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쏘는 맛이 일품인 돌산갓김치. 돌산도 특산품이다.
이돈삼
김치. 한국인은 역시 김치. 과학적으로 우수한 이 음식. 일본의 '기무치'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한국인의 자존심입니다. 서양인과의 대결에서 그들이 치즈맨이면 우리는 김치맨이 됩니다. 김치는 한국인의 자부심입니다.
저는 본가가 전라남도 해남입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해산물을 많이 먹었습니다. 맵고 짠 음식들이 주된 반찬이었지요. 그리고 제 어머니의 자랑 중 하나는 아들이 김치를 잘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전라도 음식으로 단련된 제 입맛은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매움을 못 느낄 정도였습니다. 김치를 먹는 것이 한국인임을 증명하는 것일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왜 김치를 잘 먹는 것이 자랑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저는 남들이 못 먹는 것을, 즉 남들이 못하는 것을 해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렸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매운 것을 '심각하게' 잘 먹습니다. 집에서 끓이는 국은 청량고추가 들어가지 않으면 먹질 않고, 밖에 나가면 무조건 맵게 해달라고 합니다. 맵다고 소문난 음식점을 일부러 찾아가 먹을 정도입니다.
어느 날, 어떤 음식점에서 가장 높은 단계 매운 맛을 먹고 나온 후 제가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가 부른데 맛있게 먹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물배만 가득 차 헉헉 거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돈을 지불하고 얻은 것은 음식을 먹었다는 포만감보단 '내가 이 집에서 가장 매운 음식을 먹고 나왔다'는 허영 가득한 자부심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엔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국인은 김치의 민족이라는 자부심 덕분인지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을 능력으로 인식합니다. 마치 '네가 한국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김치를 먹어야 한다' 같은 소명일까요?
며칠 전, 제가 한 기사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 아래에 이런 댓댓글이 달리더군요.
"내가 음식점에서 김치를 먹었는데 사래가 들렸다. 그래서 콜록콜록 거리는데 옆에 앉던 할아버지가 젊은 사람이 김치도 못 먹는다고 혼내는 거야. 내가 정말 억울해서….""팀원들끼리 회식에 갔는데요. 김치전골을 먹으러 갔어요. 그런데 제가 매운 것을 잘 못 먹어요. 그래서 잘 못 먹는다고 했더니, 팀원들은 '너 그것도 못 먹느냐'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팀장님은 '남자가 매운 것도 못 먹는다'고 핀잔을 주시더라고요. 그 후로 회식이 있으면 사람들이 저한테 물어봐요. '이건 먹을 수 있어?' '맵긴 해도 먹을 수 있지?' '매워도 좀 참아봐' 이런 식으로 물어보는데 솔직히 불편해요.""친구와 밥을 먹는데 제육볶음을 시켰거든요. 그런데 너무 매워서 반도 못 먹었어요. 그랬더니 친구가 '한국 사람이면서 그런 것도 못 먹느냐'고 그랬어요. 저희 부모님도 그러셨고요. 그게 정말 이상한건가요?"그런데 거기엔 이런 의견들도 덧붙여 지더군요.
"한국인이 우수한 것은 매운 음식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마늘, 고추, 대파, 양파, 생강같이 매운 음식을 아주 오래전부터 먹었습니다. 그래서 매운 음식이 아니면 음식을 먹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매운 음식을 찾게 되는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매운 음식을 안 좋아하면 외국인의 피가 섞여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저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데요. 입술부터 아련하게 전해져오는 통증과 매운 음식을 먹으면 나도 용기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매운 것을 잘 먹어서 다른 사람들 놀려주는 것도 재미있고요. 진짜 매운 걸 못 먹는 애들과 같이 먹을 때 걔네들 반응 보면 웃겨 죽겠습니다. 그리고 매운 음식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려요."매운 음식 먹을 때,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