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길가에 서 있는 '동막리 골프장 반대 대책위' 사무실.
성낙선
사업자 편에 서서 '성의껏' 일해주는 공무원들강원도 홍천군 동막리 주민, 길민수씨(60)는 그동안 공무원들이 저질러 놓은 일들을 설명하다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세안레져산업㈜가 시행하고 있는 세안컨트리클럽 골프장 조성 사업과 관련해 홍천군청의 한 공무원이 작성한 서류를 보여주면서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일을 이렇게 할 수가 있느냐"며 어이없어 했다.
길씨에 따르면, 공무원 장아무개씨는 골프장 사업이 법적인 조건을 제대로 갖췄는지를 점검하는 문서를 만들면서 군청에서 지정한 전문가가 작성한 조사보고서가 골프장 사업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엿보이자 그 보고서 일부를 사업자측에서 작성한 보고서로 바꿔치기했다.
골프장 사업자가 사업과 관련한 인허가를 받아내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서류를 그대로 군청에서 검증한 자료인 것처럼 사용했다.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업에 허가를 내주려다 공무원 스스로 문서를 위조하는 무리수를 쓰고 말았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실을 안 동막리 주민들은 군청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그 문제를 따져 묻기 위해 군수실을 찾아간 마을 주민 5명은 그곳에서 밤새 군수를 기다리다가 다음날 고소를 당해 벌금형을 받았다. 죄목은 '퇴거 불응'이었다. 법을 위반한 공무원을 단죄하러 갔다가 오히려 주민들이 벌을 받았다. 군청은 공무원 장아무개씨를 보직해임하고 대기발령 내는 데 그쳤다.
공무원들이 서류를 가지고 '장난을 친' 흔적은 또 있다. 공무원들은 사업자가 제출한 서류가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그리고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지를 면밀하게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다면, 사업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공무를 처리했다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검증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서류들가장 문제가 됐던 서류는 '입목축적조사서'다. 사업자측이 선정한 전문가 이아무개는 혼자서 173만8632㎡에 퍼져 있는 골프장 예정지를 돌아다니며 145개에 달하는 표준지를 조사했는데 그 기간이 2010년 2월 27일부터 3월 8일까지로, 단 1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주민들은 한겨울에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자연스럽게 조사가 부실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사업대상 부지 내의 평균입목축적이 시·군·구 평균입목축적의 150% 이상인 곳이 사업대상부지의 20%(보전산지)를 초과할 경우, 산지전용허가 대상에서 제외돼 해당 부지에서는 골프장을 지을 수 없다. 그런데 사업자가 제출한 서류에는 평균입목축적이 150% 미만으로 나왔음은 물론이다.
주민들은 줄기차게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군청과의 협의하에 주민들 자체적으로 현장 조사를 실시할 수 있었다. 그 조사 결과는 사업자측이 조사한 내용과 많이 달랐다. 하지만 주민들의 현장 조사는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도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엔 강원도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도지사 직속 자문기구인 민관협의회 주도로 현장을 재조사했다. 그 과정에서도 사업자가 제출한 입목축적조사서가 부실하게 작성이 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 조사 결과가 공식적으로 발표되고 나면, 그때는 담당 공무원 김아무개가 그 서류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았고 그 서류를 토대로 현장 조사를 정확하게 실시하지도 않았다는 사실 또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민관협의회가 입목축적을 조사하는 데는, 6명의 전문가가 동원돼 12일이나 걸렸다. 게다가 민관협의회의 전문가들은 그동안 사업자가 진행한 공사로 표준지 상당수가 훼손돼 표준지 145개 중 128개를 조사하는 데 그쳤다.
그 외 공무원이 서류를 가지고 주민들을 우롱한 사례는 일일이 다 자세하게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 그 중에는 공무원 스스로 사문서를 공문서인 것처럼 위장해 작성한 예도 있으며, 사업자가 인허가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 서류를 제출했는데도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도장을 찍어준 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