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은 화이트 데이. 하지만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사탕 대신 시험지를 받았다. 올해 첫 전국연합학력평가(모의고사) 시행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은 1년 내내 시험만 치른다. 아래 표를 살펴보면, 이 말이 과장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 이 계획은 상당 부분 '현실'로 인식되고 있다.
고3 학생이 한 해 치는 대외고사 횟수는 12번
위 표에서 '교육청'이라고 분류된 시험은 16개 시도교육청연합학력평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 (모의)수능을 합친 것이다. 고3 학생들은 1년에 총 7회(수능 포함), 고1, 2 학생들은 총 4회 본다. 이 시험들은 무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설 모의고사가 또 기다리고 있다. 고3 학생은 보통 1년에 5회 정도 사설 모의고사를 치르고, 1, 2학년은 2회 정도 시험을 친다. 앞서 살핀 통계와 합치면 고3은 총 12번, 고1, 2는 6번의 대외 모의고사를 치르는 셈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치일 뿐, 학교에 따라서는 총 15회 이상 시험을 보기도 한다(위 표를 보면 고3의 경우 총 23회의 사설 시험이 있는데, 그 중 일부를 선택해 보는 방식이다). 사설 모의고사는 교육청연합 학력평가와는 달리, '수익자 부담'이다. 한 번 시험 보는 데 1만 원을 내야 한다.
고등학교에서 일제고사 선택권은 '제로'
문제는 아이들이 원치 않는데도 학교에서 결정하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시험을 보기 싫다고 별도의 공간에서 자습을 할 선택권을 주는 학교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학교에 안 오면 무조건 '무단 결석'이다.
학교마다 학교 교육계획으로 엄격히 정한 교육과정이 있음에도 일선학교에서는 수업 대신 사설 모의고사를 강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만 통과하면 그걸로 끝이다. 공교육이 사교육 앞에서 무참히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시험은 이게 끝이 아니다. 학기별로 두 번씩 중간·기말고사를 치른다(1년에 총 4회). 게다가 수행평가라는 것도 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기 위해 도입한 수행평가 제도의 취지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지필고사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즉 일제고사 방식으로 한 날 한 시에 전 학년 학생이 수행평가를 치르는 학교가 꽤 많다.
'시험' 말고 '수업'을 듣고 싶은 아이들
결국 아이들은 적게는 한 달에 한 번, 많게는 한 달에 두세 번씩 시험을 강요당하고 있다. 1년 내내 시험만 치르다 끝난다. 본디 '평가'는 아이들이 수업 받은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점검하고 다음 수업에 환류(feedback)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본말전도(本末顚倒) 그 자체이다. 시험을 보기 위해 수업을 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작 중요한 전인교육이나 창의성 교육은 사치가 되고 만다. 창의성은 독일, 핀란드, 네덜란드 등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끝도 없이 치르는 시험이 아이들 학력을 높여준다는 그 어떠한 경험 증거도 없다. 그저 "시험을 많이 봐야 애들이 공부를 한다"는 맹목적 믿음, 그것 하나로 대한민국 교육의 패러다임은 정리가 된 듯하다.
교육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서울, 경기, 전북 등 진보교육감이 있는 시도교육청에서는 일제고사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학교 현실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변화를 모색하는 소중한 움직임들이 씨앗이 돼 언젠가는 새 생명을 잉태할 것이다.
제발, 이제는 '경쟁 만능' '시험 만능'이라는 낡은 사고를 깨뜨리자.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얘기하는 '국가 경쟁력'에도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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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놀고, 즐겁게 공부하며, 대학에 안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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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만 보는 아이들에게 창의성? 먼 나라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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