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그 사랑현대서예의 멋 초대작품
이영미
아마도 작품뿐이 아닐 것이다. 사람의 인연 또한 그 사람을 움직이고자 하면 그것이 바로 자기도 모르게 집착이 된다. 그 집착 마치 내가 잘하고자 하면 할수록 잘 나오지 않던 그 한장의 묵향작품처럼 잡고자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게 만든다. 얼굴이 잘 비치던 샘물을 계속 휘저으면 얼굴도 비치지 않고 샘물도 떠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나무와 나무도 적절한 거리에서 그 뿌리가 깊게 내려 울창한 숲의 근원을 이룬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도 아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물질의 세상에서는 그러한 보이지 않는 는 마음의 여백자리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정말로 상대를 위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위한다고 섣불리 말하지 않는다. 정말로 세상을 위하는 사람의 하나는 큰 목소리 내지 않고, 말을 앞세우지도 않고 남 앞에 나서지 않고도 세상을 위해 평생 근검절약하며 살다가 흔쾌히 쾌척하거나 실천행을 하면서 홀홀히 떠난다.
존경하는 분 중의 하나가 오늘 말씀하셨다. 높은 자리에 있을 수록 지식과 현실을 두 다리처럼 잘 조화하여 상생의 숲을 위해야 하는데, 지식도 미약하고 현실에 대한 포용성도 일부 계층에만 국한하여 부실한 두 다리로 지팡이란 권위의 지팡이에 의지하여 그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니 민생의 삶이 고달파지고 다치는 사람이 많이 생겨 안타깝다고.
평소에 많지 않은 월급을 앞당겨 마이너스카드를 활용하거나 또는 담보를 잡혀 은행빚을 내서라도 어려운 노인시설에 차를 사주거나, 엄동설한에 이사를 해야 하는 곳에 이사비를 보내거나 하면서 항상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말보다 실천을 하시는 청빈하신 분이라 그 말은 유독 가슴에 닿는다.
인사동에서 전시오프닝하는 날. 꼬맹이 때 내게 붓잡는 것을 배웠지만 미술대학원을 나와 나름대로 독특한 안목이 있는 제자가 말했다.
"선생님 작품이 현대에 맞는 3D 같은 느낌이 들어요!" 못 들어서 종종 정확히 표현을 할 줄 모르는 나는 3D가 무엇인지 모르고 읽을 때도 "삼디"라고 말했다가 딸들에게 창피한 표현이라고 무안을 받은 적이 있다. 이제는 그것을 쓰리디라고 이제 말할 줄 안다. 20년의 세대차를 초월해서 새벽별빛 속에서 시린 손을 호호 불었던 그 온기가 제자의 가슴에 전해지는 공감을 이루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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