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와 ACT를 비교한 백분위표. 에셔고프는 지난 해 발각된 6번의 SAT 대리시험에서 최고 2220에서 최하 2140을 받았다. 최상위 등급에 속하는 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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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그의 재능은 '시험의 달인'이라는 점이었다. 한국의 수능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는 대학에 진학하려면 SAT나 ACT를 치러야 한다. 단 한 번만 치르는 수능과는 달리 SAT나 ACT는 횟수 제한이 없어 여러 번 치를 수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만족스러운 점수를 얻을 때까지 보통 2, 3번, 많게는 4, 5번까지도 치르는데 에셔고프는 바로 이 시험에서 언제나 고득점을 받았던 시험의 귀재였다. 나소 카운티 검찰의 케서린 라이스 검사는 지난 해 기자회견을 통해 에셔고프가 받은 6차례의 시험 점수를 모두 공개했다.
"2220, 2210, 2140, 2180, 2180, 2170." 2400점이 만점인 SAT에서 보통 2000점만 넘어도 명문대 진학이 가능한 만큼 그가 받은 고득점은 대단히 훌륭했다. 실제로 에셔고프가 친 대리시험 성적으로 이미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의뢰인이 누구인지 그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SAT 주관사인 ETC는 대리시험을 통해 얻은 점수로 입학한 학생에 대해서도 그 신원을 해당 대학에 알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셔고프는 시험의 귀재로서 탁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그 재능이 그를 범죄자의 길로 이끌었다. 결국 에셔고프는 명문대생과 사기꾼이라는 이중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SAT 관리, 이렇게 허술할 수가미국에서는 해마다 200만 명 가량의 학생들이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SAT를 치르고 있다. 비영리기관인 컬리지보드가 시행하는 이 시험은 국가고사는 아니지만 그런 정도의 철저한 관리가 요구되는 시험이다.
하지만 지난 해 SAT 스캔들이 발생했고 이 사건 관련자는 모두 7명이었다. 주동자인 에셔고프와 대리시험을 의뢰한 6명의 학생들은 모두 형사고발되었다. 당시 드러난 결과로만 본다면 에셔고프는 모두 6차례 부정한 방법으로 대리시험을 치른 셈이다. 과연 그게 전부였을까.
에셔코프가 <60 Minutes>에서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다. 그는 모두 16차례 대리시험을 치렀다고 고백했다. 작년에 발각된 6건 외에 신분을 위조해 '성공적으로' 대리시험을 치렀던 게 10건 더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에셔고프가 밝힌 대리시험 성공담을 들어보면 이 시험이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한 라이스 검사도 NBC <투데이> 인터뷰에서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게 쉬워 보였다"고 탄식했다. 그만큼 시험 관리가 부실하고 신분 위조에 대한 안전 장치가 전무한 상태였다.
SAT나 ACT를 치르는 학생들은 고사장에 입장할 때 반드시 지참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수험표와 신분증, 연필, 지우개, 계산기 등이다. 본인임을 증명하게 될 신분증은 해당 주에서 발행한 운전면허증, 비운전자 신분증, 정부 발행 신분증, 여권, 학생증으로 대체될 수 있다. 바로 이 가운데 위조가 가능했던 것은 학생증이었다. 에셔고프는 자신이 학생증을 어떻게 위조했는지 설명했다.
"학생증이 뭔가요? 이름과 사진만 붙여 색깔을 입힌 거잖아요. 저는 제 고등학교 학생증으로 일단 견본을 만든 뒤 제 사진을 붙이고 의뢰인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넣었어요. 정말 쉬웠지요."에셔고프는 대리시험 과정을 설명하면서 자신에게 대리시험을 요청한 학교 친구, 동급생, 후배들을 지칭할 때 의뢰인, 고객이라는 뜻을 가진 클라이언트(client)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의뢰인을 위해 신분 위조가 어려운 운전면허증이나 여권 대신 자신의 사진과 의뢰인의 이름, 생년월일을 적어 넣은 위조 학생증을 사용했다. 물론 불량한 양심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이었다.
"고사장에 들어갈 때 고개를 숙이고 감독관에게 살짝 신분증만 보여주면 돼요. 그들은 신분증에 나온 이름과 자신들이 가진 명단의 이름이 같은가를 확인할 뿐이니까요. 그런 다음 제 자리로 가서 조용히, 문제만 일으키지 않고 시험을 치르고 나오면 돼요."한 사람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인 SAT가 이처럼 손쉽고 간단하게, 부정한 방법을 통해 저질러지고 있었다. 이렇게 허술한 관리이다 보니 에셔고프는 남녀 구분이 안 되는 중성적인 이름을 가진 여학생의 대리시험도 치렀고, 같은 주말에 두 번이나 시험을 치른 적도 있었다.
그가 밝힌 시험 감독관들 면면도 부실 투성이였다. 시험 감독을 해본 적이 없는 직원, 신참 교사, 식당 보조원들이 SAT 감독을 맡았다. 이런 부실한 시험 관리 탓에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들키지 않고 대리시험을 치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에셔고프는 전국 6000개 고사장 가운데 본인이 마음대로 고사장을 선택할 수 있는 점도 악용했다. 즉, 대부분의 학생들은 재학 중인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에셔고프는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고사장을 일부러 선택해 시험을 치르는 등 대단히 주도면밀하게 행동했다.
에셔고프를 기소했던 뉴욕 주 나소 카운티 변호사는 에셔고프가 16번이나 SAT 대리시험을 치를 수 있었던 것과 관련해 SAT 관리의 공정성과 안전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SAT 주관사인 ETS의 회장인 커트 랜드그래프는 <60 Minutes> 인터뷰에서 작년에 적발된 신분위조 건수는 전체 200만 명 가운데 겨우 150명으로 99% 이상의 학생들은 정직하게 시험을 치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SAT 보안 문제를 강화하기 위해 매년 1100만 달러의 돈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