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서울 세브란스병원 강당에서 열린 이소선어머니합창단 연습
이소선어머니합창단
"자, 이제 베이스하고 테너만 해봅시다. 얼마나 못 하는지 한번 들어보세요."
지휘를 맡은 성악가 임정현 선생님의 뼈 있는(?) 농담에 모두 웃음이 빵 터졌다. 등에 커다랗게 구호를 써 붙인 그을린 얼굴의 남성들도 겸연쩍게 웃고,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여성들도 깔깔깔 웃음을 쏟아냈다. 지난 2일 저녁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강당.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의 연습 풍경이다.
이소선어머니합창단. 혹시나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이라고 읽어서 '주부 합창단인가?'하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 합창단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의 뜻을 기리는 노동자 합창단이다. "하나가 돼라. 노동자는 하나가 돼야 한다"는 이소선 어머니의 뜻에 따라 한국노총 산하의 연세의료원노조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산하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20여 명이 뭉쳤다.
이소선 어머니는 지난해 9월 3일 돌아가셨다.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은 9월 7일 이소선 어머니의 영결식 무대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 뒤로 11월 12일 열린 '전태일 정신 계승 노동자대회' 무대에도 섰다. 원래는 이소선 어머니 영결식 때 한 번의 공연을 위해 모인 프로젝트그룹(?)이었는데 자꾸 불러주는 데가 생기다 보니 아예 상시적인 멤버를 갖춘 공연팀으로 꾸려볼 마음을 먹은 것이다.
내가 찾아간 날은 그렇게 팀을 재구성하기로 한 뒤 처음 모인 연습 날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거기 있었을까? 사실 지금 생각하니 참 우습다 싶다.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의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는 금속노조의 한 간부가 기자인 내게 '이런 팀이 꾸려질 것이다'라는 보도자료(?) 메일을 보내준 것이 발단이었다.
'그냥 알고나 있으라'는 정도의 그 자료를, 나는 순간 '너도 같이 하자'는 것으로 너무 적극적으로 해석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쭈뼛쭈뼛 연습장을 찾아갔고, '낙장불입'이라고 회비까지 덜컥 내버린 멤버가 되고 말았다.
합창단의 '민폐 단원'... '피아노 학원이라도 좀 다닐걸' "도~옹지는 간 데 없고 기~잇발만 나부껴어~."
아, 안 된다. 지겹도록 듣고 부른 <님을 위한 행진곡>인데 합창곡으로 편곡된 노래라 완전히 새로 배워야 할 지경이다. 집회를 할 때는 그저 씩씩하게만 부르면 '장땡'인데, 화음이 뭔지도 모르고 흉내 내려니까 주눅이 들어서 입이 잘 안 떨어졌다. 더군다나 이분들은 이 노래로 그 큰 무대에 두 번이나 선 분들 아닌가.
군데군데 자신없는 부분은 입만 벙긋거리면서 립싱크(?)도 좀 하고 겨우 넘어갔다. 이제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의 두번째 레퍼토리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연습할 차례. 이것 역시 합창곡으로 편곡된 것이라 낯설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처음일 테니 그래도 마음이 한결 편하다. 지휘자 선생님이 일일이 파트별로 음을 불러주고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열심히 녹음을 했다.
나도 녹음을… 아, 이런… 내 전화기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귀만 쫑긋 세우고 음을 기억하려고 열심히 듣고 있으니 '거긴 왜 녹음을 안 하냐'는 선생님의 지적.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스마트폰이 아니라 그렇다'고 했더니, 한번 '허헛' 하고 헛웃음 웃으시고는 '다른 사람이 녹음파일을 좀 전송해주라'고 하셨다. 첫날부터 이게 무슨 민폐란 말인가! 다행히 친절한 쌍용차 노동자 한 분이 먼저 나서서 파일을 보내주셨다.
15분 동안 파트별로 따로 모여, 녹음한 것을 들으며 음을 익혔다. 들은 대로 따라만 하면 되는데, 알다시피 그게 그렇게 쉬우면 진작에 다들 가수가 됐을 것 아닌가. 15분이 후딱 지나고 다시 모여 노래를 불렀다.
"소~올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새~앳바람에 떨지 마아~라."노래를 하면서 여기저기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웃음도 피식피식 나왔다. "하나가 되라"는 이소선 어머니의 뜻을 기리는 합창단이라 그런가, 자꾸 옆 사람 노래를 따라가서 음도 하나가 된다. 다시 파트별로 음을 짚어주는 지휘자 선생님.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한테 악보는 있으나 마나다. 악보를 볼 줄 모르니 그저 선생님 소리를 열심히 듣고 무작정 흉내 내는 수밖에. '아, 어릴 때 피아노 학원이라도 좀 다닐걸' 하는 후회가 머릿속에 살짝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