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아프다고 징징대는 아들... 괘씸하게 귀엽습니다

등록 2012.01.06 11:09수정 2012.01.0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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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엉덩이가 무겁고, 귀는 얇은 사람입니다. 1월 2일 새벽 4시쯤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의료전문기자가 나와 어르신들 건강을 위해 하루에 만보를 걷는 것이 건강에 매우 좋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나이도 어느덧 마흔일곱 살이니 건강을 챙겨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새해도 밝았으니 '작심삼일'이 될지라도 하루에 만보를 걷기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만보를 어떻게 계산할까 고민하다가 대형마트에서 만보기를 구입했습니다. 가격이 1만400원이더군요.

 

"당신 '작심삼일'은 아니겠지요?"

"작심삼일? 약속은 못하겠지만 한 번 도전해봐야지요."

 

사흘 만에 만 걸음

 

오후 4시에 드디어 만보기를 옆구리에 차고 걸었습니다. 조금 걷다가 얼마나 걸었는지 만보기를 봤습니다. 500걸음입니다. 또 걷다가 보면 1000걸음. 그렇게 몇 번을 보다가 5000 걸음 정도 걸으니 쉬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 정도를 걷고 쉬고 싶을 정도니 평소에 제가 얼마나 운동을 안 하는지 짐작이 가실겁니다.

 

결국, 첫날에는 8690걸음을 걸었습니다. 1시간 30분 정도 걸은 것 같습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쉬엄쉬엄 걸었습니다. 다음날도 어김없이 나섰습니다. 하지만 7400여 걸음을 걷고 나니 참 힘들더군요. 셋째날 드디어 10128걸음을 걸었습니다.

 

a  만 걸음 걷기 사흘만에 달성했습니다.

만 걸음 걷기 사흘만에 달성했습니다. ⓒ 김동수

만 걸음 걷기 사흘만에 달성했습니다. ⓒ 김동수

"여보! 드디어 만 보를 걸었어요!"

"사흘 만에 만 걸음 걸었으니 성공했네요. 와~ 그런데 만 걸음 정말 어렵긴 어렵나보네요."

"그렇지요. 은행 다녀와 시장 다녀와서 남강둔치까지 다녀오니까 만 걸음 넘었어요. 그래도 작심삼일은 넘겼으니 대단한 것 아니예요?"

 

만 걸음 도전에 나선 막둥이, 성공할까?

 

정말 만 걸음 걷기 힘듭니다. 저는 만 걸음이 이렇게 멀고, 힘든 줄 몰랐습니다. 넷째 날 만보기를 차고 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막둥이 가만히 있지 않더군요. 자신도 꼭 차고 싶다며 아빠를 따라나섰습니다. 손만 가면 뭐든지 고장 내는 탓에 만보기를 맡기는 것이 걱정스럽긴 했습니다만, 한 번 차 보고 싶다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a  자신도 만보기 차고 만 걸음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막둥이 과연 달성했을까요

자신도 만보기 차고 만 걸음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막둥이 과연 달성했을까요 ⓒ 김동수

자신도 만보기 차고 만 걸음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막둥이 과연 달성했을까요 ⓒ 김동수

"아빠! 저도 만보기 차 보고 싶어요."

"너는 손 만 대면 고장내잖아."

"아빠~ 그래도 한 번 차 보고 싶어요."

"그럼 아빠가 채워 줄께. 만지면 안 돼."

"와! 나도 만보기 찼다~ 진짜 좋아요!"

 

막둥이는 만보기를 차고 내달립니다. 과연 막둥이는 만 걸음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막둥이. 사실 막둥이는 달리기를 하면 항상 꼴지였습니다. 아내는 "막둥이는 달리는 것이 꼭 제자리 달리기는 하는 것 같아요"라고 할 정도로 걷는 것과 달리기가 비슷합니다. 하지만 만보기를 차니 언제 저렇게 잘 뛰었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집에서 남강 둔치까지 약 1500걸음. 남강둔치는 바람이 쌩쌩붑니다.

 

만 걸음을 향해! 아빠와 '찰칵'

 

a  만 걸음도 중요하지만 걷는 폼도 중요합니다.

만 걸음도 중요하지만 걷는 폼도 중요합니다. ⓒ 김동수

만 걸음도 중요하지만 걷는 폼도 중요합니다. ⓒ 김동수

a  하지만 걷기 폼이 제대로 나올리가 없습니다. 막둥이는 달리기 모습입니다

하지만 걷기 폼이 제대로 나올리가 없습니다. 막둥이는 달리기 모습입니다 ⓒ 김동수

하지만 걷기 폼이 제대로 나올리가 없습니다. 막둥이는 달리기 모습입니다 ⓒ 김동수

"바람이 많이 부네, 어제는 괜찮았는데. 바람이 부니 춥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만보기 차고 걷는 모습 사진 한 번 찍어야지. 막둥이랑 걷는 모습 한 장 찍어주세요."

"그럼 멋지게 포즈 좀 취해줘요."

"이 몸에 무슨 선한 폼이 나온다고…. 그냥 찍어요, 찍어. 아무리 멋진 폼을 내려고 해도 '김동수 폼'이 어디 가나."

"엄마! 나는 멋지게 찍어주세요."

"아빠 폼보다 체헌이 폼이 훨씬 낫다."

"오늘은 초전공원이 아니라 공설운동장 쪽으로 갑시다."

 

다리를 건너는데 얼마나 강바람이 차가운지…. 괜히 나왔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막둥이가 다리가 아프다면서 엄마한테 업어 달라고 조릅니다. 며칠 전부터 오른쪽 다리를 조금 절뚝거렸는데 만 걸음 이상을 걷는 것은 무리인 것 같습니다.

 

a  남강둔치에서 공설운동장으로 건너가는 데 남강이 얼었습니다. 이를 본 막둥이 물이 얼었다고 난리입니다.

남강둔치에서 공설운동장으로 건너가는 데 남강이 얼었습니다. 이를 본 막둥이 물이 얼었다고 난리입니다. ⓒ 김동수

남강둔치에서 공설운동장으로 건너가는 데 남강이 얼었습니다. 이를 본 막둥이 물이 얼었다고 난리입니다. ⓒ 김동수

"아빠 강물이 얼었어요."

"바람이 쌩쌩부는데 강물이 얼지 않겠니. 아빠는 얼음만 봐도 춥다. 그런데 강물이 완전히 언 것은 아니네. 살얼음이야."

"아빠 조금 쉬면 안 돼요? 다리가 아파요."

"얼마 걸었다고…. 다리 아프다고 업어 달라고 하니? 너 축구는 열심히 하잖아. 축구할 때는 안 아프지?"

"다리가 정말 아파요."

"저기 그네도 있고, 운동기구도 있는데 저기서 조금 쉬면 되겠다."

"아빠, 그네 타는 모습 찍어주세요. 제 발 공격을 조심하세요! 하하하."

"막둥이! 너 아빠에게 발 공격을 하다니. 하하하."

 

걷기만 하면 아픈 막둥이... 만 걸음 걷기 실패

 

a  그네를 탄 막둥이 발바닥으로 아빠에게 한방을 날렸습니다.

그네를 탄 막둥이 발바닥으로 아빠에게 한방을 날렸습니다. ⓒ 김동수

그네를 탄 막둥이 발바닥으로 아빠에게 한방을 날렸습니다. ⓒ 김동수

그네를 타면서 아빠에게 멋진 한 방을 날린 막둥이입니다. 이런 막둥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엄마와 아빠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합니다. 공부를 조금 못해도 웃고, 즐거워하며 사는 막둥이를 보면서 나중에 어른이 됐을 때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과연 웃음 넘치는 세상을 막둥이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요? 막둥이가 함박웃음을 웃을 때 다른 사람들도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기 바랍니다. 막둥이가 그런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이 워낙 많이 불어 결국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막둥이는 또 힘들다며 업어 달라고 조릅니다. 어쩔 수 없어 엄마가 업었습니다.

 

"막둥아, 엄마한테 업히니 좋아?"

"그럼요. 좋아요."

"그만 내려야지."

"다리가 아픈데 왜 자꾸 내리라고 하세요. 걷기 힘들어요."

"그럼 축구 수업 가지 말라고 한다. 축구할 때는 다리가 안 아프고, 걸을 때만 아픈 네 다리 참 이상하다.

"알았어요."

 

a  다리가 아프다며 업어 달라고 조르고 졸랐습니다. 결국 엄마와 아빠는 번갈아 업어 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만 걸음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달이 벌써 떴습니다.

다리가 아프다며 업어 달라고 조르고 졸랐습니다. 결국 엄마와 아빠는 번갈아 업어 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만 걸음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달이 벌써 떴습니다. ⓒ 김동수

다리가 아프다며 업어 달라고 조르고 졸랐습니다. 결국 엄마와 아빠는 번갈아 업어 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만 걸음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달이 벌써 떴습니다. ⓒ 김동수

하지만 잠깐뿐입니다. 또 아프다며 업어 달라고 조릅니다. 만보기를 한번 차보고 싶다고 따라나설 때는 언제고…. 다리 아프다며 업어 달라는 막둥이의 떼쓰기에 엄마와 아빠는 돌아가며 막둥이를 업었습니다. 결국, 만 걸음 걷기는 실패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길. 하늘 위에는 벌써 달이 떴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만보기 #막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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