니 주여, 우리를 매 맞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 어미 아비 자식이 한데 모여 살게 하소서. 주여, 겁 많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마시고 우리들의 마을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여, 주를 배반한 자들을 모두 부르시고 거두시어 당신의 품에 안으소서. 주여, 우리 죄를 묻지 마옵시고 다만 사하여주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59p)소설 초입 부분에 소작농의 아내 오동희가 미사를 보고 향을 피우다 관가의 추격을 받게 되었을 때 언문으로 남긴 기도문이다. 기도문에는 단지 매 맞지 않고 굶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문구만이 도드라진다. 당시 지배층의 수탈과 폭력이 어느 수준에 달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단지 이 소설을 종교소설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들에게는 천주의 존재 자체보다는 굶주리고 매 맞고 차별받는 상황 속에서 자신을 위로할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었다. 김훈 역시 10월 20일 교보문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저는 신앙인이 아니고 따라서 이 소설속의 신앙은 속세와 관련된 부분으로 제한돼 있다"고 했다. 종교박해를 다룬 소설이지만 엄연한 의미에서의 종교 소설은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로 소설은 순교자의 거룩함보다는 140년 전 조선의 정치사회적 모순과 수탈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흑산도로 유배 간 정약전의 시중을 들던 창대의 아버지 장팔수가 고등어 다섯 마리를 숨겼다는 이유로 수군진 병졸들에게 맞아 죽는 장면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위정자들은 굶고 병든 백성들의 불만을 폭력으로 억압했다. 소설에서는 고문하고 곤장치고 참수하는 장면이 수시로 반복된다.
이 소설은 김훈이 4년 전에 발표한 작품 <남한산성>과 일정한 연계성을 가진다. 모두 조선 사회의 모순과 종묘사직으로 대변되는 왕조와 지배층의 유교적 허위의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차이가 있다면 조선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변수의 차이다.
<남한산성>에서는 청나라 군대라는 외부의 폭력이, <흑산>에서는 천주교도를 탄압하는 조선 내부의 폭력이 소설의 가장 주요한 발단을 제공한다. 청나라의 침략에 한없이 비굴했던 조선 조정은 창도 칼도 가지지 못한 백성들을 향해서는 정강이뼈가 부러질 정도로 주리를 틀고 도륙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조정의 폭력은 아이와 부녀자를 가리지 않았다. 모두 허울뿐인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김훈의 역사소설 속 인물들의 시대는 언제나 가혹하기 짝이 없다. <흑산>의 주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마치 동물의 왕국 속 동물 같다. 조선 말기의 가렴주구한 시대가 하나의 생태계라 한다면, 그 속의 인물들은 서로 먹고 먹히며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먹이사슬 속 동물들과 같다.
흑산 속 가혹한 생태계. 김훈이 방관자를 자처하는 이유는?<흑산>의 주요 인물은 천주교를 믿었다가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된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 그들의 맏형 정약현의 조카사위 황사영이다. 또 천주교도를 탄압하는 대왕대비 김씨, 황사영을 체포하는 포도대장 이판수, 배교한 전직 포도청 비장 박차돌, 황사영의 종이자 밀사인 마부 마노리, 흑산도 어부 장팔수와 아들 창대, 정약현 집안의 면천 노비로 황사영을 돕는 김개동과 육손, 여신도인 길갈녀와 강사녀, 박차돌의 누나 박한녀 등이다.
조정의 억압이라는 가혹한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선과 악의 잣대는 선명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들이 하는 모든 행위가 그저 (인간답게)살고자 하는 몸부림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 각 인물들의 생은 각자의 선택에 의해 저마다 분리된다.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도, 죽임을 당하는 사람도, 또한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흑산도에서 조용히 관조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정약전, 적극적으로 배교(背敎)해 목숨을 부지하고 학문적 업적을 남긴 정약용, 외군을 끌어들여 조정을 무너뜨리려 한 황사영, 자신이 살기 위해 누나인 박한녀를 죽이고 천주교 신자로 위장해 교인들을 색출하는 박차돌 모두 각자가 살고자 한 선택을 한 것이다.
김훈은 관념이 아닌 생존 그 자체와 밀착한 이들을 그리고자 했다. 전작인 남한산성이 대장장이 서날쇠를 비롯한 익명의 백성들이 가졌던 삶의 의욕에 초점을 맞춘 듯이 말이다. 그저 살고 싶고 살아가려 하는 이들의 몸부림을 담담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흑산>은 <남한산성>과 또 다른 공통점을 갖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민초들의 몸부림을 지켜보는 김훈의 시각이다. 그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관조적 시각을 견지한다. 선과 악에 대한 가치판단도, 약육강식이 만연한 가혹한 시대에 대한 성토도 없다. 그는 끝까지 이 소설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냉혈한이라서 일까? 그렇지 않다. 천주교인 학살에 대해 심리적 압박을 느껴 소설을 쓴 이가 냉혈한일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보는 가혹한 시대 속 생존잇기는 무엇인가. 그것이 주는 고달픔이란 어떤 의미인가. 김훈은 자신의 에세이집인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에서 먹고살기의 고달픔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김훈의 시각에서 봤을 때 치열한 세상 속 각자의 생존투쟁은 막을 수도 그만 둘 수도 없는 싸움이다. 이러한 각자의 눈물 나는 투쟁 속에서 역사는 조용히 움직인다. 능력 없는 자는 도태된다는 사회 진화론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정부의 분배정책 자체에 회의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국가나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 하는 밥벌이는 누구에게나 고달프다.
서로 얽히고 설켜 살고자 버둥대는 그 자체야 말로 사회와 역사가 일정한 방향으로 가게끔 하는 동력이다. 프랑스 혁명이 '우리에게 빵을 달라'던 외침에서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김훈은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존잇기의 고통은 죽음만큼이나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개입해서 답을 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 누구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김훈은 그저 바라볼 뿐이다. 김훈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처절한 생존투쟁을 말이다.
어찌할 수 없어 관조적이고, 또 그 관조를 견디지 못해 그는 언제나 글을 쓴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관조는 관찰이 아닌 동감의 표시다. 때때로 지켜봐주는 것 자체만으로 당사자에게 위로가 되는 때가 있는 법이다. 지켜볼 수밖에는 없지만, 또한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언제나 묵묵히 그것을 지켜보는 모습. 그래서 김훈은 여전히 김훈이 아닐까?
한강의 물빛은 푸른색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