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겨울 공평하게 아내의 사랑을 나누었던 시절이다.
김지영
'사랑' 총량은 변함없고 다만 한쪽으로 쏠릴 뿐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이 날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주 조금씩 아내가 가리키는 애정의 화살표가 나를 비껴나가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된 아들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그리고 처연하게 깨달았다.
그것은 언제까지 애기일 줄 알았던 귀여운 아들이 아내보다 몸집이 더 커지고 키도 커지면서 이제는 듬직한 아들로 변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내에게 아들은 분명 뭐라 꼬집어 표현할 수 없지만 소중한 것 이상의 그 무엇임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런 순간들을 목격하는 일은 이제 흔한 일상이 되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인간의 사랑 에너지에도 에너지보존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어서 나눠줄 에너지의 총량은 변함이 없고 다만 한쪽으로의 쏠림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 쪽에 기울어 있던 아내의 사랑에너지가 무게중심을 바꾸어 아들에게로 기울어 버린 것이다. 다만 모든 사랑이 그렇듯 색깔을 조금 달리한 채로 말이다.
예를 들면, 이른 아침 아들을 깨우러 간 아내는 잠깐의 시간을 빌려 잠들어 있는 아들 옆에 나란히 눕고는 뿌듯한 미소를 짓는 장면을 정기적으로 연출한다(반면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옆에 누워 뿌듯해 한 적이 별로 없다. 그나마 최근에는 한 번도 없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 온 아들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바로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맛있는 반찬을 숨이 넘어 가도록 집어 주기도 한다(나는 거의 밥상을 직접 차려먹는다).
게다가 야식을 차려 주고는 둘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도란도란 속삭이며 대화를 나누는 광경을 난 거의 매일 목격하고 만다(아내는 언제부터인지 나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법이 없다. 다만 일방적으로 혼내고 지시할 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요즘 아내와 아들의 다정한 자리에 내가 낄 곳은 없다. 낄 수 없다는 게 아니라 끼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물리적이 아닌 심리적 기제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아내와 나 사이에 아들이 끼어 있었다면 이제는 내가 아내와 아들 사이에 낄 수조차 없거나 아니면 간혹 끼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도 이제 아내에게 남자로서의 유통기한이 점점 끝나가고 있구나, 다만 남편으로서의 유통기한만이 남아있을 뿐이로구나'라는 슬픈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아들에게 내가 모종의 심한 질투심을 느끼는 건 절대 아니다. 어쨌든 녀석은 내 아들이고 나는 언제까지 지아비가 아닌가 말이다. 나도 아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라주는 게 고맙고 대견하다. 그리고 또한 아내처럼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