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009년 방영된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 포스터
SBS
<아내의 유혹>. 이 드라마는 드라마 기피증을 앓고 있는 나에게도 본방을 사수하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오랫동안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여 주인공이 복수의 대상에게 보내는 처절한 복수의 과정은 그동안 보아왔던 복수의 스토리와는 그 전개 양상이 판이했다. 혼신을 다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물론이고, 숨 돌릴 틈 없이 스피드하게 전개되는 극단적인 전개는, 내가 살아오면서 받았던 유·무형의 수모들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리는 쾌감을 선사했다.
그러나 복수, 그 후에 남은 것은 여타의 드라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존과 다른 시도와 스피드에 매혹된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서 빠져나오면서 느낀 것은 역시 '허망함'뿐이었다. 이후 제작된 막장 드라마에 대해서 다시 시들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흥행작을 넘어서지 못하고 어설프게 따라잡으려다 가랑이 찢어진 그야말로 '막장'인 완성도 때문이었다.
시청률 기록 갱신이라는 찬사에도 '막장 드라마'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인 것은 중독성 있는 단기적 쾌락이, 우리 삶을 다시 음미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깊은 울림과 감동에는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소재나 표현의 방식에서 진부함을 벗어나지 못한 채 우려먹기에만 급급한 막장 드라마라면 단물 빠진 껌을 씹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휘발성은 강한 대신 긴 여운과 되새김질은 약화되어가는 우리 드라마의 현실이 안타깝다.
자본의 손아귀, 광고 없이는 드라마도 없다? 날이 갈수록 드라마 제작은 급속도로 스폰서에 의존하고 있다. 광고 유치에 목을 맬 수밖에 없던 상업방송의 본질적인 한계로 인해 스폰서의 횡포는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작비의 80퍼센트가 주요 연기자들의 출연료로 지출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쯤은 쉽게 도출되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드라마 제작현장은 어떠할까? 시청률 추이 살피랴, 제작자 눈치 보랴, 시청자 의견 수렴하랴, 쪽대본과 초치기 관행이 굳어지면서 4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촬영을 하는 등 연기자와 스태프를 혹사시키는 비인간적인 제작환경은 개선되기 쉽지 않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누가 끊을 것인가. 광고주의 입맛에 의해 움직이는 이러한 드라마 제작의 폐단은 결국 자본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막장 드라마를 양산해낼 가능성만을 높여 놓았다.
2007년 MBC <베스트극장> 폐지에 이어 2008년 KBS <드라마시티> 폐지는 공중파에서 단막극의 퇴출로 이어졌다. 스타 집착증에 빠진 기존 드라마 제작의 타성을 깨고, 연출가의 실험정신을 펼쳐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신인 배우와 신인 작가 발굴을 가능케 했던 것이 바로 단막극의 작고도 간과할 수 없는 주요한 기능이었다.
단지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퇴출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다 참신하고 다양한 작품을 만나기를 바랐던 마니아와 소수자들을 위해서라도 공영방송이 이를 도리어 보전시켜 주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최근 한 방송사에서 단막극 부활이 시도 되고 있어 반갑다. 날로 양극화되어가는 전파에도 분배의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것은 방송사가 지녀야 할 미덕이다. 이 미덕은 양질의 드라마를 창작될 수 있는 건강한 토대를 만들어 보다 성숙한 문화를 이끄는 초석이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