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시간 시간동안 지평양조장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작가 김진석
술맛에 운명을 걸다
지평주조는 1925년 문을 열었다. 1대 사장인 고 이종환씨가 경영하던 것을 2대 사장인 김교십씨가 인수했다. 이후 3대 사장 김동교씨를 거쳐 4대 사장 김기환씨가 대를 잇고 있다. 한 집안의 3대가 한결같은 막걸리를 빚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김동교씨는 아들 김기환씨가 양조장을 잇는 것에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이미 사양산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버지 말씀 때문에 어릴 적에 사양산업이라는 말을 처음 배웠어요."
1960~70년대 막걸리는 국내 주류시장 점유율 부동의 1위였다. 1972년에는 국내 전체 주류 시장 점유율 81.4%(소주 11.3%, 맥주 5.0%)를 차지하며 정점에 달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며 상황이 달라졌다. 막걸리 소비량은 점차 줄었고, 맥주 소비량이 소주 소비량보다 앞섰다.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맥주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저질 막걸리의 범람도 한몫했다. 빨리 만들어 많이 팔고자 하는 이들이 다 숙성되지 않은 막걸리를 생산해 판매했다.
1988년 시장 점유율 34.9%의 맥주에게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내주었고, 1990년에는 소주에도 추월당해 2위 자리도 빼앗겼다. 2001~2003년에는 점유율 4%대를 기록하며 바닥을 쳤다.
2009년 막걸리 업계에 큰 변화가 일었다. 일본에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막걸리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2008년에서 2009년 사이 맥주, 소주, 와인(과실주)의 출고량이 모두 감소한 데 비해 막걸리만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많은 관심과 더불어 '햅쌀 누보 막걸리'까지 출시되었다.
김기환 사장이 양조장 경영에 뛰어든 것도 이러한 변화들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늦기 전에 시장의 변화에 발맞추어 나가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릴 것이라 판단했다.
그는 2010년, 다니던 홍보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양조장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구상하기도 했다. 스토리텔링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해 작은 전시관을 만들었다.
전시관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하루 평균 1~2명의 방문객이 찾아오는 정도로는 인력이나 자금 면에서 무리였다. 홍보 전략으로는 큰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변화와 혁신보다는 전통 쪽에 손을 들었다. 어떤 마케팅 전략도 '술맛'보다 경쟁력을 갖출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손맛으로 빚는 술맛, 그래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