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폭력의 배후엔 기업의 노동자 통제가...

돈으로 폭력을 사는 것이 인정되는 사회, 용역폭력을 부른다

등록 2012.04.07 11:35수정 2012.04.0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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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용산참사에 이어 평택 쌍용자동차에서 벌어진 경찰과 용역경비에 의한 무자비한 폭력...
급기야 유성기업에서는 용역경비가 대포차로 조합원들에게 돌진해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살인미수에 가까운 이런 행동들이 용인되는 나라…. 기업의 이윤을 위한 공권력과 용역경비의 폭력, 그것에 대한 사회적 성찰의 부재가 이렇게 폭력을 키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발레오만도, 한진중공업, KEC, 경상병원, 현대차 아산공장, 유성기업, 수원여대, 국민체육진흥공단, 재능교육, 3M…. 근래 들어 용역경비가 투입된 노동현장이다. 용역경비의 투입은 항상 폭력으로 이어진다. 다행히 언론에서 이런 용역폭력의 심각성을 다루기 시작했고, 국회에서도 용역폭력을 제어하기 위해 경비업법 개정 움직임이 있다. 인권단체 역시 4.9통일평화재단의 후원으로 용역폭력근절을 위한 현장조사와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 현장조사의 에피소드를 통해 용역폭력의 심각성을 살펴본다.

농성장입구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장작들이 서글프다

경주에 있는 발레오만도 농성장에 갔다.

발레오만도는 2010년 2월 사측의 경비업무 외주화에 맞서 노조가 태업을 하자,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400여 명의 용역경비를 곧바로 투입했다. 사측은 100일 넘게 지속한 직장폐쇄를 법원 판결에 의해 풀면서 친기업 노조 설립을 위해 불법적인 임시총회를 소집하는 등 치밀하게 노조탄압을 자행했다. 이러한 노조탄압은 복귀이후 383명 징계, 29명 해고라는 무더기 징계와 대량해고로 이어졌고, 파업과 복귀과정에서 용역경비의 폭력은 계속된다.

발레오만도는 복귀과정에서의 폭력상황이 극심한데, 파업당시 복귀한 노동자에게 엎드려뻗쳐, 한강철교, 쪼그려뛰기 등의 얼차려를 주기도 했고, 보름간 회사 안에 감금시킨 채로 노동을 강요하기도 했다. 파업이후에는 등급을 나눠 생산라인에 투입시키지 않고 청소, 풀뽑기 등의 징계성 업무를 시키는가하면, 해고된 조합원을 만났다는 이유로 성과급에 차등을 주고 생산라인에서 배제시킨 사례로 유명하다.


공장 맞은편에 있는 근린공원에 천막을 쳐 놓은 발레오만도 농성장은, 우리가 찾아간 11월 초에 이미 월동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천막 앞에는 장작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고, 부엌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를 한가득 널어놓았다. 투쟁하는 농성장 같지 않은 고요함…. 그 고요함 속에는 겨울초입에서 긴긴 겨울투쟁을 준비하는 착잡한 마음들이 한올한올 배어있었다. 사측의 갑작스런 직장폐쇄와 용역을 투입한 폭력,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그 많은 장작을 하나하나 준비하면서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불가항력에 어쩔 줄 모르는 여성노동자


항상 나쁜 건 힘없는 사람들에게 더 심하게 반영된다.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인 KEC현장은 새벽 1시 여성기숙사에 용역 650여 명이 들이닥쳐 조합원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다쳤고, 여성노동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KEC역시 사측이 노조를 파괴하기위해 미리 준비한 문건들이 발견되었고, 용역투입과 함께 시작된 직장폐쇄는 1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법원의 조정권고로 철회하게 된다.

복귀 후에도 발레오만도와 같이 대량징계 148명 중 40명 해고, 그리고 반인권적인 정신교육을 실시한다. 정신교육은 용역경비들이 조합원 일거수일투족까지 감시하면서 모멸감을 주었는데, 여성노동자들의 화장실까지 따라다니며 가는 횟수와 소요시간 등까지 세세하게 메모를 하고 있었다.

또한 경상병원의 경우도 대부분 여성노동자인데, 용역경비의 수첩에서 경상병원이 의뢰한 조합원 처리방안으로 교통사고, 폭행, 강간, 성매매, 방화라고 적힌 메모가 발견돼 사회적으로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이후 같은 용역업체가 투입된 유성기업에서 음주 후 차량돌진으로 교통사고 낸 것을 보면 이 메모내용이 실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용역 폭력은 힘없는 여성들에게 더 극심한 형태로 자행되고 있으며, 상습적인 감시와 폭력으로 경남제약 여성노동자 9명은 우울증 판정을 받은 사례도 있다.

용역이 휩쓸고 간 자리에 80여명이 골절상

아산에 있는 현대자동차는 폭력이 극심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웰비스라는 대규모 경비업체에서 300여명이 투입되었는데, 파업농성장을 침탈하면서 하루에 80여명이 뼈가 부러지는 골절상을 입었다. 이후 용역경비와 부딪히기만 하면 몇 명씩 골절상을 입는 현장으로 유명하지만, 이런 용역경비의 폭력에도 구속된 용역은 단 한 명도 없다.

어떻게 이런 극심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폭력상황으로 80여명이 골절상을 당한 사실이 어떻게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까? 만약 노동현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런 폭력이 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까?

현장 안에서 조합간부가 납치를 당하고, 조합원이 쇠파이프로 맞는 동안 조합원의 신고로 출동한 112경찰은 정문경비에게 가로막혀 1시간가량 현장에 들어오지 못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기업 현대자동차. 용역경비를 동원해 조합원 80여명에게 골절상을 입히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이 월차를 쓰겠다는 말에 식칼로 아킬레스건을 그었던 그 옛날 명성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무더기 징계와 대량해고, 그래도 희망이

2011년 용역폭력이 언론에 오르내렸던 건 유성기업 때문이었다. 대포차로 조합원들에게 돌진하는 등 용역 폭력도 극심했지만, 노동조합도 이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투쟁을 만들어왔다. 복귀 후 사측의 태도는 여느 기업 못지않았다. 549명 전 조합원 징계회부, 어용 5명을 제외한 전 조합원 징계에 해고 27명, 뿐만 아니라 반인권적 교육은 물론이거니와 일상적인 감시도 강화되었다. 한편 사측은 어용노조를 만들고, 손해배상에서 빼주는 조건으로 어용노조 가입을 권유하였다.

조합원 90명 가량이 해고 및 출근정지 1~3개월의 징계로 현장분위기가 매우 위축되었을 텐데, 찾아간 노조사무실은 조합원들로 시끌벅적했다. 해고 및 정직을 당한 조합원들이 조합사무실에 매일같이 모여서 활동을 만들고, 서로 힘을 북돋워 가는 모습들…. 그런 모습들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그 희망을 보았다. '살아있다'는 분주한 활동들이 감시와 통제로 위축된 현장에 새로운 힘을 만들고 있었다.

용역폭력이라고 하면 온몸에 문신이 있는 조폭들이 현장에 들어와 무시무시한 협박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 사례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용역경비로 투입되어 조합원들에게 소화기를 쏘고 쇠파이프를 휘두른 사람들 중에는 대학생들이 친구들과 알바를 하러 온 이들도 상당수 있다. 용역폭력은 용역들이 깡패출신이라서 극심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원청 기업들이 용역들에게 그런 폭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 자리에 서면 그렇게 되고, 용역폭력은 발생하는 것이다.

기업의 노동자 통제를 위한, 법을 넘어선 폭력이 묵인되는 사회. 기업과 노동부, 경찰, 검찰, 언론, 정부가 결탁해 돈으로 폭력을 사는 것이 인정되는 사회. 이러한 사회적 묵인과 외면이 용역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a  인권단체들이 함께 한 반용역프로젝트팀에서 최근 발간한 <용역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대안 보고서>

인권단체들이 함께 한 반용역프로젝트팀에서 최근 발간한 <용역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대안 보고서> ⓒ 천주교인권위원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용역 #용역폭력 #정책대안보고서 #정리해고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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