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소득-교육...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도돌이표'

대구 중학생 비교 설문조사... 불평등 구조 '뚜렷'

등록 2012.03.20 13:48수정 2012.03.2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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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장래희망은?"... 대구 초등학교 설문조사 '경악'>에 이은 두 번째 학생 설문조사 결과 기사이다. 대구의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선행학습 실태를 2011년 여름에 설문조사했다. A중학교는 부자동네에, B중학교는 가난한 동네에 있다. 두 학교 학생들(A학교 응답자 411명, B학교 응답자 155명) 모두 선행학습 경험이 많고, 선행학습을 신뢰한다. 그럼에도 빈부격차만큼이나 사교육비와 선행정도에서 차이가 난다. 설문조사는 2012년 1월 대구MBC에서 방영된 <교육을 말한다> 다큐멘터리 팀과 공동으로 진행하였다. <기자 말>

학원에서 미리 배워 다 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달리 가르칠 게 없고 아이들 사이에 격차가 너무 커서 곤혹스러운 교사. 그래서 어느 학교는 사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 신입생으로 선발하고,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설익은 선행학습보다 맛있는 제철학습"이라는 공익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선행학습의 효과가 없다는 학술논문들도 나오고 있다.

교육계가 선행학습을 여러 근거로 반대해도, 선행학습을 위한 사교육은 좀체 줄어들 기세가 아니다. 선행학습은 '남들보다 더 빨리'라는 속도전이 교육계와 시험계를 지배하기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른바 '명문'학교들이 '남들보다 더 빨리' 학습한 결과를 기준으로 선발하고, 또 상대평가체제가 끊임없이 '남들보다 더 빨리' '남들보다 더 많이'라는 속도전과 물량전을 요구한다. 다 같이 멈추지 않는 이상, 다 같이 남들보다 더 빨리,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개인으로서는 빠져 나오기 힘든 잔혹한 전쟁이다.

부자학교와 가난한 학교... '선행학습 필요' 생각은 같아

학생들 절대 다수가 선행학습이 필요하다고 대답하였다(A학교 78.9%, B학교 87.7%). 그리고 선행학습이 필요한 과목으로는 영어와 수학을 꼽았다(A학교 영어 90.3%, 수학 91.2%, B학교 영어 93.2%, 수학 77.4%) 최근 1년간 선행학습을 한  적 있다는 학생이 A학교에는 94.2%, B학교에는 72.3%였다.

두 학교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B학교 학생들이 선행학습의 필요성을 더 많이 느끼고, A학교 학생들은 영어 선행학습이 필요성을 더 많이 느낀다는 것(A학교 90.3%, B학교 77.4%)이다. 그리고 실제로 최근 1년간 선행학습을 한 적 있는 학생이 A학교에 훨씬 많았다(A학교 94.2%, B학교 72.3%).


 대구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선행학습'에 대한 물은 설문조사 결과
대구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선행학습'에 대한 물은 설문조사 결과이경숙

'부모님의 권유'로 선행학습... 그러나 엇갈린 효과

선행학습을 하는 데 '부모님의 권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고(A학교 51.6%, B학교 41.5%), 다음으로 '본인의 의지'(A학교 31.1%, B학교 36.8%)가 중요했다. 특히 A학교 학생에게는 부모님의 권유가 10% 정도 더 높게 작용하였다.


선행학습을 통해 학생들은 '성적향상'(A학교 43.6%, B학교 49.7%)과 '자신감형성'(A학교 23.6%, B학교 16.8%)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생 60% 이상이 선행학습을 해서 성적이 향상된 적 있다고 대답했다(A학교 64.5%, B학교 61.9%).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도 유의미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선행학습 후에도 성적이 향상되지 않았다는 학생들이 30%를 넘었다. 그리고 선행학습 후 '학교수업에 대한 흥미가 줄었다'는 학생들이 A학교에서는 과반수(50.6%)가 넘었고, B학교도 40.6%에 이르렀다.

또한 '수업을 잘 듣지 않고 잠을 자거나 다른 공부를 하였다'는 학생도 A학교에서는 과반수가 넘었으며(51.8%), B학교에도 27.1%가 있었다. A학교 학생들이 선행학습을 더 많이 하면서 동시에 선행학습으로 인한 폐해도 더 많이 겪고 있다고 보인다.

 대구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선행학습'에 대한 물은 설문조사 결과
대구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선행학습'에 대한 물은 설문조사 결과이경숙

사교육비 액수·학습 선행정도에 뚜렷한 '격차'

두 학교 학생의 가정배경 격차는 크다. 또한 사교육비와 선행학습의 정도도 차이가 크다. 먼저 학생 아버지의 학력격차가 매우 컸다(대졸 이상자 A학교 80.0%, B학교 18.1%). 아버지 직업이 고위직이나 전문직인 학생비율도 30% 넘게 차이 났다(A학교 34.4%, B학교 2.6%).

월평균 가계소득 역시 차이가 커서 A학교는 월 500만 원 이상인 학생이 많고(A학교 46.5%, B학교 4.5%), B학교에는 300만 원 미만인 학생이 많다(A학교 12.5%, B학교 61.3%).

 대구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선행학습'에 대한 물은 설문조사 결과
대구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선행학습'에 대한 물은 설문조사 결과이경숙

두 학교 학생 모두 대다수 학생이 일반 인문계학교를 선호한다. 그러나 A학교 학생들은 과학고, 외국어고, 자사고 희망비율이 14.6%인데 반해, B학교는 2%에 불과하다. 또 전문계고 희망자가 A학교는 4.9%인데 반해, B학교는 33.5%로 상당히 높다.

월사교육비로 A학교 학생들은 절대다수(84.6%)가 30만 원 이상 사용하고, B학교 절대다수(79.9%)는 30만 원 미만을 사용한다. 학습의 선행 정도를 학교진도와 비교해 보면, 3개월 이하로 빠르게 진행한다는 학생이 B학교에 많고, A학교는 1년 이상 빠르게 진행하는 학생들도 21.4%가 있다.

 대구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선행학습'에 대한 물은 설문조사 결과
대구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선행학습'에 대한 물은 설문조사 결과이경숙

부자학교 안에서도 빈부격차와 교육격차가...

부자동네에 있는 A학교 학생들이 대체로 잘살지만, 그래도 3학년 학생들 사이에도 빈부격차가 있다. 월평균가계소득을 기준으로 양극단에 있는 아이들의 교육격차는 크다. 411명 중 월평균가계소득이 1000만 원 이상인 학생은 65명('집단1'), 300만 원 이하인 학생은 51명('집단2')이었다.

먼저 '집단1'의 아이들 중 월평균 사교육비로 70만 원 이상을 사용한다는 이가 과반수였다. '집단2'의 아이들 과반수는 월 30만 원 미만을 사용하였다. 학교진도보다 1년 이상 빨리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집단1'의 아이들이 더 많았다. '집단1'의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3달 이상 빠르게 선행학습을 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학급 내 성적(5등급으로 구분)과 비교했을 때, 상(1등급)에 속하는 비율이 '집단1'의 아이들이 훨씬 높았다('집단1' 32.2%, '집단2' 2%). 반면 하(5등급)에 속하는 비율은 '집단2'의 아이들이 더 높았다('집단1' 4.6%, '집단2' 21.6%).

 대구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선행학습'에 대한 물은 설문조사 결과
대구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선행학습'에 대한 물은 설문조사 결과이경숙

학벌-소득-교육, 긴밀히 이어지는 불평등 구조

선행학습을 더 많이 한다고, 또 더 빨리 한다고 반드시 학업성취도가 좋다고 할 수 없다. 그 사례들과 그 이론적 논거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선행학습의 늪에서 모두가 헤어 나오지 못해 교실교육이 죽어가고, 아이들의 삶이 황폐해지고, 뒷바라지 하는 부모의 삶도 버겁다.

아이들도 선행학습을 통해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서열화 된 대학체제, 그리고 학벌이 직업과 지위를 결정하는 학벌사회체제 속에서 다른 선택의 길이 힘들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래서 부잣집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더 빨리, 더 많이 하고, 그 아이들의 성적이 더 좋다는 걸 경험적으로 안다. 경제상태, 선행학습, 성적이 인과관계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유관하다는 걸 한국사회는 경험사실로 받아들인다.

문제는 학벌사회구조·경제불평등구조와 교육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다양한 수업만큼이나 그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환경을 개혁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 심각한 경제불평등구조 속에서 오늘만 행복하고, 내일의 불평등은 아이들에게 떠넘긴다면, 그 또한 불행일 것이다.
#선행학습 #사교육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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