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쪽에서 보면, 갓을 쓴 머리 부분이 마치 3층석탑(또는 5층 석탑) 같은 모양이다.
최육상
쌍석불은 부처님을 바위에 새긴 '마애불'과 돌을 다듬어 세운 '입상'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용미리 석불입상', '쌍미륵마애석불'로도 불리며 흔히 '용암사 쌍석불'이라고 한다. 보물 제93호로 지정된 정식 명칭은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磨崖二佛立像).'
문화재청 사이트에는 "고려시대의 조각으로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탄생 설화가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지방화 된 불상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예로 높이 평가 된다"고 소개되어 있다.
쌍석불에 얽힌 탄생 설화는 고려 선종(재위 1083~1094)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식이 없던 선종은 고민 끝에 왕자 생산을 바라며 원신궁주를 맞이한다. 어느 날 궁주는 '장지산 남쪽 기슭 바위틈에 사는 두 도승이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는 꿈을 꾼다. 꿈 이야기를 전해들은 선종이 알아보니 장지산에는 정말 두 개의 바위가 있었다. 선종이 바위에 도승을 새기게 한 뒤 절을 지어 불공을 드렸더니, 그 해에 정말 왕자 한산후(漢山候)을 얻었다는 것이다.
한편, 쌍석불에는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어머니가 불공을 드리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낳았다는 비화도 전해진다. 실제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1954년 쌍석불을 방문, 참배하였다고 한다. 당시 참배 기념으로 만들어진 동자상과 7층 석탑은 이를 뒷받침한다. 처음에 동자상과 7층 석탑은 왼쪽 석불의 오른쪽 어깨 옆과 뒤에 각각 세워졌다. 그러나 문화재 원형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1987년 석불 위에서 내려진 뒤 경내의 이곳저곳을 거쳐 지금의 삼신각 옆으로 옮겨졌다.
천 년 세월 세찬 비바람과 거센 눈보라를 맞으면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온 쌍석불의 자태가 한 순간에 뭉개질 뻔했다. 동자승과 7층 석탑이 무슨 죄가 있다고. 자세히 보면, 대웅보전 앞 석등의 기둥에도 '국태민안을 위하여… 대통령 박정희'라고 새겨져 있다. 이름 새기고 기념하기 좋아하는 위정자들의 모습은 문화재를 대할 때 늘 이런 식인 것 같아 뒷맛이 영 씁쓸하다.
[파주 윤관 장군 묘] 문인석과 무인석을 거느린, 왕릉 못지않은 윤관 장군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