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보도연맹
울산유족회
[거짓말] '좌익' 참여한 분들, 보도연맹 가입하면 봐드립니다
여러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해야만 좋은 세상이 옵니다. 나라를 위해 가입해주세요. 해방 후 혼란통에 얼떨결에 멋모르고 좌익에 가담했던 사람들 많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진짜 빨갱이가 아닙니다. 과일로 치면 토마토가 아니라 사과인 게지요. 그래서 겉은 불그스름했지만, 깎으면 하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겁니다.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옛날엔 좌익에 참여했지만 이제는 진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겁니다. 그뿐입니까?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비료도 배급해주고 보리쌀도 드립니다. 나라에서 이런 혜택을 주니 얼마나 좋습니까? 보도연맹에 가입해 똘똘 뭉쳐서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지킵시다. 그래서 좋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봅시다!
[진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보도연맹원 20만 명 학살했다대한민국은 이들을 지켜주지 않았다. 보도연맹에 가입했던 이들은 공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어야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 경기도 이천에선, 보도연맹원 100여 명이 아군에 의해 총살당했다.
이후 충청남도에선 4개 지역·7개 지점에서 4000여 명, 충청북도는 6개 지역·14개 지점에서 2000여 명, 전라북도에선 500여 명, 전라남도에선 200여 명, 경상북도 9개 지역에서는 9000여 명, 경상남도 12개 지역에 2만여 명 등 전쟁 발발 직후부터 8월 말까지 불과 2개월 만에 학살된 보도연맹원은 최소 20만 명으로 추정된다. 대관절 '보도연맹'이란 단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보도연맹'은 오제도, 정희택, 선우종원 등 당시 공산주의와의 싸움에 이름을 날리던 이른바 '사상검사'들의 주도하에 창설됐다. 1949년 6월 5일 명동 시공관에서 창설식을 열고 지금의 중앙일보사 자리인 서소문 고개마루 턱에 사무실을 낸 보도연맹은 좌익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십만 장의 자수권고 삐라를 살포하고, 일간지와 라디오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를 하며 연맹원을 모집했다.
창설자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보도연맹의 창설 목적은 사상범을 전향시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보호·육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보도연맹의 정식명칭이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이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좌익에 잠깐이나마 물들었던, '잘못된 길'로 빠졌던 국민을 보도(保導), 즉 '보호하여 지도'해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자'는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보도연맹 창설의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보도연맹이 창설되던 1949년은 좌익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1947년의 남로당(남조선노동당)이 불법화됐고, 여순사건을 계기로 1948년에는 국가보안법 제정이 완료됐다. 그리고 1948년 말에서 1949년 봄에 걸쳐서는 군대 내 좌익에 대한 이른바 숙군총살이 시행됐다. 김구 암살사건처럼, 민족주의자를 포함한 반이승만 세력에 대해서도 철저한 탄압이 이어졌다.
결국 이 같은 상황에서 만들어진 보도연맹의 실질적인 결성목적은 좌익 전향자들을 정부가 관리하는 조직 속에 소속시켜 이들의 사상을 개조하고 효과적으로 통제할 뿐만 아니라, 이들을 전위대로 활용해 남아 있는 좌익세력을 붕괴시키기 위한 것, 즉 '좌익 뿌리 뽑기' 책략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전향자들은 가입 당시 반드시 같이 좌익 활동을 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기재한 양심서를 제출해야 했고 가입 후에도 1년 동안 계속해서 자백내용을 검열 받아야 했다.
그래서 보도연맹은 외견상으로는 민간단체의 성격을 띠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내무, 법무, 국방의 3부 장관과 서울검찰청이 조직을 책임지는 실질적인 정부기관이었다. 표면적으로 전향자들로 구성된 좌익 전향자 단체임을 표방했지만, 보도연맹의 상급 핵심간부들은 모두 정부의 관리들이었고, 간부 중 좌익 전향자 출신은 간사장과 명예간사장뿐이었다. 사실 보도연맹의 창설목적을 보자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정부의 지원 아래 이뤄진 대대적인 포섭전향 활동에다, 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남로당원이나 과거 좌익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즉각 체포, 엄중 처벌한다는 경고로 인해, 각 신문사에는 전 남로당원들의 탈당 성명서와 전향 성명서들이 줄을 이었다. 또 해방 직후 남로당,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농민조합 등의 단체에 가입했거나, 각종 문화단체에 가입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반강제로, 혹은 단체로 보도연맹에 가입해야 했다. 그 결과 창설 1년 만에 연맹원 33만 명을 헤아리는 거대단체로 성장했다.
"쌀 준다" 해서 도장 찍었는데, '살생부'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