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파리목숨'이야, 그걸 몰랐니?

'어르신' 말 한마디에 해고... 요양보호사가 '봉'인가요

등록 2012.05.02 14:03수정 2012.05.0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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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임시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출근을 서두르고 있는데 돌보고 있는 할머니에게서 집으로 오지 말고 병원으로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알았다고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서서 병원에 도착했는데 할머니는 온데간데없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할머니는 벌써 집으로 가셨다고 한다. 출근 시간인 10시가 조금밖에 안 넘었는데, 부랴부랴 움직인 나는 허탈하기만 했다. 병원에서 할머니네 집은 300미터 남짓 된다. 할머니네 집으로 걸어가면서 허탈해진 마음을 위로할 겸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었다. 아침마다 걷는 출근길인데 왜 그렇게 가기 싫고 짜증이 나던지….

 

다행히도 할머니는 병원에 무사히 다녀와서 침대에 누워 계신다. 내가 병원에 조금 더 빨리 오지 않은 게 섭섭하신 모양이다. 밤새 아파서 죽을 뻔했다면서, 출근해 한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단호박을 사와서 죽을 쑤라신다. 나는 속으로 화가 났다. 아무리 친절하게 잘하려고 해도 할머니는 내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축축한 장마철에 1시간씩이나 걸려 출근한 사람에게 앉자마자 당신 아파 죽겠다고 시장 봐와 죽을 쑤라는 할머니가 얼마나 얄미운지 모른다.

 

일단은 알았다고 하며 단호박을 사러 나갔다. 내친김에 할머니의 병원에 다시 들러 의사를 만나 할머니가 왜 만날 기운이 없고 음식을 못 드시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의사는 할머니가 잘 못 드시는 것은 몸이 쇠약해져서 그렇다고, 모든 음식을 부드럽게 해서 먹어야 한다고 한다. 할머니는 무조건 죽만 먹으라고 했다던데 그럼 아니냐고 했더니 그건 아니고 영양소를 골고루 갖춘 음식을 부드럽게 해서 먹어야 한다고 한다.

 

"전에 왔던 아주머니는 반찬도 만들어주더라" 

  

 한 노인전문요양원 해고자가 나와 투쟁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한 노인전문요양원 해고자가 나와 투쟁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오마이뉴스 윤성효
한 노인전문요양원 해고자가 나와 투쟁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윤성효

매일 아파 죽는다고 하고 입맛이 없다는 할머니가 답답하고 안쓰러워 일부러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고 온건데, 할머니께 의사를 만나고 왔다고 했더니 자기가 다 듣고 왔는데 뭐하러 병원까지 가서 의사를 만나고 왔냐고 타박하신다.

 

그래도 나는 그게 아니라며 부득부득 할머니를 설득하려고 했고 그러다보니 언성까지 높아지게 되었다. "하필 이 더운 날 호박죽이 뭐예요? 그거 먹는다고 할머니가 나을 것 같아요? 병원에서는 영양소 골고루 갖춰진 죽을 먹어야 한 대요" 하면서 대놓고 큰소리로 말했다. 딱딱한 단호박 껍질을 벗기면서 말이다.

 

죽을 다 만들어 할머니께 드린 후 나도 아침을 거른 참이라 한 그릇 떠서 먹었다. 그리고 청소를 한 후 설거지를 해놓고 퇴근을 하려는데 할머니는 또 잔소리다. "전에 왔던 아주머니는 반찬도 만들어서 갖다주더라. 너처럼 대들지도 않고, 오라는 대로 온다. 근데 너는 무슨 말이 그렇게 많니?" 하면서 자꾸 비교해가며 얘기를 하는데 더 이상은 못 듣고 있겠어서 한마디 했다.

 

"그러면 난 그만둘 테니까 그 아주머니 오게 하세요.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고 8월에 그만둘 수 있어요.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할머니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라고 말했더니, 이해를 했는지 조용해졌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다 돼어 누워 있는 할머니를 두고 나왔다. 누워 있는 할머니를 생각하니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금방 잊어버릴 거라고 생각했고 꾹 참고 8월까지만 할머니네 집에 가자고 마음먹었다.

 

할머니 말 한마디에 해고... "내일부터 가지 마세요"

 

전철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문자메시지 소리가 들렸다. 자전거를 세우고 문자를 확인하니 요양보호센터 센터장에게서 온 것이다. "할머니가 요양사를 바꿔달라네요. 무슨일 있었어요? 내일부터 할머니네 집에 가지 마세요"라는 문자다. 예측한 일이기도 해서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지만 휴업 상태에 대한 급여는 센터장이 책임져야 합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랬더니 센터장은 금시초문이라면서 다른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만 한다. 난 대번에 "그런 경우는 없다. 엄연히 계약서를 쓴 고용인이고 당신 맘대로 근로를 중단할 이유가 없다고 하면서 명확한 근거를 문서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지노위(지방노동위원회)에 소송을 넣겠다"고도 했다.

 

그 이후론 며칠 동안 센터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또 문자를 보냈다. "지난번에 말한 근거 서류와 해고통보서 보내주세요"라고 보내니, "해고는 아닙니다. 근로 중단 상태이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까 대기하고 계세요"란다.

 

"그럼 언제까지 기다리는 말인가요? 휴업상태에 대해서 센터장이 책임져야 하는 건 알고 있나요?"

"그런 경우는 보지 못했어요. 맘대로 하시던지요."

 

좋다, 그러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상식이 통할 줄 알았던 센터장인데 이 정도로 나온다면 내 더러운 성질머리가 가만히 있질 못하지. 해고통보서와 일일 일지를 보내 달라고 계속 문자를 보냈다.

 

요양보호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니... 참 답답합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도 센터장은 해고통보서를 주지 않았다. 당연히 휴업수당은 안중에도 없었다. 난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어서 '최후통첩'을 했다. 지노위에 소송을 걸겠다고. 소송에 도움을 받으려고 요양보호사협회를 방문하여 노무사와 상담을 했는데 센터 나름대로 규정이 있다고 한다. 그 규정을 복사해 와서 어떤 것에 위반이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소송을 할 수 있단다.

 

그래서 다시 센터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근로계약서 및 센터 규약을 보내주세요"라고. 다음 날 계약서와 규약이 왔고 센터장 나름대로의 규약 위반사항을 메일로 보내왔다. 난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답장을 보냈다.

 

요양보호사협회의 노무사는 지금의 요양보호사가 명확하게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센터도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례로 지노위에 소송을 하기에는 어렵다는 말을 한다. 좀 허탈하기도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센터장을 만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근거 자료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때마다 센터장은 "해고가 아니라니까요!"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참으로 답답하다.

  

끈적거리게 더운 날 아침, 내가 마치 누군가의 종이라도 된 양 부랴부랴 움직인 것, 아픈 어르신이라고 참고 비위 맞추려고 했던 점. 이것은 좀처럼 나에게서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먹고사는 일이 급해졌다는 말인데, 참고 참으며 일하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벌어진 '해고'는 황당하기만 하다. 그래서 해고는 살인이라고 했나? 아직도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철모르게 사는 내가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것은 내가 그만큼 일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며칠 후 드디어 센터장을 만났다. "그러면 내가 센터장의 판단에 따라서 죽고 사는 파리목숨이냐"고 했더니, 당연히 그렇단다. '그걸 몰랐니? 이 바보야!'라는 눈빛을 보는데, 불끈 오기가 몰려왔다. 어디 두고보자고! 내가 여기서 멈출 것 같니?

#요양보호사 #할머니 #해고 #노동법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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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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