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지시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진경락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28일 "진 전 과장은 반드시 조사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검찰도 진 전 과장이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지시의 '윗선'을 규명해줄 핵심인물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강제구인까지 검토할 기세다.
하지만 진 전 과장은 언론접촉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지난 27일 검찰의 소환조사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는 "이영호 전 비서관이 등이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할 말이 없고, 상고심 재판에 집중하고 싶다"는 요지의 불출석 사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자수성가형 공무원이던 그의 운명,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바뀌다
그런 가운데 <오마이뉴스>는 지난 4일 진 전 과장을 처음으로 인터뷰한 데 이어 지난 6일과 9일 두 차례 직접 만났고, 수차례 핸드폰으로 통화했다. 그의 사당동 자택과 친인척집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하기 하루 전날(27일)에도 통화가 이루어졌다.
지난 6일 여의도역 근처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진 전 과장은 꽤 순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얼핏 쫓기는 듯 불안해 보이기도 했지만, 검찰과 법원이 그에게 내린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의 몸통'이라는 '결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진 전 과장은 경북 청송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숙부의 배려로 경주에서 고등학교(경주고)를 다닌 뒤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도 합격했다. 이후 줄곧 고용노동부에서 근무해오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출범 이후 최종석 전 행정관과 함께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에 들어갔다. 그는 최 전 행정관과 행정고시 동기다.
그런데 2008년 7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부활하면서 그곳의 기획총괄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영호 당시 고용노사비서관이 그를 내려보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하지만 이후 '자수성가형 공무원'이었던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진 전 과장은 지난 2010년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사건이 터졌을 때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기소돼 1심(징역 1년)과 2심(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1심과 2심에서 자신의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현재 대법원 판결만 남겨두고 있다.
게다가 장진수 전 주무관이 양심고백을 통해 청와대를 '증거인멸 지시'의 웟선으로 지목한 이후 진 전 과장을 둘러싼 추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가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과 함께 장 전 주무관에게 공직윤리지원관실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파기하라고 지시했고, 장 전 주무관의 양심고백을 막기 위해 2000만 원을 건네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2010년 검찰의 민간인 불법사찰 1차 수사 때 증거물인 노트북을 빼돌렸고, 2010년 7월 조전혁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폭로한 '김종익 문건'을 작성해 조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진 상황이다. 지난 2011년 9월 임태희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으로부터 금일봉을 받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진 전 과장도 몸통의 일부 아니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난 4일 첫 인터뷰 때부터 "장 전 주무관의 주장은 소설"이라고 반박하면서 자신에게 드리워진 의혹들을 전면 부인해왔다.
"법정에서 기습적으로 결백함을 밝혀 저쪽 거짓말 탄로 나게 해야"
진 전 과장은 그동안 <오마이뉴스>와 수차례 접촉하면서 일관되게 "억울하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나는 증거인멸 지시와 상관없다"며 "이미 이전 수사(2010년 검찰수사)에서 다 말했기 때문에 다시 검찰에 간다고 해도 '그 전에 다 진술했다'고 말하는 것 외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내가 다 (증거인멸을) 지시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억울한 부분이 많다. (언론보도 내용들과 관련) 내가 모르는 얘기들이 나온다. 자기들끼리 그런 얘기를 했을지 모르지만..."
다만 진 전 과장은 '장진수-최종석 대화록' 공개로 인해 최종적 전 행정관이 '증거인멸 지시의 윗선'으로 드러나자 "내가 불리할 게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나는 일관되게 정직하게 얘기해왔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과연 안 했을까' 하면서 바라봤다. 하지만 (대화록 공개로 인해) '아닐 수도 있구나' 하는 시선이 생긴 것 같다. 내가 몸통이고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일련의 그림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이 형성된 것만 해도 나한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진 전 과장은 '장진수-최종석 대화록'에서 장 전 주무관의 후임자인 김아무개씨가 "진 전 과장이 혼자 뒤집어쓰면 안되냐?"고 제안한 것에는 "서운하기 짝이 없다"고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김아무개씨)가 이 사건에 관여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난 1심과 2심에서도 증거인멸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결론은) 내가 다 지시한 것으로 됐다. 나는 당시 사무실 출입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어 진 전 과장은 "내가 억울함을 밝히더라도 법정에서 밝히겠다"며 "검찰수사 단계에서 밝히면 다 흘러나가 검찰이 다 짜맞춘다"고 말했다. "나는 겪어봤다"고 강조하던 그는 이런 의미심장한 말도 내던졌다.
"내 자신의 결백함을 법정에서 기습적으로 밝혀서 저쪽의 거짓말이 탄로 나게 해야 한다."
진 전 과장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심을 해주면 뭔가를 얘기하기 좋은데 그대로 유죄를 확정하면 진실을 말할 기회가 없어지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게 정치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검찰도 어쩔 수 없이 재수사에 나선 것 같다"며 "(내 진실은) 법원에서 밝혀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거듭 '법정 고백'을 강조했다.
"2000만 원 건넸다고?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일 하나?"
하지만 진 전 과장은 장 전 주무관의 계속된 폭로에 "자꾸 화풀이식으로 의혹제기를 하는 것 같다"며 "(그 의혹 제기에 대응하다 보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 것 같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지난 2011년 5월 자신이 장 전 주무관에게 2000만 원을 건네려 했다는 주장에는 "장 전 주무관의 얘기는 내가 (돈으로) 본인을 회유했다는 건데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일을 하겠나?"라며 "벙어리 냉가슴이다"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특수활동비 일부(280만 원)가 매달 청와대에 상납됐다는 주장에는 이런 반박을 내놓았다.
"특수활동비는 보안을 요구하는 돈이어서 집행자 외에는 (그 사용처를) 알지 못한다. (장 전 주무관이) 누구한테 돈을 줬다는 것을 본 것도 아닐 텐데…. 공무원은 비밀유지 의무가 있다."
진 전 과장은 "(장 전 주무관의 폭로가) 불필요한 오해로 번지고 있다"며 "그것은 진실을 확인하는 데 아무것도 아니고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폭로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임태희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지난 2011년 9월 자신과 이인규 전 지원관 가족에게 금일봉을 전달했다는 주장에는 "임 전 실장과는 노동부에서 같이 근무한 적도 없고 돈을 받은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임 전 실장이 아내를 접촉했는지 모르지만 집사람은 임 전 실장이 누군지도 모른다. 집사람이 '사업하는 친구들이 도와준다고 한다'고 했지만 나는 '돈 받지 마라'고 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친인척 외에 (다른 어떤 곳으로부터) 돈 받은 적이 없다."
진 전 과장은 "나중에 감옥에서 나와서 집 사람에게 물어보니 '누구한테도 도움을 안 받았다'고 하더라"면서 "그 부분에는 아내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감옥에 있을 때 하루에 한두 번 면회를 오는데, 내가 자유롭게 말할 상황이 아니다. 누가 도와준다고 하는 얘기가 있었지만 (그 사람의) 실명을 거론할 수는 없다. 그런 얘기가 있어 '그런 거 받으면 오해를 산다'며 화를 낸 적이 있다. 그런 도움을 받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당부했다."
진 전 과장은 청와대 등에서 변호사 비용을 대줬을 것이라는 관측과 관련해 "더 자세히 살펴봐야겠지만 변호사 비용으로 받은 돈은 없다"고 일축했다.
"기획총괄과에서 청와대 하명사건 처리했다는 것은 오해"
최근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한 직원이 지난 2010년 검찰의 1차 수사 때 "청와대로부터 하명사건을 받았다"며 "그것은 기획총괄과가 직접 챙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청와대 하명사건을 처리한 이가 진 전 과장이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진 전 과장은 "기획총괄과는 인사, 예산집행, 서무, 차량지원 등 행정지원을 하는 곳이지 (점검팀처럼) 사실관계를 확인하거나 대외활동을 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이런 일을 하는 곳이 어떻게 청와대 하명사건을 전담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직원이 크게 오해를 한 것 아닌가 싶다. 기획총괄과를 안다면 그런 얘기를 할 수 없다. 다른 팀들은 밖에서 근무하지만 기획총괄과 직원들은 늘상 내근한다. 앉아서 일하는데 무슨 청와대 하명사건을 처리하나. 그것은 그 직원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거다."
이어 진 전 과장은 지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1심과 2심 재판 과정에서 '양심선언'을 시도했다는 주장에도 "많이 왜곡된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사석이든 어디서든 억울함을 토로했을 수는 있다. 그런 것이 잘못 전달된 것이다. 사람이 말을 하다 보면 진위를 모두 얘기할 수 없다. 여러 가지로 부풀려진다. 다만 장진수를 증인석에 세우려고 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장진수도 억울할 텐데 내가 부하직원을 증인석에 세우는 것이 볼썽 사나워 하지 않았다."
진 전 과장은 검찰 재수사와 관련해 "(그것에 대비해) 누구를 만나서 상의한 적은 없다"며 "내가 나선다고 명예회복이 되는 게 아니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계속 기자들이 집에 찾아와 집에 갇혀 있었다. 가족들은 그런 사실조차 두려워한다. 가족들을 안심시키는 데 경황이 없어서 대응 부분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최선을 다하면 나중에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성경에 '뜻은 사람이 세우지만 길은 하나님이 낸다'는 말이 있다."
진 전 과장은 "나는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다"라며 "검찰이 이 사건과 관련해 내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자기들이 수사를 잘못했다고 인정하겠나? 절대 안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론 눈치를 봐서 무리하게 기소했으면 했지 자진해서 (검찰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법원에서 풀어야 한다. 법원에서만 풀어줄 수 있다."
이어 진 전 과장은 기자들의 취재경쟁에 "노이로제에 걸렸다"고 토로했다. 그는 "기자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집에도 못 들어가고 힘들다"며 "사람을 피하게 되고 사람이 무섭다"고 했다.
"왜 내가 민간인 사찰 주범으로 둔갑했나?"
특히 진 전 과장은 자신이 '영포라인'으로 분류되는 것에 "어디 가서 포항 사람이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고 억울해했다. 그는 "유일한 피붙인 숙부가 경주에 있어서 고등학교를 거기 다녔다"며 "그런데 내가 어느날 영포라인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이영호 비서관이 실세고, 그 지역(영포라인)에 누구누구가 있다고 규정해 버린다. 비약이 심하다. 친분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의 핵심세력으로) 영포라인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은 소설이다."
진 전 과장은 "다 인정한다고 해도 내가 왜 '민간인 사찰 진경락'인가?"라며 "민간인을 사찰한 사람은 김충곤(검검1팀장), 원충연(조사관) 등이고 나는 그 이후에 증거인멸을 했다는 것인데 내가 민간인 사찰 주범으로 둔갑했다"고 지적했다.
진 전 과장은 "이전 정부 때부터 공직자 기강 차원에서 지원관실과 같은 기능을 하는 기구가 있었는데 왜 이 정부에서만 유독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내가 생각하기에 아무것도 아닌데 끼워 맞춰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진 전 과장은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어떤 정권이든 내가 모시는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불철주야 일했다"며 이렇게 에둘러 자신의 심경을 드러냈다.
"요즘 '요셉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억울하지만 침묵을 지키다 결국 이집트 총리가 됐다는 이야기다. 참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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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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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민간인 사찰 주범으로 둔갑... 사람들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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