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님서울 광장을 메운 비정규직들에게 "둘매; 정신을 외치고 계신 백기완 선생
이명옥
지난 10일,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하여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주제로 희망광장이 열렸다(장소 : 시청광장). 희망광장의 백미였던 이야기 초대 손님은 백기완 선생과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 지도위원, 현대·유성·쌍용자동차 등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해고노동자들이었다.
비정규직들에게 힘을 주는 한 말씀을 부탁하자 백기완 선생은 "내가 비정규직의 대선배"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67년 전 비정규직 있으면 나와 봐. 내가 비정규직으로 대선배야. 1946년 가을, 여름 잠뱅이 입고서는 춥고 떨려 길거리서 잘 수 없는 거야. 주변을 돌아보니 설렁탕집이 보여. 설렁탕집에 들어가서 잠자리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사정했지. 주인이 나한테 '너 정말 뭐든 시키는 대로 할테냐'고 다짐을 받은 뒤 잠을 재워 줘. 다음 날부터 내가 한 일은 설렁탕 한 그릇 하면 가져다주고 두 그릇 하면 날라다 주는 거였어. 나는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니 열심히 일 해야겠다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어. 어느 날 저녁에 설렁탕이 남아 있어 한 그릇 더 먹었어 . 옆에 보니 찬밥이 남아 있는 거야 그 찬밥을 먹다보니 밥을 다섯 그릇 먹었어. 다음날 주인이 '야 너 밥 많이 먹어서 안 되갔어. 오늘부터 그만 둬'라고 헤서 해고 노동자가 됐어. 그게 67년 전 일이야."
열아홉 살부터 재야운동권으로 살아 온 백전노장의 삶은 역시 달랐다. 비정규직의 아픔을 알기에 김진숙을 위해 시작된 희망버스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탔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거리에 서 있거나 비를 맞았던 탓에 고문 후유증으로 생긴 고관절이 더욱 악화됐다고 한다. 요즘은 찬 곳에서 두어 시간씩 앉아 있다 일어나면 발걸음 떼기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2012년 목표를 '한미FTA 폐기'와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로 잡은 백기완 선생은 한미FTA 폐기 집회, 쌍용자동차 희망텐트 비정규직 파업 현장 등 선생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어디든 달려간다.
인생 자체가 운동이요 산 역사인 백기완 선생이 2월로 여든 해 생신을 맞았다. 후배들과 지인들이 조촐한 잔치를 마련해 인사를 드리려 했지만, 선생은 한사코 마다했다.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한미FTA, 감옥에 들어가 있던 송경동 시인 등 걸리는 문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한사코 마다하는 팔순잔치를 후배들이 졸라 마련해 드리려는 이유가 있다. 백기완 선생이 노년의 모든 것을 걸고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이 땅 민중들의 얼과 삶이 정신을 되살리려 시작한 '노나메기 운동'을 전하고 싶어서다.
5000년 역사를 이어 온 민중의 얼과 삶을 응축한 '노나메기' 정신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노나메기란 '너도나도 일하고 너도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라는 실천운동이자 민중을 이끌어 온 정신이다. 민중들의 삶 속에 녹아진 예술혼과 삶의 철학이니 책이나 기록이 있을 리 없다. 그 시대를 살아온 백기완 선생의 입을 통해 구전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나메기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운동을 이어간다고 한다. 첫째는 '학술 교육 운동'으로 토론회 세미나 대중 강연 등 다양한 학술적 활동을 이어간다. 둘째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극복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안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노나메기 운동은 꼬뮌 정신과 옛 이야기와 삶에 녹아져 있는 문화를 아래로부터 뿌리내리게 하려는 실천운동이다. 그 첫 시작이 대중강의인 '민중미학' 강의다.
'민중미학강의'는 벽돌쌓기 주춧돌 작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