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 풍경
이지아
현실은... 가게는 내가 작기를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작았고, 가게는 텅 비어 있었고, 그리고, 안주는 비쌌습니다. 오뎅탕, 2만 원! 검은 치마에 검은 두건을 쓴 여사장님이 나타났습니다. 나는 뜬금없이 앞뒤도 없이 "안주가 비싸네요"라고 말을 해버립니다. 안주는 비싸고, 나는 그럴 돈이 없고, 소주 한 잔과 함께 할 쓸쓸함과 아쉬움과 그리움과 희망이 무너져 내립니다.
사장님은, 수제 오뎅이라서 맛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건 수제 오뎅도 아니고, 맛도 아니고, 한라산 소주 한 잔과 쓸쓸함을 채워 줄 값싼 오뎅이었습니다. 나가지도 못하고, 자리에 앉지도 못하자, "양은 많지 않아요, 혼자 먹을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저는 돈이 많이 없다고 솔직히 얘기를 합니다.
그렇게 아쉬움을 가득 안고 돌아서려고 하는데, "이왕 들어온 거 커피 한 잔 내려줄 테니 마시고 가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내 가게에 들어온 손님인데 그냥 보낼 수는 없다고요. 결국 뻘쭘하게 의자에 앉습니다. 그러나 소주 한 잔에 쓸쓸함과 소주 한 잔에 그리움과 소주 한 잔에 희망과 뭐 그런 것들이 떠오릅니다.
그리하여 저는, 주방으로 들어가신 사장님께 아주 뻔뻔한 부탁을 드립니다. "저... 죄송한데요, 저, 커피 말고요, 그냥 소주 한 병 주시면 안 될까요, 안주는 없어도 되는데요." 그리고 저는 안주 없는 깡소주가 어쩌면 이 쓸쓸함과 어울릴 거라 생각합니다. 깡소주 한 잔에 쓸쓸함과 깡소주 한 잔에 그리움 말이죠.
주방에 들어가신 사장님은, 알겠다고 하시더니, 한참 뒤에야 주방에서 나옵니다. 한라산 소주 한 병을 가지고요. 아니, 오징어가 들어간 뜨끈한 부침개와 국물이 시원한 김치찌개와 포슬포슬한 달걀찜과 함께 있는, 한라산 소주 한 병을 들고서요.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깡소주 한 잔과 이 여행을 마무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부침개 한 조각과 소주 한 잔이 여행을 마무리하는데 더 어울리지 않는가, 하는 마음이 솟아오릅니다. 메뉴에는 없는 안주가 뚝딱 만들어져 탁자 위에 놓였습니다. 소주 한 잔이 입 안에서 녹아들고, 기름기 적당한 부침개가 입 안에서 녹습니다. 깡소주 마시겠다고 앉아있는, 손님 같지 않은 손님을 빼면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사장님은 영업 준비를 해야겠다고 주방으로 들어가십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삶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