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 우리도 언론이다

[주장] 대학생으로서의 태생적 한계... 대안언론으로서의 가치를 찾다

등록 2012.02.12 12:18수정 2012.02.12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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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언론의 위기라고 한다. 대학 내 학보사 기자단은 그 인원수가 줄어들고, 기자가 몸담고 있던 학교의 교지 역시 폐간 위기까지 직면한 바 있었다. 다행히 폐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몇 명의 뜻있는 학우들이 다시 힘을 모아 이어가고 있다. 기자가 알게 된 타 대학 학보사 기자의 경우, 선배 기자 한 사람만 남아 신문을 발행하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었던 적도 있다고 했다.

'스펙'을 위해 수습기자 기간인 한 학기만 활동한 후 학점관리를 위해 기자들이 그만 두는 경우가 많다. 또 과제하 듯 기사를 인터넷 여기저기서 '긁어'와 쓰는 경우, 학교에서 쓰라는 대로 기사를 써 내는 경우 등은 적지 않은 숫자의 대학 언론들이 공감하는 현실이다. 

투쟁의 중심이었던 과거 학보사, 현재는?

기자가 태어나던 시절,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80년대와 90년 대 초까지 대학의 학보사는 학내 여론을 하나로 모으며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사상적 기반이었다. 행동의 당위성을 알려,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공론의 장이었고, 학생회 간부들의 활동 상황을 학우들에게 전달하고 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소통 창구였던 셈이다. 학보사의 존재는 인터넷이 상용화되지 않아 정보를 전달받을 통로가 제한되어 있던 그 당시, 학내 구성원들의 생각과 행동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실제로 과거 90년대 초반의 대학신문 기사를 보면 '총장 물러나야', '총학생회 간부 구속' 등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강한' 기사들이 많이 실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사를 세밀히 살펴보면 기사 안에서 '미사여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기사 자체가 거칠고 강한 문투로 구성되어 있다.

전국 대학생들이 함께 투쟁하던, 그 선봉에 우리 학교 총학생회 간부들이 있었고, 그 간부들은 국가의 탄압을 받고 구속 기소되었다. 이러한 기사를 읽고 분개하지 않을 학우는 없었을 것이다. 문장이 거칠지만 주장이 강하게 담겨 있어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한다.  

학교 학보사에서 3년 간 기자생활을 해 본 바로는, 요즘 대학생들은 운동권의 '운'자만 들어도 표정이 굳어진다. 과거 대학 신문의 기사와 현재 우리 세대가 쓰고 있는 기사를 비교해보면, 확실히 현재의 기사 문장에 '미사여구'가 많으며 유하다. 물론 학생들이 쓰는 기사인 만큼 프로들처럼 능수능란한 글은 아니다. 다만 과거 학내 언론사들의 글보다 주장이 약하고 양쪽의 입장을 정리하는 선에서 그친다는 뜻이다.


대학 언론, '엄친아'가 되다

인터넷이 상용화되어 누구나 원하는 정보를 내 손안에서 검색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굳이 학내 신문을 읽어야만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학우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대기업 채용공고와 해외연수 기회 등이다. 학보사 기사에는 집회와 시위현장 취재 후기보다는 어떤 기업과의 협정 체결과 취업 설명회 안내 기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생들이 세상의 '악한' 것들과 싸웠지만, 지금 학생들의 적은 모든 '스펙'을 다 갖춘 '엄친아'다. 과거 대학생에는 분명한 실체가 있었지만 '엄친아'는 하나의 신화로서, 풍문으로만 존재한다. 풍문이지만 항상 우리 옆에 존재한다. 과거의 적은 연대와 투쟁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엄친아'는 혼자, 열심히, 스펙을 쌓는 것 밖에는 대항할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 언론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엄친아'가 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밖에는 독자를 끌어낼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초 단위로 빠르게 업데이트 되며, 기자가 일일이 써야 하는 학내 신문은 정보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고로 학보사는 태생적으로 위기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대학언론, 위기는 없다

2009년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이하 전대기련)에서 전국 30개 대학 학보사의 내부 현황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조직 운영 중 가장 어려운 점에 대한 질문에 많은 학교에서 운영주체 간 갈등(22%), 기자들끼리 같은 학생으로서의 사적 관계와 기자로서의 공적 관계를 공존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15%), 학교 당국으로부터의 언론탄압(15%) 등의 대답이 있었다.

이는 학생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학보사의 태생적 한계인 셈이다. 물론 중간에 기자들이 그만두는 것이 힘들다고 대답한 비율이 37%로 제일 많았다. 또한 기자 인원수 현황은 6~10명으로 구성된 대학이 16개로 제일 많았다. 5명 이하인 학교가 2개, 11명에서 15명 사이인 학교가 4개, 16명 이상인 학교가 6개였다. 인원 역시 기성 언론에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적다. 기자가 몸담았던 학보사에서도 한 학기에 절반 이상의 기자들이 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만드는 주체에게 한계가 있다고 해서 대학언론 자체가 한계를 지닌 건 아니다.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 운영 주체가 바뀔 때마다 혼란을 겪지만, 그만큼 새로운 운영 주체들의 개성이 십분 반영되어 신문의 분위기가 크게 바뀐다. 그런 과정에서 더욱 참신하고 신선한 시도가 가능하다.

기성세대가 당연시 여기는 것에 대해 대학생의 시선에서는 의문을 느낄 수 있다. 기존 언론에서는 '데스크'에서 '킬'당할 수 있는 기사이지만 학보사이기 때문에 실을 수 있는 기사도 있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되기를 원하고 사회에서 요구하지만 될 수 없는 '엄친아'의 허구성을 폭로할 수도 있다. 반값등록금이 왜 필요한지 대학생들만의 시선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대학 언론이 만들어줄 수 있다.  

대학 언론에게는 방향 설정이 필요할 것이다. 대학 언론에게 필요한 것은 기성언론의 뒤를 밟는, '꼰대'흉내가 아니다. 그렇다고 인터넷처럼 빠르게 정보를 전달할 필요도 없다. 다만 대학생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스펙'만이 아니며, 다양한 삶의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대학생들의 힘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게 기성언론의 대안인 '대학언론'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이다.

덧붙이는 글 | 머니투데이 대학경제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머니투데이 대학경제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대학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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