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 만나는 의자는 각별하다

결심했다... 나, 누군가의 의자가 되기로

등록 2012.05.03 17:15수정 2012.05.0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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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자의 은덕이 마치 어머니의 그것처럼 가없다.
의자의 은덕이 마치 어머니의 그것처럼 가없다. 이안수

먼 여행길에서 만나는 빈 의자는 참 각별하다.
지친 몸을 무조건 받아주는 의자의 은덕이 마치 어머니의 그것처럼 가없다.
그 의자에 앉아서 앞서 이 의자에 앉았을 사람들의 모습들을 상상하는 것도 즐겁다.
뜨거운 연인, 잔잔한 노부부, 짝사랑 중인 소녀, 향수에 젖은 여행자...


나는 그 의자위에서 특정하지 않은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들의 사연을 상상하기를 즐긴다.

새벽 안개 속 공원의 빈 의자는 마치 사유중인 철학자 같아서 앉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빈 의자와 그 의자가 향한 먼 산과 지평선, 먼 바다와 지평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된다.

무엇보다도 빈 의자는 나를 선하게 한다. 내가 세상에서 지친 누군가의 의자가 될 수 있어야한다는 결심이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니...

 매사추세츠주 에식스 카운티의 락포트
매사추세츠주 에식스 카운티의 락포트 이안수

미국 보스턴에서 열차를 타고 한 시간쯤(약 40마일) 북쪽으로 가면 락포트(Rockport)라는 한적한 해안마을이 있다. 매사추세츠주 에식스 카운티(Essex County)의 이 해안은 뛰어난 풍광 때문에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두기도 하고, 부두로 뻗은 길가에 작은 화랑을 열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북대서양의 연근해어업이 계속되는 어촌이다.


그 락포트 마을의, 발아래에 대서양의 파도가 부서지는 방파제위에 콘크리트 의자가 2개 있다.

그 소박한 의자 등받이 뒷면에는 그 의자에 얽힌 사연이 적혀 있다.


한 의자는 칠순을 맞은 노인이 그동안의 기쁜 삶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증한 의자이며 다른 하나는 어떤 사연으로 어른이 되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딸을 기리며 그 딸이 좋아했던 그 자리에 부모가 의자를 기증한 것이었다.

이 두 의자는 매일 이 부두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편안하게 대서양을 바라볼 수 있도록 몸을 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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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가순열 시인이 시를 한 편 두고 갔다.
'부모님 배도 부른 줄 알았어요'라는 글 아래에...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의자 #락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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