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인클럽
우리네 삶은 한권의 책으로 묶기에 부족함이 없다. 파란 기와집에 사는 지도자이든, 멀리 외진 곳의 촌로이든 "나는 풀밭에 잡초처럼 대단한 존재는 아니지만 동시에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다"라는 법륜스님의 말처럼, 누구라도 그 인생은 책 한권 감이다. 그런 인물들이 책으로 모인 곳이 사람도서관(living book)이다. 이 도서관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평전'들이 진열된다. 그 첫 권은 문제적 인간, 문성근!
작은 문고판 크기의 120쪽 분량. 스마트폰이 대세인 시대, 감히 종이의 감각을 복원하려 한다. 다만 잡지보단 깊고 단행본에선 거품을 뺀, 그래서 출퇴근길 한 시간이면 술술술~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볼 수 있다.
책 내용 역시 좀 색다른 시도였다. 10만인클럽 회원 30여 명이 모여 문성근을 '함께' 읽었다(10만인클럽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10만인들의 연대, 아울러 권력에 굴하지 않는 뉴스를 보기 위해 <오마이뉴스>의 경제적 자립을 후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사랑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들은 먼저 문성근씨에게 주제 강연을 듣고, 일문일답으로 집단 인터뷰를 이어갔다. 부족한 내용은 편집자의 추가 취재를 통해 보충되었다.
'남들은 직업 한 번 바꾸기도 어려운데 다섯 번이나 인생 전환을 했고 매번 자신을 던졌다. 왜, 어떻게 가능했는지… 문성근, 그가 알고 싶다.'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남들은 생을 한 번 사는데 저는 여러 번 바뀌어 얄밉다는 거지요(웃음). 배우는 정말 다양한 인생을 연기하는데 저는 실생활에서도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회사 다니다가 배우가 되었고 노무현 지지활동을 했고 백만민란 운동하다가 국회의원 출마하고 이렇게 다섯 번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일흔이 넘으면 그때는 다시 배우로 복귀해 여섯 번째 삶을 살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이 책은 '인간 문성근'의 내면 고백이다문성근의 집안은 근현대사의 압축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동학군으로 활동했고,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였으며, 아버지는 통일과 민주화 운동가다. 집안의 그런 공기를 마시고 그런 젖을 먹고 자란 문성근에게 역사와 정치는 신념이기에 앞서 원체험이다. 해서 배우를 할 때든 운동을 할 때든 '나는 역사의 어느 시점에 서 있는가'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문성근의 불편한 DNA.
동시에 꽤 오래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감당하지 못해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저는 늘 콤플렉스에 시달렸어요.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이 깡그리 다 박사고 교수고 그랬으니까. 아버지 교수, 삼촌 교수, 작은고모 박사, 뭐 다 그런 식이었죠. 제가 보기엔 형, 누나도 머리가 굉장히 좋았고 또 막내인 저하고는 터울이 한참 져서 어디 가서 말 붙일 데가 없는 거죠. 다들 정신세계가 저보다 엄청 높은 분들이니까. 굉장히 주눅 들어 살았고 배우 하면서도 그랬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했어요. 그때가 마흔 즈음이었죠."#. 이 책은 '남자 문성근'의 사랑 이야기다<닥치고 정치>에서 김어준은 문성근이 좋은 정치인의 자질을 갖춰다며 도덕적 자격, 역사적 자격, 현실적 역량 모두 된다고 평가하면서, 하나 더 꼽은 게 '여자를 좋아한다'는 점. 이에 대한 문성근의 대답은?
"사랑은 변하죠, 식죠. 그건 당연하잖아요. 생물학적으로도 사랑이 유지되는 게 3, 4년이라는 연구결과가 있으니까. 그런데 저는 의무를 다하지 못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음… 저는 주례를 안 서요. 주례 해달라고 하면 나 결혼제도 반대한다고 말해. 원시 청동기 시대쯤에 결혼제도가 필요했는지 모르겠어요. 재산이든 종족번식 때문이든…. 그런데 이창동이가 딱 한 번 주례를 섰는데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두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오늘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지켜야 합니다.' 에이 저 새끼, 말도 잘한다. 그 얘기를 내가 좀 일찍 들었더라면 지키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거죠."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일본 태생, 그리고 이혼,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두 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