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축소 은폐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87년 당시 영등포교도소 안유 보안계장(왼쪽)과 한재동 교도관이 14일 오후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 509호 조사실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권우성
"나는 군사독재정권의 주구, 하수인, 사냥개 소리를 듣던 가해 집단이었다."고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축소 은폐 조작 사실을 세상에 알려 1987년 6월 항쟁을 이끈 숨은 주역들이 25년 만에 얼굴을 드러냈다. 14일 오후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 마당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25주기 추도식 무대에 깜짝 등장한 안유(68) 전 서울교정청장과 '민주 교도관' 한재동(66)씨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들의 첫 마디는 이처럼 '자랑'이 아닌 '자성'이었다.
6월 항쟁 기폭제된 두 교도관 "나도 가해집단"1987년 1월 14일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 직후 치안본부는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단순 쇼크사'로 몰아갔다. 결국 물고문 사실이 드러나자 고문에 관여한 경찰관 2명을 구속하는 선에서 사건을 덮으려 했다. 당시 이들이 수감된 영등포구치소 보안계장이던 안씨는 이들 외에 경찰관 3명이 더 관여했고 경찰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안씨는 마침 같은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당시 교도관이던 한씨는 이 전 의장의 쪽지를 외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결국 그 쪽지를 받은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고 김승훈 신부와 함세웅 신부는 그해 5월 18일 5·18광주항쟁 희생자 추모미사에서 조작 사실을 폭로했고 그 사회적 분노가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이 전 의장은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그 사실을 밖으로 전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잔뜩 추켜세지만 정작 두 사람은 고 박종철군 아버지 박정기씨를 비롯한 200여 추모객들 앞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당시 재야인사와 대학생 등 공안 관련 사범들을 감시하고 회유하는 역할을 했다"며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한 안씨는 "당시 경찰 수뇌부들이 구속된 경찰들을 찾아와 입 닥치고 있으면 1억 원을 주겠다고 회유하고 가족을 내세워 협박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대공수사부서가 국가에 왜곡된 충성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결국 엉뚱한 학생을 빨갱이로 몰아 죽이고 사건을 조작, 은폐 축소하려는 것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 그 사실을 이 전 의장에게 털어놨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