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입니까? 이력서 넣지 마세요'..."너무해요"

[나도, 청년유권자 ③] 고졸 직장인 이승현씨 "우리도 사람입니다"

등록 2012.03.19 13:28수정 2012.03.1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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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두고 청년층 표심을 잡기 위해 각 정당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대책, 반값등록금 등 연이어 청년을 위한 정책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정책들이 모든 청년층을 샅샅이 살펴본 뒤 나온 것일까. 혹시 대학생이라는 특정 신분에 치우친 정책들은 아닐까. 대학생만 청년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도, 청년유권자>라는 기획을 통해 2030세대에 속하는 비대학생 청년들을 만나 그들이 하고픈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자 주>

한때 텔레비전에서 '학교 밖 청소년'에 주목하자는 프로그램이 성행했다.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대학 밖 청년'에 주목하는 것은 어떨까. 20대 초중반의 나이라면, 어느새 우리는 알게 모르게 "대학생이세요?"라는 말을 먼저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나이에 대학생만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대학 밖 청년'으로 20대를 지낸 이승현(27)씨를 7일 안양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 중인 이승현씨의 모습
인터뷰 중인 이승현씨의 모습강진아
이승현씨는 2년 전 모 통신기업의 협력업체 소속 상담직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새롭게 상담직을 교육하는 강사 업무를 하는 중이다. 지금은 자기계발을 하며 새로운 도전에 힘쓰고 있지만, 그는 이 일을 갖기 전까진 주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고등학교 졸업생'이었다.

2005년으로 훌쩍 뛰어넘어, 그의 고등학교 졸업 당시로 돌아가 보자.

"제가 공고를 다녔기 때문에 졸업하기 6개월 전에 실습을 나갔어요. 실습 나간 곳에서 계속 일하며 취업하는 사람도 있지만, 남자의 경우 병역문제가 걸려있어요. 회사에서 병역산업체 근무까지 권유하는데, 개개인이 다르겠지만 당시 저는 좋지 못한 소문을 들어 탐탁지 않았죠.

소문이지만, 병역산업체로 근무하면 일단 군인이니까 임금은 조금 주는데 아무리 일을 많이 시켜도 중간에 그만둘 수 없다는 거죠. 일을 그만두면 군대를 다시 가야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거죠. 정확하진 않지만 그런 얘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병역산업체에 지원하지 않았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그 회사도 그만뒀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딱히 직업을 구할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군대를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해봤자 평생직장이 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서란다. 입대 전까지 구직에 대한 개념 자체를 생각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대학에 들어가면 군 입대 한다고 휴학을 하죠?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생은 달라요. 저희는 군대 가기 전에 직업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제가 직업을 선택해봤자 1~2년 뒤에 군대를 가버리니까요. 한마디로 틈이 있는 거죠. 물론 어디 공장에 들어가서 잠깐 일하다가 나올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게 내 직장이라는 생각은 안 들잖아요. 물론 열심히 돈을 모아 군대 이후의 생활을 준비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거의 군대를 다녀와서 직업을 구하게 되죠."

그는 군대를 가기 전까지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 이력서를 쓰는데 유난히 이력서가 짧았단다.


"고등학교 때 전기과를 나왔는데 제가 그쪽에는 흥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사실 남들은 전기 관련 자격증이니 뭐니 많이 있지만 전 자격증이 없었어요. 겨우 정보처리기능사 정도? 이력서를 쓰면서도 '고졸, 정보처리기능사' 딱 두 줄 쓰면 끝이더라고요. 스스로 정말 허무하게 내세울 게 없었죠. 특별한 기술도 없고요."

여기저기 아르바이트 이력서를 보낸 곳 중에 연락 온 곳은 딱 한 곳, 피시방이었다. 2005년 1년여 동안 피시방에서 일을 하고, 다음해에는 군대 갈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2006년 1월, 입영통지서가 왔는데 입대는 9월 달이었다. 갑자기 다시 9개월의 시간이 생겼고, 무작정 놀 수 없어 아웃소싱 휴대폰 판매 업무와 호프집을 돌며 일했다.

"직업훈련소 같은 곳에 가서 뭔가 배울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직업훈련소가 있는 것은 알아도 실행하는 것 자체가 쉽진 않아요. 그 나름대로 참 용기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거의 학교를 다시 다니는 것처럼 기술을 배우고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런 걸 일일이 찾아서 시도하는 사람은 보편적으로 많이 없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바로 돈을 벌어야 하는 경우엔, 알아도 하기 힘들고요. 그리고 사실 미래에 투자한다는 개념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죠."

군대를 전역한 후에도 당장 일자리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역시나 대형마트 단기 알바, 용산에서 배송업무, 노래방, 호프집 아르바이트로 1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2009년 본격적으로 일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이력서를 쓸 수 있는 곳이 매우 한정적이었다. 그는 "요즘 일자리가 많이 없다고 하지만 당시에도 고졸 채용은 거의 없었다"며 "100곳이 있다면 10곳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채용 공고를 보다가 괜찮은 회사 같아서 '어?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보면 다 고졸채용이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초대졸, 대졸을 원하죠. 처음엔 어린 나이니까 그런 걸 보면서 기분이 상했어요. 그런데 점점 채용공고를 보면서 덜컥 겁부터 나는 거예요. 차츰 용기가 사라지니까 이력서 넣어보는 것조차 시도를 못하게 되는 거죠."

고졸자에겐 너무 높은 '취업의 문턱'... "일자리 정책, 겉만 좋아선 안 돼"

 한 인터넷 아르바이트 사이트. 많은 이들이 검색으로 아르바이트를 찾는다.
한 인터넷 아르바이트 사이트. 많은 이들이 검색으로 아르바이트를 찾는다.화면캡쳐

그는 한마디로 '자격조건이 높다'고 정리했다. 무슨 일을 시키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많은 경우 고졸은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회사나 사람들이 항상 자격조건을 먼저 따지니까 고졸 입장에서는 넣을 데가 없는 거죠. 학력부터 시작해서 무슨 자격조건들이 그리 많은지… 가장 큰 문제는 고졸의 경우 지원할 수 있는 직업 종류의 범위가 너무 작다는 거예요.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인 거죠.

만약, 같은 직종이라고 해도 고졸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몇 개 없죠. 대부분 힘이 들어 오래 일할 수 없는 단순 노무에 생산직만 있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 뚜렷하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을 해볼까 하는 시도조차 어렵다는 거죠. 왜냐면 지원할 수 있는 자격조차 없으니까요."

그가 가장 큰 차이를 느끼는 것은 정보력의 부재였다. 고졸의 경우 사회에 빈손으로 나와 아무런 사전 지식도 정보도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사실상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대학 나온 사람들 보다 적잖아요. 대학교를 들어가면 어떻게든 교수랑 알게 되고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잖아요.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많죠. 그런데 고졸 구직자는 사회에 '맨몸뚱이'로 나오는 거잖아요. 더군다나 고등학교 때는 졸업만 시키지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자기계발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죠.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것만 가르치잖아요.

물론 부모님이 사회 선배로서 많은 경험의 수를 안다면 도와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제 아버지는 초등학교도 못 나왔어요. 여러 정보를 알기가 힘들어요. 결국 혼자서 아등바등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스스로 깨닫는 경우가 많죠."

그렇다면 고졸 구직자를 위해, 고등학교에서 미리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면 어떠냐고 묻자 그는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학교에서 사회에 나가기 전에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말해주는 경우는 아예 없다고 봐야죠. 제가 나온 실업계 고등학교는 실습 위주의 시스템이에요. 아무래도 취업이 주 목적이다 보니 '너 여기 취업 나가, 여기 괜찮아' 주로 이렇게 말하죠. 물론 좋은 선생님은 어느 정도 조언을 해줄 수는 있겠죠. '이런 방법이 있으니까 니가 잘하는 특기를 한번 살려봐라' 이렇게요. 하지만 그런 교육 시스템이 없을뿐더러 현실은 힘들죠.

솔직히 취업, 진학이 평가될 테니까 고등학교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곧바로 사회에 나가는 아이들에게 조금 다른 생활,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도움을 준다면 좋을 것 같아요."

이어 그는 실업고에서 실습이 끝난 후 졸업 전에 비는 시간을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학교와 시, 군, 구 등 정부가 협력해 사회에 나가서 도움이 될 만한 실질적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자는 것이다.

이씨에게 고졸 구직 경험자로서 정당의 일자리 정책에 대해서도 간단히 물어봤다. 그는 "제가 청년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사실 청년 정책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살기 바빠 죽겠는데 관심이 없는 한 청년 정책 그런 건 거의 까막눈"이라고 솔직히 답했다. 그럼에도 취업센터 설립에는 한마디 덧붙였다.

"취업센터를 만들어서 청년들을 많이 모으면 뭐하나요? 어떤 기업에서 받아줄 것인가가 중요하죠. 문제는 취업센터와 기업이 동시에 준비되고 연결돼서 같이 가야한다는 거죠. 빛 좋은 개살구로 허울만 좋아선 안 돼요."

마지막으로 이승현씨가 20대 고졸 청년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았다.

"'나도 청년이다'는 말, 좋은 말이죠. 청년이라는 바닥부터 잘 다져야 기둥을 튼튼히 세우고 건물을 만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전 그것보다 우선 '나도 사람이다'를 말하고 싶어요. 학력 위주로 보지 말고 한 사람으로서만 바라봐 달라는 겁니다. 저희도 다른 빛나는 가치를 갖고 있는 개개인이거든요."

덧붙이는 글 | 강진아 기자는 <오마이뉴스> 2012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입니다.


덧붙이는 글 강진아 기자는 <오마이뉴스> 2012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입니다.
#청년 #청년실업 #고졸 구직자 #고졸 #이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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