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표지
평사리
'팍스로마나'라 불리는 세계제국 로마의 몰락은 토지로 인한 사회갈등에서 시작됐다. 기원전 73년 광산 노예 출신인 검투사 스파르타쿠스 주도하에 대규모 노예반란이 일어났다. 그 배후에는 대토지 소유제도에 의해 강제로 토지를 뺏긴 농민들의 지지가 있었다.
당시 로마의 힘은 자영농에 기반한 강력한 군사력에 있었다. 하지만 일부 특권층이 토지를 사유화하면서 자영농은 몰락했고 그 자리를 노예제 대농장 라티푼디움이 대신했다. 이는 로마의 최대 강점이던 군사력의 쇠락을 불러왔다. 넘치는 부로 인한 대토지 소유자들의 타락과 군대의 붕괴는 15세기경 천년제국 로마가 쓰러지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됐다.
기원전 6세기 전성기를 누리던 그리스도 귀족들이 토지 대부분을 소유하면서 사회갈등이 발생했다. 토지를 뺏긴 자영농들의 경제적 기반은 붕괴됐다. 이는 그리스의 조세기반을 약화시키고 군사력의 토대를 흔들었다. 이처럼 토지문제는 천하를 호령하던 제국들의 몰락에 영향을 끼칠 만큼 중요한 것이었음을 역사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현대의 경제정책과 경제학에서는 토지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모든 인간이 공평하게 부여받은 유일무이의 자원, '토지'김윤상·조성찬·남기업 등 6명의 저자들은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에서 토지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주류경제학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토지정의시민연대', '토지+자유연구소' 등에서 활동하며 한국 사회 문제의 핵심이 토지에 있음을 꾸준히 역설했다. 저자들은 전세대란과 같은 주택문제, 증세·감세 논란, 개발사업으로 인한 갈등을 포함한 각종 사회문제가 일어난 것은 토지의 중요성과 독자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토지를 "사람이 생산하지 않은 것으로 모든 인간이 공평하게 부여받은 유일무이의 자원이고 삶의 근거"라고 정의했다. 또 자본과 달리 토지는 재생산이 불가능해 한 사람의 토지소유는 타인의 손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자본의 가격은 그것을 생산한 자의 노력과 비용에 비례하지만, 토지의 가치는 도로·공원·관공서 등을 설치하는 정부의 노력이나 자연경관이 얼마나 수려한가에 따라 결정된다. 저자들은 토지가 갖는 이 같은 독특성 때문에 토지를 자본과 구별해 독자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이들은 자본과 달리 외부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토지가치, 즉 토지 소유자의 노력과 관계없이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사유화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말한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도 토지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은 불로소득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주들은 일하지 않고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혹은 절약하지 않고도 잠자는 가운데 더 부유해진다. 전 사회의 노력으로부터 발생하는 토지 가치의 증가분은 사회에 귀속돼야 하며 소유권을 갖고 있는 개인에게 귀속되어서는 안 된다."
자고 있는 동안 부자가 된다... 토지불로소득의 주인은?우리나라는 토지 문제로 인한 사회갈등이 첨예한 나라다. 행정수도 이전문제, 용산참사, 4대강 사업 등 모두 그 이면에 토지불로소득과 관련한 문제가 개입돼 있다. 저자들은 행정수도 이전의 경우 주변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한 찬성 측과 수도권 땅값과 아파트값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한 반대 측의 대립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행정도시 예정지인 연기군의 땅값이 2004년과 2005년에 걸쳐 45% 이상 상승했다고 한다.
2009년 1월 용산 역세권 주변 개발사업과 관련해 보상을 요구하던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원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도 그 배후에 토지 개발이익이 존재한다. 2001년 용산 개발사업 발표 당시 평당 700만 원 정도 하던 땅값이 2008년에 평균 8000만 원으로 상승했다.
토지를 소유한 조합원과 개발에 참여한 개발업체들은 천문학적 개발이익을 얻게 된 반면, 사업지구 내에 주거가 있던 임차인들과 세입상인들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배제됐다. 저자는 "토지 불로소득이 있고 그 불로소득을 소수가 독식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용산이 될 수 있고 참사의 현장으로 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4대강 보가 설치된 여주 이포 주변의 땅값은 사업 전에 비해 다섯 배 이상 폭등했다. 평창은 지난해 7월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최근 한국방송 <시사기획 창>과 재벌닷컴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현직 고위공직자, 재벌기업 총수일가는 물론 언론사 사장과 연예·스포츠 스타까지 평창 주변 땅을 대거 사들였다고 하니 개발예정지의 상당수가 외지인의 손에 들어간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수긍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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