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답게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손목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기념 시계를 착용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유성호
- 당시 노 전 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죄'을 적용하지 않았나? "그때 수사를 다 해봤어야 진실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수사가 중단된 상태에 우리가 예단할 수는 없다. 그때 영부인한테 650만 달러인가가 전달됐다. 그게 어마어마한 일인데 수사가 중단돼 진실은 역사에 파묻혔다. 지금 퇴임후에 가야될 관저가지고 저렇게 문제가 되고 하는데, 청와대 안에서 650만 달러를 받았다고 하면 그것은 굉장한 사건이다. 또 1억2000만 원짜리 시계는 뭔가?
- 영부인이 청와대에서 돈을 받은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1억 원짜리 시계는 회갑 선물 아니었나? "대통령이 현직에 있으면서 1억2000만 원짜리 시계를 받을 수 있다면, 일반 공무원들도 회갑 때 120만 원짜리 시계를 받아도 되나? 이명박 대통령이 칠순됐다고 1억2000만 원짜리 시계를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겠나? 이중잣대는 안된다. 노 전 대통령의 명예를 위해서나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서나 제대로 수사돼서 죄인지 아닌지가 가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안타갑게 중간에 그런 불행한 일이 생겨 버렸다."
- 그런데 영부인이 받은 것을 남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인가? "조사해봐야 진실을 알지. 고위공직자의 마누라가 돈 받은 것을 문제삼지 않는다면…."
- 그 부분과 관련해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명확한 증거도 없이 서둘러 소환조사한 것 아닌가? "내 경우 참고인인데도 피의자처럼 정문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라. 법 앞의 평등이라는 게 뭔가?"
- 그럼 박배수 보좌관(이상득 의원)의 구속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잘못 있으면 구속하는 게 당연하다."
- 박 보좌관과는 몇 년간 같이 근무하기도 했는데 왜 의원실 직원들 계좌를 이용해 자금을 세탁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나도 모르겠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뻔하게 드러나는 일인데."
-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검찰로비와 관련 이창세 검사장에게 전화한 적 없나? "없다. 이 검사장은 내 고등학교 한해 후배다. 이창세 검사장이나 윤재옥 전 경기경찰청장은 학교를 빛낸 인물이다. 내가 평준화 2기고, 그들은 평준화 3기다. 이창세 검사장은 전국연합고사에서 차석인가 했고, 서울대 법대를 갔다. 우리 때는 서울로 진학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범서울로 동문회를 했는데 선배들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창세 검사장은 거의 안 나왔다. 그래서 교류가 거의 없었다. 1년에 두세 번 전화하는 선후배 사이다."
- 신재민 전 차관이 이국철 회장과 관련된 청탁을 하지 않았나?"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매주 열린 차관회의에서 보기도 했는데 이국철 회장과 관련된 청탁을 받은 적은 없다."
- 이국철 회장과 관련, 이창세 검사장 등 검찰 고위간부와 연락한 사실이 없다는 것인가?"그렇다. 그와 관련해서 지난번 명예훼손 검찰조사 때 묻더라."
"김대중 정부 때 대북휴민트 작살났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할 때 북한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취임사절단으로 보내겠다는 메시지가 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사실인가? "전혀 사실이 아니다."
-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글쎄. 그때 보면 소위 대북라인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이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다 했다. 그런데 믿을 수가 없잖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대북관계에서 이 라인이 있다, 저 라인이 있다 등등의 이야기들이 많았다. 인수위 시절 그걸 확인할 방법도 없고."
- 리호남 북한 참사가 메신저를 앞세워서 박 전 차관에게 접근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그런 사실 없다. 리호남이란 이름을 처음 듣는다."
- 월간 <신동아>를 보면 리호남이 보낸 사람이 인수위 시절 북한 동향이나 평양발 메시지를 박 전 차관에게 전달했는데, 거기에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축하사절단 이야기가 나온다."나는 대북관계에서 어떤 사람도 접족하거나 만난 적이 없다."
- 최근에 정두언 의원이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서훈 국가정보원 3차장이 반엠비라는 박 전 차관의 모략으로 물러나면서 국정원의 대북 휴민트 라인이 붕괴됐다고 주장했다."정 의원이 휴민트(인적 정보)라는 개념 자체를 잘못 알고 있는 거다. 휴민트는 대북한 인적 정보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완전히 작살난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흑금성 사건을 수사하면서 그 라인이 노출돼 그 당시 중국쪽 접경지역에서 활동하던 휴민트라인과 북한내 라인들이 아주 필사적으로 탈출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많이 체포되면서 완전히 붕괴됐다고 한다. 휴민트 라인을 하나 형성하는 데 10년이 걸린다. 아직도 복원이 안됐을 것이다. 이제 4년 밖에 안됐는데. 그렇지 않아도 복원하는 데 엄청 힘들다고 하더라."
- 대북 휴민트 붕괴는 이전 정부 책임이다? "그렇다. 노무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책임이다. 그건 국정원에서 상식으로 통하더라. 수백명이 쫓겨났다고."
- MB정부에서 대북정보수집을 수행하는 라인 자체를 없앤 것 아닌가?"전혀 아니다. 우리는 복원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 지금도 계속 노력하는 걸로 안다."
- MB정부 들어서 대북관계도 안 좋은데 굳이 복원할 필요가 있었나?"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특히 적대적 관계가 남아 있는 국가와 관련해 휴민트를 당연히 만들어야 한다. 국가안보는 한 번 잘못되면 끝이다. 경제는 망가져도 다시 복원할 수 있지만 안보는 한 번 망가지면 끝이다. 그건 국가위기 관리 차원에서 복원해야 한다. 세계에서 휴민트 조직을 안 가지고 있는 나라 있나?"
- MB정부 시절에 국정원 3차장실 전체가 교체되지 않았나?"나는 국정원의 정무직 라인 사람 정도만 임명되는 걸 봤지 그 밑으로는 알 수 없다. 조직이 비밀스러우니까."
"국민은 '올마이티대통령'을 원하지만..."- MB정부의 대북정책은 성공했다고 보나? "남북관계에는 흐름이 있다. 상당히 적대적이었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유화적인 국면으로 갔다. 지난 대선 때 국민 여론을 보면 지난 10년간 정부의 대북정책에 국민들이 굉장히 비판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에 대응한 MB정부의 대북정책이 나왔다. 그것은 국민과 한 약속이었고, 남북관계에서 최소한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대부분 국민의 요구였다. MB정부가 특별히 적대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상당히 적대적이었던 것 같은데. "YS 때보다 적대적이었겠나? YS 때 적대적 분위기가 굉장히 강했다."
- 북에서 내는 성명서나 담화문, 사설 등을 보면 적대적 분위기가 드러나지 않나?"북한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특별히 적대적이진 않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월드컵 경기를 하고 있는데 서해대전을 일으켜 많은 병사들이 죽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우리가 북한에 우호적이었지만 핵실험 했고, 미사일 실험 했다. 그런 부분과 관련해 국민들이 더 이상 일방적으로 지원해서는 안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한반도 전체를 공멸시킬 핵문제에서만큼은 비핵화로 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최소한 요구조건이었다.
한반도가 핵지대로 있는 한 주변 강대국이 통일을 용인할 리 없다고 본 거다. 7000만, 8000만 되는, 핵무기를 가진 통일국가의 등장을 달가워할 주변국가는 없다. 통일을 위해서도 비핵화를 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에 비핵화 협상에 나서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래야 북한에 지원도 하고, 경제적 협력도 강화하겠다는 것이 MB정부의 정책기조다."
- 이번 김정일 위원장 사망 때 이희호씨와 현정은 회장만 조문을 보냈는데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라도 조문단을 보내는 게 좋지 않았겠나?"그런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워낙 남북문제를 두고 국민적 의견이 대립되지 않나?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폭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문단 파견 반대라는) 국민여론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번 일은 아쉽지만 현 정부가 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응이었다고 생각한다."
- 정부가 안되면 국회차원의 조문단을 허용했어야 하지 않나?"그런데 여야간 합의가 안됐잖아. 남북관계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엄연한 대치상태이고, 또 한편으로는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풀어나가고, 어떤 형태든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남북관계는 시대에 따라 경색되기도 유화되기도 한다. MB정부 시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경색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대통령도 답답하지 않겠나?"
- 그러니까 경색국면을 풀어야 하지 않나? "요즘 류우익 장관이나 대통령의 언급을 보면 그런 의지가 느껴진다."
-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몇 년 간 유일하게 북 최고지도자를 못 만난 남한 지도자로 남게 됐다. "그 부분은 아쉽다. 하지만 더 큰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 희생할 부분이 있으면 희생해야 하지 않나? 또 견뎌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견뎌내야 하지 않나?"
- 남쪽도 정상회담 의지가 있었지 않나? "항상 있었다."
-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남북관계를 부드럽게 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중간에 뇌졸중 때문에 지도자 공백기간이 생겼다. 우리는 집권 초기에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데 전념해야 했다. 한 대통령이 모든 걸 잘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올마이티대통령'를 원하는 것 같다. 정권 말기가 되면 부족했던 부분만 부각되고."
"검찰이 권력 주변을 제대로 수사 못한 게 있나?"- MB정부 출범 이후 검찰의 독립성이 많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검찰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검찰이 권력 주변을 제대로 수사 못한 게 있나?"
- 했지만 제대로 한 적이 없지 않나?"글쎄. 구속도 많이 됐지 않나? 다만 수사환경이 옛날보다 많이 어려워진 것 같다. 모든 조서를 검사가 직접 작성하고 강압수사 등을 피하기 위해 영상녹화해야 하고, 항상 변호사 입회할 수 있다. 업무량은 늘어나고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 한명숙, 미네르바, 정연주, 피디수첩 등과 관련된 사건은 1심이나 2심, 심지어 일부는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받았다. "검찰은 거의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검찰의 자유권 분위기가 확산된 것 같다. 정권 차원에서 개입하는 게 불가능하다. 한명숙 사건의 경우 한 전 총리가 전적으로 묵비권을 행사해 수사의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 피디수첩 사건의 경우 담당 부장검사가 기소할 수 없다고 했는데 수사팀을 교체하면서까지 결국 기소했지 않나?"법원에서도 피디수첩이 사실관계를 다르게 보도했다고 인정했다. 단지 그게 언론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정말 많은 사회적 파장과 국민적 관심을 일으켰던 부분과 관련해 팩트냐 아니냐를 가렸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 하지만 담당 부장검사가 기소할 건이 아니라고 했는데 수사팀을 교체한 것은 정상적이지 않아 보인다. "모르겠다. 지금 시대만큼은 대통령을 마구잡이로 비하하고 욕하는 때가 있었나? 나는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 이전 정부들보다 언론의 자유가 신장됐다?"그건 아닌데, 언론자유가 위축됐다는 부분은 동의할 수 없다."
- 노무현 정부 시절 한나라당은 문재인 비서실장의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했는데, 권재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앉혔다. 어떻게 생각하나?"우리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 데서 좋은 경험을 하고 있는 거다. 자기가 반대했던 것을 자기가 역으로 당하니까. 결국 우리 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선과 양식이 무엇인지를 경험해 나가는 거라고 본다. 정권이 두 번 교체됐지 않나? 그렇게 정권교체되면서 훈련을 하는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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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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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칠순 때 1억원짜리 시계 선물받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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