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달과 계수나무 토끼에게 편지 쓴다면?

[서평] 맹문재, 서안나 등 6명 시인이 쓴 동시집 <달에게 편지를 써볼까>

등록 2012.01.17 16:55수정 2012.01.17 17:50
0
원고료로 응원
동시집 <달에게 편지를 써볼까> 시인 권현형과 맹문재, 박완호, 서안나, 이승희, 장인수 등 시인 6명이 새 동시집 <달에게 편지를 써볼까>(푸른사상)를 펴냈다.
동시집 <달에게 편지를 써볼까>시인 권현형과 맹문재, 박완호, 서안나, 이승희, 장인수 등 시인 6명이 새 동시집 <달에게 편지를 써볼까>(푸른사상)를 펴냈다. 푸른사상
우주선을 타고 갔다는
이야기 말고
사실 달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그런 말 말고
그래도 달의 골짜기 너머
거기 어디 모래사막쯤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계수나무 아래 토끼에게 편지를 쓴다면
다들 웃을까?

토끼가 아니라면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그 웃음처럼 둥근 저 달에 편지를 써볼까?


거기 아무도 없다고 왜 그래?
니가 가봤어?

언제나 우리 집 창문을 비추는 달
오늘은 내가 쓴 편지를 창문에 붙여놓고 싶은 날
-66쪽, 이승희 <달에게 편지를 써볼까> 모두

우리 시단에서 좋은 시를 쓰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시인 권현형과 맹문재, 박완호, 서안나, 이승희, 장인수 등 시인 6명이 새 동시집 <달에게 편지를 써볼까>(푸른사상)를 펴냈다. 이들 시인들은 지금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 혹은 아빠로, 이번 동시집은 이 땅에서 꿈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시인들 아이들에게도 보내는 작은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이 동시집에는 여섯 명 시인들이 쓴 동시 49편이 달에게 편지를 쓰는 것처럼 아이들 마음에 동시를 또박또박 적고 있다. 여섯 명 시인들은 이번 동시집에 실은 동시에서 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마음자리를 읽어낸다. 시대가 아무리 빨리빨리 바뀌고, 아이들 놀이마저 많이 달라졌지만 아이들이 지닌 아름다운 꿈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라는 것이다. 

시인 권현형이 쓴 '분홍 기지개', '아빤 어렸을 때도 남자였어요?' 등 9편, 시인 맹문재가 쓴 '얼굴', '나무는 웃네' 등 6편, 시인 박완호가 쓴 '시골길', '달빛 탐지기' 등 8편, 시인 서안나가 쓴 '엄마는 외계인', '변비 걸린 염소' 등 11편, 시인 이승희가 쓴 '봉숭아 물들다', '비눗방울' 등 8편, 시인 장인수가 쓴 '거짓말', '생각하는 모자' 등 7편이 그 동시들.


이 여섯 명 시인들은 '표4'에서 입을 모아 "우리는 동시를 쓰는 동안 행복했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들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아이들의 세상이 참으로 놀랍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우리는 동시를 쓰면서 오히려 아이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아이들의 마음을 품고 있는 이 순간, 우리는 너무나 행복하다"고 적었다.

엄마는 자라는 아이들 마음 비추는 거울


<달에게 편지를 써볼까> 표4 이 동시집에는 여섯 명 시인들이 쓴 동시 49편이 달에게 편지를 쓰는 것처럼 아이들 마음에 동시를 또박또박 적고 있다.
<달에게 편지를 써볼까> 표4이 동시집에는 여섯 명 시인들이 쓴 동시 49편이 달에게 편지를 쓰는 것처럼 아이들 마음에 동시를 또박또박 적고 있다. 푸른사상
"씨앗만큼 작은 아가가 / 고물고물 움직이네 / 엄마 뱃속에서 / 라라라 라 라 라 // 엄마가 새콤한 사과를 먹으면 / 아가도 새콤한 사과를 먹네 / 엄마가 달콤한 배를 먹으면 / 아가도 달콤한 배를 먹네 // 엄마 기분이 새콤달콤해지면 / 아가 기분도 새콤달콤해져 / 높은음자리표처럼 라라라 / 라 라 라 위로 솟아오르네" -16쪽, 권현형 '엄마랑 아가랑 라라라' 모두

시인 권현형은 '엄마랑 아가랑 라라라'란 동시에서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아기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티 없이 깨끗한 마음을 읽어낸다. 엄마가 맛나고 좋은 음식을 먹고, 늘 기분이 상쾌해야 뱃속에서 자라는 아가도 잘 자라고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이 동시에서 시인이 여기는 엄마는 태아나 자라는 아이들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 많이 줄었어요 // 내 신발이 대신 커졌어요 / 바지가 길어졌어요 / 책가방이 무거워졌어요 // 아빠의 흰머리가 늘었어요" -30쪽, 맹문재 '1주기' 모두

시인 맹문재는 돌아가신 할머니 1주기에 느끼는 아이들 마음높이에 눈길을 툭툭 던진다. 아이는 할머니가 갓 돌아가셨을 때 몹시 슬펐고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었지만 1주기가 되면서 할머니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이 그만큼 줄어든다. 이는 아이 키가 자라고, 발이 커지고, 생각이 자라면서 스스로 할 일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수정초등학교 담장 아래 / 넝쿨장미들 포르릉 눈 뜨는 아침 / 학교 가던 꼬맹이들 / 장미꽃을 향해 // 따끈따끈한 햇살 뭉치를 던진다 / 반짝반짝, 눈빛 뭉치를 던진다 // 빨갛게 달아오른 꽃봉오리를 / 활짝 열어젖히는 장미꽃 // 종소리를 듣고 모여든 나비들 / 하나 둘 짝을 지어 / 낯붉히고 서 있는 /장미 담장을 살짝 넘어간다" -42쪽, 박완호 '수정초등학교' 모두

시인 박완호는 넝쿨장미가 예쁘고 빠알간 꽃을 피운 학교 담장을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품은 무지갯빛 꿈을 엿본다. 아이들은 장미꽃을 향해 쏟아지는 햇살을 눈빛으로 뭉쳐 툭툭 던진다. 장미꽃이 꽃잎을 활짝 여는 것도, 학교 종소리를 듣고 나비들이 장미꽃으로 모여드는 것도, 아이들이 앞으로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아스팔트 틈에 피어난 풀꽃 바라보며 '미안'을 배우는 아이들 

"공부도 잘하고 / 달리기도 잘하고 / 키도 크고 싶어요 // 근데 자꾸 / 게임하고 싶고 / 친구들과 / 놀고 싶어요 // 엄마 / 나도 / 속상해요" -62쪽, 서안나 '엄마 나도 속상해요' 모두

시인 서안나는 아이들이 안고 있는 고민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들은 누구나 공부도 잘하고 싶고, 운동도 잘하고 싶고, 쑥쑥 자라 씩씩하고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아이들을 은근슬쩍 자꾸만 유혹하는 것이 놀이와 게임이다. 아이는 그 두 가지 고민을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속이 상한다는 것이다. 아이들 마음은 이처럼 티 없이 맑다.     

"골목길 아스팔트 깨어진 틈에 / 쬐끄만 풀꽃이 피었다 // 땅 속에 / 잠든 풀씨를 / 깔고 앉아서 / 미안하다고 / 숨도 못 쉬게 막고 있어서 / 미안해 죽겠다고 / 아스팔트가 조금씩 자리를 만들어준 걸까?" -70쪽, 이승희 '풀꽃' 모두  

시인 이승희는 아이들이 사는 마을 골목길, 아스팔트가 흙을 몽땅 다 뒤덮고 있는 그 골목길 한 귀퉁이에 어렵사리 피어난 작은 풀꽃을 바라보며 미안해하는 아이들 여린 마음을 비춘다. 아이들 마음에는 흙을 몽땅 뒤덮고 있는 아스팔트가 작은 풀꽃에게 너무 미안해 스스로 풀꽃에게 조그만 틈을 내주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쓸개도 다 내주고 / 심장도 다 꺼내주는 게 사랑이라고 / 엄마가 말했어요 // 정말 그 말이 참말인가요? / 천사님? / 우리 엄마 거짓말쟁이죠?" -78쪽, 장인수 '거짓말' 모두

시인 장인수는 아이들이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물음표를 매단다. 아이 엄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모든 것, 제가 아끼는 모든 것, 심지어 제 목숨까지 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엄마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없다. 아이가 천사에게 우리 엄마는 거짓말쟁이라고 묻는 것은 스스로 사랑이 무엇인지 깨쳐나가는 걸음마라는 것이다.   

아이들 마음 통해 거꾸로 어른들 마음 읽어내다

"쓰레기 분리장 옆에 / 비를 맞고 있는 / 강아지 // 이사를 가면서 / 버려졌네요 // 간밤에 주인은 제대로 잘 수 있었을까요 // 강아지가 밤새도록 낑낑댔을 텐데요 // 아빠! / 엄마! / 찾았을 텐데요" -31쪽, 맹문재 '헌 의자' 모두

시인 여섯 명이 펴낸 동시집 <달에게 편지를 써볼까>는 인공위성이 우주를 떠다니는 시대, 인터넷으로 이 세상을 몽땅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시대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바라보는 해와 달, 별, 이 세상은 자연 그대로 느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동시를 통해 비춘다. 이들은 이번 동시집에서 아이들 마음을 통해 거꾸로 어른들 마음을 은근슬쩍 읽어내고 있다.  

시인 권현형은 1966년 강원도 주문진에서 태어나 1995년 <시와시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중독성 슬픔> <밥이나 먹자, 꽃아>가 있다. 지금 가천의과대학교 교양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시인 맹문재는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가 있다. 안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인 박완호는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1991년 <동서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내 안의 흔들림> <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가 있다. 지금 풍생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시인 서안나는 1990년 <문학과비평> 겨울호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계간 문예 <다층> 편집위원을 맡고 있으며, 한양대 홍익대 협성대 강의를 나가고 있다.

시인 이승희는 196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가 있으며, 장편동화 <살구는 왜 노랗게 익는 걸까> <어린이를 위한 약속> 등이 있다. 시인 장인수는 1968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2003년 <시인세계>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유리창> <온순한 뿔>이 있다. 지금 중산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문학in]에도 보냅니다.

달에게 편지를 써볼까

권현형 외 지음,
푸른사상, 2011


#맹문재, 서안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5. 5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