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보리
"토지사유제는 노예사유제와 마찬가지로 노동을 하지 않고 이득을 취합니다." 헨리 조지.-<떠날 수 없는 사람들> 34쪽
보리 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만화책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읽으며 나는 이 문장을 곰곰히 생각한다. 토지사유제와 노예사유제는 어떤 점이 비슷한 것일까? 노예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는 제도이기에 현대사회에서는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금지 된 노예제가 지구상의 많은 나라에서 인정하는 토지사유제와 비슷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주장이다. 책을 읽는 내내 토지사유제에 대해 생각했다.
철거반이 들이 닥친다. 사춘기 여학생이 엄마와 살고 있는 용산 신계동 집에. 마트에서 일하던 엄마는 연락을 받고 급히 집으로 달려온다. 도착해 보니 이미 집은 형태를 잃고 무너져있다. 부서진 벽과 그 아래 깔린 여학생의 물건으로 엄마와 여학생이 살던 집 위치를 알려줄 뿐이다. 엄마는 사춘기 딸이 이 처참한 모습을 보는 것만은 막고 싶었을 것이다.
딸에게 연락을 한다. "정아야, 지금 집에 일 났으니 오면 안 돼!" 엄마는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사람의 존재를 가벼이 여기는지 아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그걸 보고 아이가 세상을 어찌 웃으며 살아갈지 엄마는 무서웠을 것이다.
철거반이나 건설회사나 조합이 보기엔 공사를 지연시키는, 한시 바삐 부셔버려야 할 집이지만, 그 집엔 한 여학생이 아끼는 옷과 아이가 공부하던 교과서 그리고 친구에게 받은 선물이 있다. 그런 소중한 것들이 모두 다 박살났다.
그 날 밤, 엄마는 아이를 안고 어느 지붕 아래에 깃들었을까? 그리고 아이에게 처참한 일을 어떻게 설명하고 위로했을까? 엄마는 또 얼마나 얼마나 아이에게 미안했을까? 그 처참한 기억의 땅인 용산 신계동엔 지금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혹시 내가 사는 아파트도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지는 않을까? 적어도 가슴 아픈 땅에 지어진 아파트를 사는 행동을 나는 하지 말아야 할텐데.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이런 비인간적인 철거가 우리네 건설현장에서 없어지지 않을까?
용산참사의 원인이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진압에 있다고 비판을 하면서도 용산에 들어서는 초고층 아파트에 당첨된 사람을 부러워했다면 나 역시 용산참사의 동조자가 아닐까?
멋진 아파트에 당첨이 된 것을 축하하고 부러워하는 내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나와 같은 소비자에게 아파트를 빨리 만들어주려고 무자비한 철거를 자행하는 건설회사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
그런데 해가 지면 아이들이 돌아와요. 이 천막도 집이라고 잠을 자러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