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 최고세율 구간 3억 원을 신설해 38%의 세율을 적용한다는-그나마 그 대상자가 전체의 0.2%에 불과한-정도만으로도 난리가 나는 게 우리 상황이지만,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공간이 활짝 열리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논의에 부쳐볼 만하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
남소연
'최저임금'은 흔히 쓰지만 '최고임금'(maximum wage)과 '최고소득 상한제'라는 건 처음 알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월호에 미국 정책연구소(IPS)의 샘 피지가터 연구원이 쓴 "'최고소득'상한을 정하라"라는 글에서다. 그는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 활동가들이 최근 '최고소득 상한제'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남북전쟁(1861~1865년)이 끝나고 찾아온 번영기에 전개된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대규모 운동이 오늘날 '최고임금'이라고 불리는 개념의 도입을 주장했다"고 소개했다.
"우리는 최저임금 투쟁을 벌이면서도 왜 최고소득상한제를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을까"라는 이 월간지의 안영춘 편집장 추천글에서 '무식'에 대한 위로를 받는다.
"노동자 착취로 얻은 부, 미국 정치 부패시킬 것"20세기초 펠릭스 애들러(Felix Adler)는 철학자가 노동자들을 착취해 쌓은 거대한 부가 미국의 정치적 삶을 '부패'시킬 것이라는 염려 아래,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에 최고 100%까지 세금을 물리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이 논의의 출발점이다.
자본가들의 거대한 부가 미국의 정치를 부패시킨다는 그의 일갈은 최근 미국의 '월가점령'운동가들과 로버트 라이시(클린턴 행정부 노동부 장관), 폴 크루그만(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 같은 이들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미국은 1928년과 2007년에 상위1%가 총소득의 23%를 넘게 차지하는 최악의 소득 양극화를 기록했는데 이것이 1929년과 2008년 대경제위기의 핵심 원인이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막대한 자금이 정치권에 쏟아져 들어와 정치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당시 애들러의 제안은 <뉴욕 타임스>를 통해 소개됐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최고임금' 개념 입법화가 처음 시도됐다. 전비 마련을 위해 10만 달러 이상 소득에 대한 100% 과세를 제안했고 미국전비위원회(Amrican Committee on Finance War)는 이를 위해 전국에 2000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 네트워크를 조직했다. 이들은 '부의 징발'이란 표현을 쓰면서 사람들을 설득했다.
1917년 상원에서 "국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한 인간의 생명까지 빼앗을 수 있다고 한다면, 같은 이유로 누군가의 재산을 징발할 권리도 있는 것이다… 미국은 다른 모든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부유층의 이익과 민주주의 수호 양자를 위해 동시에 싸울 수 없다. 신을 위한 전쟁이 동시에 맘몬(황금신)을 위한 전쟁일 수는 없다"는 연설이 나오기도 했다.
이들은 애초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조세제도는 혁명적으로 바꿨다. 100만 달러 이상 소득에 대한 과세율이 1914년 7%에서, 1918년 77%로 상승했다.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이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일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적색공포(Red Scare)가 몰아치면서 1925년의 과세율 상한은 25%에 머물렀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 속에 '고소득 상한제'가 힘을 얻었다. 루이지애나 출신의 상원의원 휴이 피어스 롱이 '우리의 부를 나눠 갖자'(Share Our Wealth)는 기치 아래 "개인 연간 소득은 최고 100만 달러(2010년 기준으로 약 1500만 달러에 해당)로, 재산은 800만 달러로 제한하자"라고 제안했다.
참고로 그는 나중에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뒤를 이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떠올랐지만 1935년 루이지애나 주 의회 건물에서 암살당했다. 영화 <모두가 왕의 부하들 (All the King's Men)>은 그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그 뒤 1942년 "전쟁 기간에는 연간 소득을 2만5000달러(2010년 기준 약 35만 달러) 이하로 제한하자"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제안은 실현되지 못했으나, 미국 상원은 1944년 20만 달러 이상 소득에 대한 과세율을 사상 최고 수준인 94%까지 인상했다. 무려 94%다.
20만 달러 이상 소득 과세율, 2차 대전 뒤 20년간 90%그 뒤 20년간 미국 경제의 대번영기에 최고 과세율은 90% 근처를 맴돌다가 린든 존슨 대통령 집권기(1963년 11월~1969년 1월)에 70% 이하로 떨어졌다. 결정적으로 미국을 보수화시킨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인 1981년 50%, 1988년 28%로 떨어졌고 현재 최고 과세율은 35%수준이다.
피지가티 연구원은 "한 세기 전 애들러가 제안했듯이 강한 누진세율을 적용해 최저임금과 연동된 실질적 '최고임금'을 규정해야 한다"며 "'최저임금의 몇 배' 하는 식으로 명확하게 최고임금을 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최저임금의 10배 혹은 25배 이상 소득에 대해 100% 과세율을 적용하면 된다"고 제안한다. 그래야 부자들이 최저 빈곤층의 복지가 자신의 이익에 직결된다고 사고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이런 종류의 제안은 정치적 환상으로 치부됐으나 이제 시대가 변했다"며 "예일대학의 법학 교수와 버클리 대학의 경제학 교수는 최근 <뉴욕 타임스>(2011년 1월 18일자)에서 '미국 최상위 1%의 소득을 전체 평균 소득의 35배 이하로 제한하는 조세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사람들은 최저임금제를 하나의 사회적 쟁취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최고임금제 역시 쟁취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글을 마쳤다.
'최저임금' 투쟁도 버거워하는 우리로서는 한 세기 만에 다시 떠오르고 있다는 미국의 '최고임금제'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 3억 원을 신설해 38%의 세율을 적용한다는 -그나마 그 대상자가 전체의 0.2%에 불과한- 정도만으로도 난리가 나는 게 우리 상황이지만,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공간이 활짝 열리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논의에 부쳐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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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데도 한도가 있다'는 미국...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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