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주민의 잔혹하고 슬픈 강제이주 역사는 이렇게 도로표지판 하나로 남아 증명하고 있다. 강제이주 당하던 체로키 족 1만5000명 중 약 4,000명이 이 길에서 사망했다.
Yam Nahar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디언식 이름 짓기'가 유행이란다. 그나마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이른바 '인디언'이라 불리는 '미국 원주민'은 약 202종족, 이들이 쓰는 언어만 300여 종에 이르니 어느 원주민 말로 이름을 짓는지는 모르겠다.
'이름 짓기' 유행은 급기야 '아즈텍식·중세시대식·일본식 이름 짓기'로 이어지며 온라인을 후끈 달구고 있다.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엔 '이름 짓기 종결판'이 출현했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천부인권의 첫 상징처럼 귀히 여기는 한국. 이 사회에서 느닷없이 불고 있는 '이름 짓기' 열풍엔 어떤 사회적 함의가 들어있을까.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근대국가가 품었을 법한 합리적 이성마저 거세하는 병영국가였다. 민주주의의 원리인 토론과 합의는 독재자에 의해 원천봉쇄됐다. 심지어 독재자와 다른 입장을 가진 자는 죽임을 당하거나 고문을 당한 뒤 감옥에 갇혀야 했다. 이 모든 원천봉쇄와 학살, 고문은 '빨갱이'라는 낙인찍기가 전제되었다.
쉽게 말하면 대한민국은 '빨갱이'라고 불리는 순간 모든 것이 하나로 규정되어지는 '가학적인 낙인찍기'사회였다. 이 낙인찍기는 지금까지 이어져 '종북좌파' '외부세력'이라는 신조어가 유력 일간지 헤드라인을 도배질하기도 한다.
'인디언식 이름 짓기' 열풍엔 나름 이유가 있다이른바 '인디언식 이름 짓기' 열풍엔 이러한 근대적 낙인찍기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녹아 있다. 이름 짓기 놀이를 즐기는 이들은 촛불집회와 희망버스를 경험한 이들이다. 먹을거리에 대한 염려 때문에 촛불 하나 들었을 뿐인데, 나도 언젠가는 정리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아픔을 겪는 이들을 찾아갔을 뿐인데 '종북좌파' '외부세력'이라는 무시무시한 딱지를 붙였다.
역설적이게도 정체성은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면 될 뿐이란 것을 '낙인찍기'를 당하면서 깨우친 것이다. 그래서 '인디언식 이름 짓기'를 하며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말고 다른 이름으로 내가 불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호적에 등재된 이름 말고 나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을 지을 수 있다는 경험이 '신기하고 재밌'다.
'탈근대(post modern)'의 요체인 정체성은 설명하면 될 뿐이라는 철학의 기초를 '인디언식 이름 짓기' 놀이를 하며 온 사회가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국가 성립 이후 약 60년 만이다.
이와 같은 '인디언식 이름 짓기'의 긍정성을 한없이 예찬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시리고 아프다. 우리가 '이름 짓기'라는 즐거운 놀이를 통해 사회적 각성을 하는 동안 한 사회적 존재의 아픔과 슬픔은 까마득히 잊히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인디언'이라 불리는 미국 원주민 이야기다.
'보호구역' 내에서 사실상 사육당하고 있는 인디언들1830년 5월 26일 미국 원주민에게 잔혹한 시련이 시작된다. 미국 대통령 앤드류 잭슨이 '인디언 이주법'에 서명한 것이다. 미시시피 강 동쪽에 살던 인디언 부족을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강제 이주시킨다는 것이 이 법의 골간이다. 1783년 파리 조약으로 미국의 독립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이후 급속히 늘어난 앵글로색슨계의 이주자들의 정착을 위해 원주민을 내쫓는 법이었다. 이 법에 의해 약 10만 명에 이르는 원주민들이 비옥하고 정든 고향 땅에서 내쫓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