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구립홍은어린이집을 방문한 10.26서울시장 보궐선거 박원순 야권단일후보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영아반 어린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권우성
나는 싫어하는 광고가 몇 가지 있다. 반생태적인 회사가 친환경을 논하고, 구조조정과 착취를 일삼는 회사가 가족이라 하며 노동자 서민의 삶을 황폐하게 하면서 국가 경쟁력을 강조하는 광고가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자본과 권력을 이용한 광고가 아님에도 밉상인 광고가 있으니 바로 어린이집 원아모집광고다.
얼마 전 매스컴을 통해 ▲ 어린이집 불법 매매 ▲ 아이들의 특기 적성교육을 외부업체에 맡기고 거액의 리베이트를 챙긴 사건 ▲ 근무하지 않은 교사와 원생을 허위로 등록해 인건비 등을 받아 가로챈 사건들이 공개되었다. 동네 골목마다 어린이집 원아모집 현수막이 걸려 있고, 어린이집들이 무상보육지원을 수식어로 놓고 원아모집을 하는 것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유다. 새삼 놀라울 것도 없는 이러한 사건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뉴스를 보면서 '보육'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어 놓은 정부를 어찌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 행복, 웃음, 안심 등등 듣기 좋고 쓰기 좋은 말은 가득하지만 한몫 챙긴 그들이 떠나며 남겨 놓은 것은 "어린이집 매매가 11억 5천, 권리금 1억 2천, 원생 80명. 원아자원 풍부. 원생, 대기자 많으며 평가인증 돼있습니다" 뿐이다. 온갖 불법과 비리들을 가능하게 하는 이러한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무상보육이라...
어린이집에서 9년간 보육교사로 일해 보육현장을 아는 사람으로서 그저 나오는 이 한숨을 거둘 길이 없다. 보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 강화에 대한 요구에 단순히 보육료 지원으로만 답하는 한, 이러한 문제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구까지 공짜로 다니게 해줄까'가 돼버린 '무상보육' 과거에 무상보육은 꽤 급진적인 요구였다. 어떤 무상보육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한 이 주제가 그저 '누구까지 공짜로 다니게 해줄까?'라는 의미로 퇴색되어 버린 것은 매우 안타까운 노릇이다. 정부는 만5세 누리과정에 이어 느닷없이 '만0~2세 무상보육'을 발표하더니, 설을 앞두고 만3~4세도 내년에는 무상보육 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보육예산의 전폭적인 확충, 이것은 보육의 만족도를 상승시키는데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정부의 보육교직원 임금 기준안이 동결로 발표된 것이다. 보육교직원들이 자신들의 임금만 빼고 다 오르는 이러한 현실속에서 어떤 힘을 받으며 보육에 임하게 될지 염려스럽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아동학대라는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연일 폭로되는 안타까운 현실속에서 보육노동자들의 노동환경개선이 시급함을 사회가 다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찾아 볼 수 없이 진행되는 무상보육은 자연스럽게 보육의 현실을 외면한 선심성, 생색내기 보육정책이라는 의심을 낳는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형어린이집만 봐도 그렇다. 보육료 지원과 교사 인건비 지원으로 공공성을 갖춘 듯 하지만 본래 민간 보육시설이 갖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여전히 현장에서는 어린이집 급간식 장보기인지 원장네집 장보기인지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교사 대 아동비율을 지키지 않아 교사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 존재한다. 교사들의 열악한 임금을 지원하기 위해 지자체에서 처우개선비를 지급해도 불법적인 중간착취가 횡행한다.
최근 부산에서는 부실한 급간식 사진을 찍어 '카톡'에 올린 교사가 입사 6개월만에 해고되기도 했다. '카톡'에 있는 사진을 본 부모가 원장에게 항의를 하자 원장이 CCTV를 돌려보면서 사진을 찍은 교사를 찾아내서 해고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어린이집 설치의 목적인 이윤추구에서 나오는 것으로, 시민들의 소중한 재산이 개인의 재산으로 축적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구조를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공짜보육을 넘어서 진짜 아무것도 없는 보육정책인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를 누비는 무상보육에 대한 논의가 '보육의 시장화 추구'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 역시 우려되는 지점이다. 무상보육이 공보육 강화와 보육의 사회화를 구체화하는 내용이 아닌 복지 포퓰리즘에만 머물러 있는가 하면, 이미 보육료 상한선을 폐지하는 '자율형 어린이집'을 시행하려 했던 것이 그러한 맥락이다. 다행히도 보건복지부장관이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보육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는 이 정책을 전면 중단하겠다' 발표했지만 언제나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영리형으로 전환한 네덜란드와 호주에서는 이후 보육료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정부의 상당한 재정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보육비 절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어디나 보육이 시장화되어 있는 곳에서는 아동의 급식과 안전한 보육을 보장할 사후감독 체계는 간과되어 있다. 어쨌든 자율형 어린이집을 통해 보육 판에서의 '쩐의 전쟁'으로 재미 좀 보려고 했던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소식이겠지만 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는 우리는 늘 긴장감을 놓으면 안 될 것이다.
국공립 생기면 민간 경쟁력 떨어져 '장사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